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페이(zero pay)는 소상공인 가맹점 수수료 부담 완화, 소비자의 간편결제 니즈 충족, 계좌기반 결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지난 2018년부터 정부와 서울시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계좌기반 간편결제서비스이다.
하지만 도입 2년이 다 돼 가는 제로페이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2019년 누적 결제액은 510억원 정도로 목표치인 5조 5300억원의 0.6%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3분의 1은 공무원들의 업무추진비와 복지포인트 강제할당을 통해 겨우 채운 실적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제로페이의 ‘제로’는 ‘수수료 0’가 아니라 ‘실적 0’였다는 우스갯소리도 허투루 들리지 않을 정도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오히려 2020년 제로페이 추진반 예산을 작년에 비해 2배 이상 늘린 73억원으로 책정하고 제로페이 홍보에 더욱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제로페이는 초기 시스템 구축비용은 금융결제원이, 운영비용은 운영법인과 시중은행들이 각각 분담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는 시스템 운영비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수익모델 자체가 전무 했기 때문이다.
2018년 당시 최저임금의 파격적인 인상으로 인해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 단체를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간편결제시장과 서비스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사전검토 없이 관 주도로 급조된 제로페이의 실패는 어쩌면 도입 당시부터 예정돼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계 최고의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가 이미 구축돼 있는 우리나라에서 제로페이는 가맹점과 소비자 어느 쪽에도 그 사용을 유인할 만큼의 매력이 없다. 현재 소상공인에게 적용되는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1.4%로 신용카드사들이 역마진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제로페이의 소득공제율 또한 체크카드와 같은 30%일 뿐 아니라 다른 결제수단에 비해 사용이 간편하거나 보다 나은 부가서비스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QR코드 방식을 채택한 제로페이는 바코드, 근거리무선통신방식(NFC) 내지 마그네틱보안전송방식(MST) 등 간편결제에 적용되는 다른 기술방식에 대한 차별이며 전자금융거래법상의 기술중립성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제로페이가 가진 가장 심각한 폐단은 바로 무분별한 공공부문의 민간영역 침탈이라는 점이다. 우리 헌법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질서’를 경제 질서의 기본원리로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제로페이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사기업인 VAN사를 대신해 가맹점 모집과 가입 홍보업무까지 대행해주고 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공정한 경쟁과 이를 통한 간편결제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헌법위반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시장이 공정한 게임의 룰에 의해 자율적으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심판 역할에 그쳐야 한다. 스스로 플레이어가 돼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요청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