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많은 어르신들 중에는 뉴스를 보며 진행자의 암기력에 감탄하는 분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밑을 보지 않고 술술 뉴스를 전달하니 당연히 외웠다고 오해하기 십상. 사실 아나운서들은 ‘프롬프터’를 보고 읽는 것이다. 프롬프터란 카메라 자체에 기사를 보여주는 모니터를 부착시켜 앵커가 카메라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기계를 말한다. 기사가 한 줄 씩 위로 올라가는 형태와 기사 서너 줄이 적혀 있는 판이 옆으로 움직여 다음 판으로 바뀌는 형태가 있다.
프롬프터는 잘 활용해야만 득이 된다. 모니터에 떠 있는 오탈자를 그대로 줄줄 읽었다가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박근혜 대통령. 인혁당 사건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하는 자리에서 ‘인혁당’을 ‘민혁당’으로 읽어 거센 항의를 받았던 박대통령의 후보 시절 기자회견은 유명한 일화다. 또한 달변가로 유명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프롬프터를 사용하면서부터 호소력과 전달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프롬프터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기술이 필요하다.
첫째, 눈동자의 움직임이 크지 않아야 한다. 프롬프터를 잘 보고 읽겠다고 눈동자를 계속 움직이면 매우 불안해보이고, 시청자의 주의를 흩뜨리게 된다. 눈동자의 움직임을 적게 하기 위해서는 글자 하나하나가 아닌 프롬프터 전체를 본다는 느낌으로 읽어야 한다. 또 줄이 바뀔 때 눈을 깜빡이거나 잠깐씩 탁자 위 원고를 내려다보는 것도 좋다.
둘째, 내용을 미리 봐야 한다. 현재 읽는 것보다 조금 앞서 뒷 문장을 봐야만 어색한 포즈를 막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중파의 한 앵커가 “이번 실험에 사용된 쥐들은 보통/ 쥐들보다 면역력이 월등히 높고” 라고 띄어 읽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어질 내용을 미리 파악하지 않아 ‘보통쥐’로 붙여 읽어야 할 부분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시야를 넓게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셋째, 의미를 생각하며 읽는다. 프롬프터는 혼자만을 위한 'E-BOOK'이 아니다. 잘 읽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보조 수단으로 사용해 카메라 너머의 시청자에게 잘 전달하는데 존재 의의가 있다. 따라서 머릿속에서 의미를 생각하며 때로 끊어 읽기도 하고, 다양한 포즈·톤·속도를 사용해 중요한 정보를 강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넷째, 자기 페이스를 지킨다. 오독 등으로 인해 잠시 쉬어 읽는 경우 프롬프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랩을 하듯 재빨리 읽어버리거나 일정 부분 포기하고 건너 뛰어가며 읽을 필요는 전혀 없다. 프롬프터를 올려주는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화면 일시 정지나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 뉴스 분량이 많은 보도 전문 채널이나 인력이 모자란 지역 방송사에서는 앵커가 스스로 프롬프터 마우스를 잡고 생방송 뉴스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경험상 매우 편했다.
최근 아나운서 공채에서도 프롬프터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MBC. 벌써 수년째 1차 카메라 테스트에서 종이 원고가 아닌 프롬프터에 뜬 대본을 읽는 방식으로 시험을 치고 있다. 당장 현업에 투입할 아나운서를 뽑는 지역 KBS와 지역 MBC 방송국들 역시 마찬가지다. 시험장에서 처음 기계를 접하는 사람들은 당황하기 쉽기 때문에 사전 연습이 필수다.
프롬프터는 워낙 고가라 개인이 구매하기는 무리다. 대신 프롬프터와 친숙해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소개해 본다. 컴퓨터에 한글 프로그램을 띄워 놓고 기사를 긁어 붙인 뒤 글자 크기를 30~40 포인트로 키운다. 그 뒤 마우스로 스크롤을 내리며 읽기 시작하면 실제 프롬프터와 거의 똑같은 상황으로 연습이 가능하다. 스스로 만든 프롬프터로 매일 20분씩 꾸준히 훈련을 해보자! 실제로 나는 시험장에서 효과를 톡톡히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