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의 디지로그DigiLog] 모바일Mobile의 시대, 종이책이 살아남는 법

도서관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인더뉴스 김영욱 기자 | 영국의 각본가이자 소설가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의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을 보면 지구가 멸망할때 목욕타월을 흔들면 우주를 지나가는 외계 비행선에 무임승차(히치하이킹)를 할 수 있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상상력은 애덤스의 영국식 블랙 유머와 염세주의적인 풍자에 기인하죠. 이 소설은 본래 BBC라디오의 6부작 드라마였다가 컬트적인 인기를 끌며 결국 소설로 나오게 됐습니다. 일반적인 미디어 프렌차이즈(Media franchise)*와는 조금 다른 방식 — 일반적으로 소설이 드라마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는 반대 — 의 예가 될 듯 합니다.

미디어 프렌차이즈Media franchise* 지적 재산권이 있는 원작 매체를 영화, TV, 소설, 비디오 게임 등의 다른 매체로 전개하는 상업 전략. 

종이책을 원작으로한 미디어 프렌차이즈는 사실 대중문화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미국 출신 SF 작가인 필립 K. 딕(Philip Kindred Dick)이 없었다면 과거에 상영한 SF영화와 현재 방영중인 넷플릭스, 앞으로 제작될 영상물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세익스피어의 소설은 수도 없이 반복되고 변주돼 영상화 되고 있죠. 

종이책이란 존재는 기본적으로 지식과 역사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지만, 한편으로는 20세기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앞의 예처럼 미디어 프렌차이즈의 주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전자책은 종이책을 모두 사라지게 할 것 같았습니다. 2007년 아마존 킨들(Amazon Kindle)과 2010년 애플 아이패드(Apple iPad)의 등장은 곧 종이책의 종말을 가져올 듯 했습니다. 실제 전세계 도서 판매량에서 종이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었고, 전자책의 비중은 늘어나기 시작했죠.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활자중독자이자 낡은 종이책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으로서 그건 꽤나 두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종이책만이 갖는 종이의 사각거림, 독특한 스타일의 활자에서 오는 멋스러움, 적당한 무게감과 책 특유의 냄새는 서재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로망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미국출판협회(AAP. Association of American Publishers)의 2019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미국에서 발행된 모든 형식의 책은 약 26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이 중 인쇄본은 226억달러, 전자책은 20억40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 수치에는 소설 뿐 아니라 무역 및 교육 도서도 포함돼 있습니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포함한 세계 출판시장 규모는 2010년 1170억달러에서 2019년 1260억달러로 매년 1~2% 증가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세계 전자책의 시장점유율은 북미시장을 기준으로 20% 내외로 최근 감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출판시장은 조금씩 성장하는데 그 성장의 요인이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운 결과였습니다. 종이책이 생각보다 빨리 멸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이쯤에서 호기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출퇴근시간 버스와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로 바뀌었고, 도서관은 그저 수험공부와 시험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실로 바뀌었고, 오프라인 서점도 규모가 줄어들고 동네서점은 사라져가는 시대에 도대체 누가 종이책을 읽는걸까하는 의문이었죠.

안타깝게도 한국의 출판시장은 해외시장과 비교해 암담합니다. 책 자체를 읽는 인구도 줄어들었고, 종이책을 소비하는 인구도 줄어들었으며, 출판시장 자체의 규모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습지와 교육관련 책 소비에 치중한 결과가 지금의 현실이라고 합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왜 종이책이 여전히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 걸까요? 아마도 그건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다르기 때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청소년 필독도서, 권장도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명작과 같은 류의 독서를 강요받습니다. 즐겁고, 재미있게 읽는다는 ‘유희로서의 독서’가 힘들죠.

재미있는 책이 존재하기에 재미있는 미디어 프렌차이즈가 가능하고, 그로 인한 문화도 가능하다는 것은 무척이나 부러운 부분입니다. 독서가 재미없고 따분하며, 공부와 학습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은 책에서 점점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근대 종이책의 원형은 유럽에서 시작됐고, 세계도서박람회나 해외 국립도서관을 가보면 소장욕구가 샘솟는 다양한 유형의 책들이 즐비합니다. 어떻게 이런 책이 존재할까 싶은 다양한 크기와 두께, 독특한 종이와 활자, 색다른 색상과 조판의 종이책들은 하나의 문화이자 콘텐츠로 자리매김돼 있는 모양새입니다.

책이란 무엇일까요? 누군가에게는 지식을 전달받는 학습서이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혜안을 일깨워주는 나침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시간을 때우기위한 오락거리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적허세를 드러내는 사치품이기도 합니다. 전자책이건 종이책이건 여전히 책이 가진 용도는 건재하다는 의미로 보여집니다.

정보를 습득하는데는 사실 인터넷이 더 빠르고 효율적입니다. 아날로그의 종이책과 디지털의 전자책 중에 무엇이 더 우월한가의 논쟁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존재하는 목적이 다르고, 용도도 다르다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습니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와 이미지를 즐기는 행위, 텍스트와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보관하고 즐기며 활용하는 방법은 더 다양해졌고 다만 그것을 보다 잘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외출이 힘든 요즘이지만 도서관이나 동네 서점에 잠시 들려 보는건 어떨까요? 물론 전자책도 상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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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데 도움이 된 글과 기사

Physical books still outsell e-books — and here’s why

from. CNBC https://www.cnbc.com/2019/09/19/physical-books-still-outsell-e-books-and-heres-why.html

한국의 분야별 출판시장 현황

from. KPIPA http://kbook-eng.or.kr/article/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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