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팀]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이런 오글거리는 리드(첫 문장)로 이번 글을 시작하게 돼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다. 아내를 처음 만날 때 약속했던 것이 있다. “과거까지 사랑해 주겠다”고 말이다. 물론 아내가 뭐 대단한(?) 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옛날에 남자 친구들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여자 친구들이 있었겠고.
하지만 약속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지난 주말, 아내와 혜화동에 갈 일이 있었다. 아니, 있었다기보다는 아내가 일본 라멘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가게 됐다. 이름도 어렵다. ‘고오베겐페이’라는 곳이다. 찾아가는 게 쉽지 않다. 마로니에공원을 지나, 구불구불한 골목을 거쳐서 가야 한다.
그런데 아내의 발걸음이 유독 가볍다. 길을 너무 잘 안다. 고등학교도 이곳이 안국동 부근에 모 여고를 나왔는데. ‘냄새’를 맡고 취조에 들어갔다. 일본 순사 코스프레(*이 글의 필자는 콧수염을 붙이고, 제복만 입히면 영락없는 일본 순사의 비주얼을 가지고 있다. 편집자주).
나: 아니, 이런 맛집을 어떻게 이리 잘 아시나.
아내: 옛날에 몇 번 와봤어.
나: 길치 아닌가?
아내: 맛있잖아.
몇 차례의 문답 후, “10여년 전 남자친구와 왔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그럼 그렇지. 너무 잘 안다 싶었다. 아내는 익숙하게 라멘을 시켰다. 이곳 라멘이 먹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 아기도 비슷한 추억을 공유할까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아무튼 잠자코 시켰다. 나는 가츠동(밥 위에 돈까스를 얹은 음식), 그리고 오징어 튀김 하나를 주문했다.
문제는 맛있었다는 거다. 아, 이게 문제가 될 수 있나…. 아내가 먹고 있는 라멘의 국물맛이 굉장했다. 빼앗아 먹는다는 표현이 들 정도로 후루룩 마셔버렸다. 30대에 접어들면서, 국물맛에 대해서 좀 아는 것 같았는데, 그 감각을 충족해 주는 맛이다. 가츠동과 튀김도 꽤 잘 만들었다.
옛 남친과의 맛집에서 식사를 하면 안 물어볼 수 없는 단골 메뉴성 질문이 있다. “걔는 잘 생겼어? 잘 해줬어? 왜 헤어졌어?”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내가 그래도 더 낫지’ 또는 ‘나는 너 뿐이야’ 등으로 귀결되기는 한다. 아내는 언제나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일관한다. 내가 술 퍼먹고 들어간 날짜들은 그리도 잘 기억하면서.
알고 보니 이곳은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집이었다. 우리 옆자리에서는 뭘 찾아보고 왔는지 외국인 커플이 있었고, 구석 쪽에는 일본인 팀도 있었다. 그런 집을 왜 나는 모르고 아내의 옛 남자친구만 알았던 것인지 조금은 속상했다.
라멘 하나, 가츠동 하나, 튀김 하나 해서 3만6500원이 나왔다.
데이트 이어가기
사실 약간 짜증이 나려 했으나, 밥이 맛있어서 말도 못했다. 그냥 그 앞에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집으로 와버렸다. 대학로에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찻집과 밥집이 있어 별도 설명은 생략한다.
* 고오베겐페이
- 주소: 서울 종로구 혜화동 203-1
- 전화: 02) 765-6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