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生 남편'의 아내 없이 밥 먹기

2015.01.09 09:16:20

[아내와 외식하기]⑳ 혼자만의 외식

 

[인더뉴스 라이프&스타일팀] 지난해 말 아내가 화가 났다. 연이은 송년회가 화근이었다. 아내는 몇 차례 경고를 던졌다. 술 좀 줄이고 운동 좀 하라. 몇 차례 이야기를 했는데도, 지난 월요일 아는 업계 분과 한 잔이 길어져 새벽 1시에 집에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내도 심하기는 했다. 아무리 남편이 늦게 와도 그렇지, 건전하게 호프집, 그것도 회사 앞 호프집에서 먹고 들어왔는데 이런 문전박대라니. 뭐 이건 내 사정이고, 아내의 화를 풀어주는 게 급선무다. 단단히 화가 났다.

 

집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마. 청소도 내가 할 거고. 밥도 나가서 먹고 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물론 집에서 먹는 식사가 몇 끼 안 된다고 하더라도, 무슨 쿠바 경제 금수조치도 아니고 집에서 밥을 먹을 수가 없다니. 이후에도 회식이 있어도 무관심, 다음날 아침에도 무관심이었다. 서러웠을 때에는 집 근처 식당에서 아침에 속풀이를 하고 싶은데 외면을 받을 때였다. 2~3회 정도를 밥이 준비 안 됐다는 답에 발걸음을 돌렸을 게다. 그래도 점심이나 저녁 약속이 있어서, 업무로 만나는 분들과 만나 끼니를 해결했다.

 

문제는 토요일이었다. 아내는 아침에 쌩 하니 밖으로 나가버렸고, 나는 뭐 먹을게 없었다. 집에서는 물 한 병 없고, 아내의 빈 자리를 느낄 수 있었다. 길을 걷다가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전에 이 칼럼에서 준비됐던 대중식당이다. 사장님에게 밥 되나요라는 말을 하니 된다면서 들어오라고 했다. “몇 번을 못 드셨잖아라는 추임새도 곁들여 가면서. 옆쪽에는 같은 교회 다니는 아주머니 20여명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내에게 구박받는 남편이 불쌍해 보였는지,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교회 자매님(?) 한 분이 사탕도 주고 간다. 힘내라는 뜻 같아서 스스로 처량했다. 평소에 안 먹던 라면도 한 그릇 달라고 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라면을 메뉴에서 없앴는데, 한 개 있으니 끓여서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잔뜩 먹고 터벅터벅 나왔다.

 

근처에 있는 보그너 커피에서 혼자 한 잔 마시면서 앉았다. 아내도 내가 직장에서, 업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미생(未生)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텐데. 조금 서글펐다. 출산휴가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당신도 미생이었으면서. 섭섭했다.

 

물론 내가 섭섭한 것의 10배 이상 아내는 더욱 섭섭했을 것이다. 이전에 임신해서 배가 나오니 모두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는 말을 했었다. 그게 누구를 향한 말이었겠나.

 

어렵사리 아내와 연락이 닿아 처갓집에 갔다. 아내에게 1주일가량 타박을 받고 나니 힘이 빠진다. 그나마 내 편은 장인어른뿐이었다. 어제는 장인어른과 함께 저녁을 먹는데 한 잔 하라면서 맥주를 꺼내 주신다. 한 잔씩 하고 있는데 요즘 송년회 많지? 얼마나 힘들겠나. 만삭에 잔소리가 많아도 잘 해주게나라고 하셨다. 또 그렇게 스스로 위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까지 아내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연말 음악회도 못 갔다. 회사뿐 아니라 집에서도 미생 신세인 한 남편의 하루였다.

 

* 보그너커피 서경대점

- 주소: 서울 성북구 정릉동 175-24

- 전화: 070-4228-7400




라이프&스타일팀 기자 mirip@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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