인더뉴스 박경보 기자ㅣ지난 4월 미국 ITC 등에 ‘영업비밀침해’로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한 LG화학이 이번엔 경찰에 형사 고소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전기차 배터리 특허를 둘러싼 두 회사의 법적 공방이 점입가경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산업기술유출수사팀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에 위치한 SK이노베이션 본사 사무실과 대전 대덕기술원을 압수수색했다. 이번 압수수색은 지난 5월 LG화학이 산업기술의 유출방지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SK이노베이션의 인사담당 직원 등을 형사 고소한 것에 대한 후속 조치다.
불과 2년 만에 100명에 가까운 인력을 빼가는 과정에서 자사의 핵심기술과 영업비밀이 다량 유출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게 이번 형사 고소의 이유다. LG화학 측은 올해 1월 대법원의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LG화학이 승소했는데도 SK이노베이션이 불법적인 채용 행태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LG화학은 이번 압수수색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의 구체적이고 상당한 범죄 혐의에 대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 결과”라며 “검찰 및 법원에서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비정상적인 채용행위를 통해 산업기밀 및 영업비밀을 부정 취득했다고 보고 있다. 영업비밀탈취를 목적으로 이력서 양식에 구체적인 연구 프로젝트명 및 참여 인원 이름 등을 작성하도록 한 점, LG화학의 세부 기술 내용이 기재된 자료를 상세히 발표하도록 한 점 등을 주요 근거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 LG화학 측은 “경쟁사는 선도업체인 당사의 영업비밀을 활용해 공격적인 수주활동을 벌이며 공정 시장 질서의 근간을 무너뜨려왔다”며 “이번 수사를 통해 경쟁사의 위법한 불공정행위가 명백히 밝혀지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가 배터리 산업 경쟁력이 더욱 강화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편, SK이노베이션 측은 LG화학의 이 같은 법적 대응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소송보다 협력을 통해 국내 배터리 산업을 성장시켜야 할 때”라고 맞섰다. 내년 하반기까지 계속될 ITC 소송과 미국 연방법원 소송 등은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는 배터리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는 커녕 막대한 손실부터 만들어 낼 것이란 우려다.
또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주장하는 ‘부당한 인력 채용’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헤드헌터를 통해 특정 인력을 채용한 사례는 1명도 없고, 공정한 기회를 위해 100% 공개채용하고 있다”며 “SK이노베이션에 입사한 LG화학 출신 인력들은 경력사원 모집에 지원한 LG화학 출신 지원자의 10%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 2016년부터 진행한 경력사원 공채에 LG화학 인력들이 대거 몰린 것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어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 스타트업 기업 A사의 홈페이지에는 직원들의 전 직장이 명시돼 있는데, 7개 회사 가운데 한국기업으로는 유일하게 LG화학이 있다”며 “업계의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묻지마식 소송 대신 이직을 희망하는 직원들의 입장을 먼저 헤아려 보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16일 오전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 사장은 산업부의 중재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했을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