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조성원 기자] 살다보면 때때로, 생각지도 않던 것에 갑자기 의문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샤워 후 거울 앞에서 문득 ‘이 다비드상을 누가 데려갈까’하고 되뇌거나, 극장에서 한창 재밌게 영화를 보다가 옆자리에 아무도 없음을 깨닫곤 ‘왜 난 혼자서 이러고 있는가’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둘 중 하나는 진심입니다).
가장 최근 저에게 찾아온 한 가지 의문은, ‘우리집은 왜 제사도 지내지 않는데 명절 음식을 해 먹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 어머니는 더 이상 시댁에 가지도 않는데 왜 혼자서 명절 음식을 하시는 걸까’겠군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몇 가지 추론은 나옵니다. ‘해오던 거니까’, ‘그래도 명절 분위기는 내야지’, ‘가족들이 원해서(하지만 전 한 번도 해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등등. 하지만 문제는, 예전 큰집에 모여 제사 지낼 때보다 만드는 양이나 노동시간이 줄어들었을지언정 모든 작업을 ‘혼자’ 하신다는 걸 겁니다.
“여자들이 늘 해왔던 건데 뭘...”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결혼했다는 이유로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 먹일 음식을 몇 시간씩 허리도 못 펴고 만드는, 무료 급식봉사하는 것 같은 상황을 벗어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왜 굳이 또 고생을 하느냔 말입니다. 하다못해 봉사장에서는 고맙단 말이라도 듣습니다.
“그러면 어머니 쉬게 해드리고 너나 다른 가족들이 대접을 해드리면 되지 않느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됐다고 그냥 당신께서 하겠다고 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 방법도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전 이번 설에 가족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합니다.
바로 근래 들어 명절 때만 되면 더욱 괜찮게 뽑혀 나오는 편의점의 명절용 도시락으로 한 끼라도 해결하자는 겁니다. 마침 CU와 GS25에서 이번 설을 맞아 내놓은 도시락들이 있으니 먼저 먹어보고 권유해 볼 생각입니다.
먼저 CU에서 나온 ‘횡성한우 불고기 정식(415g, 697kcal, 5000원)’을 만나보겠습니다. 찾아보니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인증한 1등급 이상(1+, 1++ 등급 포함) 우육(牛肉)이 사용됐다는군요. 한정수량으로 판매한다고 합니다.
밥+한우불고기+너비아니 2개+부추전+김치전+볶음김치+오이지무침+멸치볶음+새송이버섯볶음의 구성입니다. 가풍이나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보기에 ‘명절 음식’이라기보다는 ‘특별식’같은 느낌입니다.
1분 30초에서 2분 정도 마이크로파를 쐬게 하고 꺼내니 어쩐지 멸치볶음 냄새만 납니다. 부디 건질 만한 게 멸치볶음뿐인 게 아니길 바라며 밥부터 맛 봅니다. 2016년 햅쌀로 만들었다는 밥은 그냥 무난한 딱 편의점 도시락 밥입니다. 메인 반찬인 불고기로 넘어갑니다.
한우고기에 양파, 당근, 고추, 파, 버섯이 함께 하고 있는데, 지정석에 꽉 들어차 있는 밥 이하 다른 찬들과 비교하면 어째 양이 좀 헐빈합니다. 맛을 볼까요. ‘단짠’의 풍미가 꽤 좋습니다. 맛 자체가 훌륭하다 할 순 없지만, 적당히 촉촉한 단짠의 매력이 밥의 먹먹함을 잘 상쇄해 줍니다.
너비아니의 간은 불고기에 비해 짠 편입니다. 다른 찬을 다 먹은 나중에 보니 제일 짜더군요. 식감도 무른 편입니다. 채소 찬과의 궁합을 좀 맞춰볼까 해서 오이지무침을 택했는데, ‘꼬독꼬독’한 식감이 좋고 산미나 짠 감도 없어 곁들여 먹기 아주 좋습니다.
건드린 김에 밑반찬들 맛을 봅니다. 새송이버섯볶음은 버섯의 탱글함과 쫄깃함이 잘 살아있습니다. 오이지무침과 버섯볶음을 원래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닌지라 입 안에 감도는 즐거움이 더 큰 지도 모르겠군요. 볶음김치와 멸치볶음은 특별할 것 없는 익숙한 그 맛들입니다.
아예 매운맛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아서 더 그런 건지, 김치전은 생각보다 매운맛이 꽤 느껴집니다. 오징어로 추정되는 내용물이 심심치 않게 씹히는 것도 재미있군요. 부추전은 김치전에 비해 좀 무른 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징어라 여겨지는 내용물에 당근과 고추가 식감을 담당하는 것이 괜찮습니다.
전체적으로 딱 명절 분위기에 맞는 느낌은 아니지만, 5000원짜리 한정 도시락임을 감안하면 준수합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반찬들과 밑반찬들의 식감 차이가 재밌어서, 짝지어 같이 먹으라는 뜻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GS25의 ‘명절도시락(500g, 850kcal, 6000원)’입니다. 횡성한우 도시락보다 1000원이 더 비싼 만큼 반찬의 가짓수와 전체적인 양이 더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한정 판매한다는군요.
밥과 주반찬이 담긴 용기와 밑반찬이 담긴 용기가 분리돼 있어, 밑반찬용기를 뺀 채 전자레인지 사우나를 시킬 수 있습니다. 흑미가 섞인 밥+돼지고기찜+잡채+동그랑땡+해물부침전+고기완자+5색5미전+볶음김치+시금치+콩나물+명태초무침의 구성입니다. 이름답게 확실히 명절 분위기 물씬 나는 찬들로 채워져 있군요.
2분 30초 정도 레인지에서 돌린 후, 늘 그렇듯 밥부터 맛봅니다. 퀄리티가 상당히 좋습니다. 너무 떡져 있지도 않고, 군데군데 섞인 흑미의 톡 터지는 식감도 좋고요.
돼지고기찜(처럼 보이는)은 꽤나 짤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렇게 짜지 않고 적당히 도는 기름기가 밥이랑 먹기에 그만입니다. 단, 기름진 걸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겐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잣도 2개나 들어있습니다만, 전 안 좋아해서 패스했습니다.
잡채가 짭니다. 특히 당면 외의 고기나 버섯 같은 재료들이 마치 양념이 골고루 배지 않은 것처럼 짠 맛을 머금고 있습니다. 마이크로파 샤워를 마치고 나온 것을 감안하면 윤기나 식감은 그렇게 메마르진 않군요.
전류로 넘어갑니다. 5색5미전은 중간에 부추전(이라 사료되는), 그 양쪽으로 햄과 맛살이 포진해 있어 정확히는 3색3미전입니다. 여기에 특별할 것 없는 맛은 많이 아쉽습니다. 해물부침전 또한 향만 흉내 내는 수준으로 정작 해물엔 인색한 편입니다.
동그랑땡이 실합니다. 두툼한 내용물이 치아 끝까지 차오르듯이 씹히는 게 만족스럽군요. 고기완자는 후추향이 강하지만 맵진 않습니다. 동그랑땡이 좀 더 가공육스러운 질감이라면 이건 진짜 고기를 치대고 반죽해서 만든 듯한 질감이라 비슷한 듯 다른 재미를 주는군요.
밑반찬들을 만나볼까요. 볶음김치는 별다른 게 없고, 시금치가 짭니다. 레인지에 돌린 것도 아닌데 식감도 느껴지는 게 없고요. 콩나물은 그래도 씹는 맛은 살아있는데 마찬가지로 짭니다. 명태초무침은 원래 좀 짜게 먹는 음식이란 걸 감안하면 나쁘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밑반찬을 짜게 먹는 집안 사위가 된 느낌이군요.
전반적으로 찬들이 좀 짠 감이 있어, 동봉된 간장이 딱히 필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짜기만 할 뿐 맛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CU의 도시락에도 한 말이지만 6000원에 이 정도 구성이면 충분히 고려해 볼만 합니다.
이번 설엔 여자들만 하는 고생에서 어머니와 아내도 해방시킬 겸, 한 끼 정도는 가성비도 괜찮은 명절 도시락으로 가족들이 함께 하는 것 어떠신가요. 시도하실 분들에게 한 가지만 당부드립니다. 어디 멀리도 아니고 집 앞에서 사왔으면서 던져주고 대령하라하지 마시고, 직접 돌려 먹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