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권지영 기자ㅣ “미세먼지가 꽤나 고약한 게 아쉽기는 하지만, 햇볕 좋은 오늘 하루 즐겁게 서울숲을 돌아 봅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하루 동안 떠나는 여행 체험단 '이지트립(Easy trip)'에 덜컥 신청했다. 모아스토리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로 영상과 오디오 콘텐츠로 제작·배포해 장애인들이 보다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프로그램 리포터인 정유미 씨다.
촬영 당일 약간의 미세먼지가 있었지만, 대체로 맑은 날씨에 안심하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만나기로 한 서울숲으로 향했다. 유미 씨와 촬영팀이 도착하기 전 안내센터를 찾아 서울숲 안에 언덕길이 어디쯤에 있는지, 식물원 입구엔 장애물(턱 등)이 없는지 등도 꼼꼼히 살폈다.
먼저 도착한 강민기 피디와 함께 유미 씨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정유미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장애인 콜택시에서 내린 유미 씨는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친구끼리 가볍게 여행하는 콘셉트로 미리 준비한 지도를 펴고, 어디로 갈지 유미 씨에게 물었다.
평일 오전에다 아직 봄바람이 차갑게 느껴질 때라 서울숲은 조용했다. 우선 길게 뻗어 있는 길을 따라 조금 걷기로 했다. 걷는 동안 지난 '이지트립'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유미 씨는 덕수궁을 둘러봤을 때 길이 울퉁불퉁하고, 중간에 턱이 많아 휠체어가 다니기 불편하다고 했다.
유미 씨는 종로에 있는 광장시장과 풍물시장편은 날씨가 너무 추워 고생했지만, 무척 재미있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광장시장에서는 아마 ‘죄송합니다’라는 얘기를 한 100번 넘게 했을 걸요. 하하.” 휠체어가 다니기엔 길이 좁고, 사람들로 엄청 붐빈 탓에 움직일 때마다 '죄송하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는 거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꽤나 걸었다. 방향을 틀어 서울숲 왼쪽편에 있는 '영주사과나무길'을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작은 언덕을 올라야 하는데, 그곳엔 서울숲을 내려다 볼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다. 하지만 전망대에 오르는 방법은 오로지 계단. ‘휠체어도 오를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중간에 영주사과나무길을 찾는데 약간 헤맸다. 하얀꽃이 피었더라면, 더 예뻤을 텐데 도착한 사과나무길은 휑한 가지에 새봉우리만 돋아 있었다.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화장실을 발견했다. 유미 씨와 함께 서울숲 장애인 화장실을 둘러보기로 했다. 서울숲은 공용 화장실 전체에 장애인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어머, 넓네요.” 전동 휠체어를 탄 유미 씨가 화장실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변기에 비데가 설치돼 있고, 세면대의 높이도 적당했다. 무엇보다 휠체어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편할 만큼 넓어서 편하다고 유미 씨는 평했다. 이만하면 '합격'.
다시 지도를 폈다.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고, 식물원에 가보기로 했다. 도착한 식물원 입구엔 선인장이 종류별로 있었고, 중간으로 들어가자 큰 나무잎이 늘어져 마치 숲 한가운데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무들 사이에 사슴벌레 등 곤충들의 집도 마련돼 있어 구경할 수 있었다.
1층 식물원의 끝자락에서 커다란 계단과 마주쳤다. 전시는 총 2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올라갈 방법이 역시 계단밖에 없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나 언덕은 마련돼 있지 않았던 것. 1층 반대편 전시관도 2층을 통해서야 관람할 수 있다는 말에 더욱 아쉬움은 커졌다. 서울숲 식물원이 노인, 장애인, 유모차 이용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1층의 전시관은 안내데스크를 통해 들어갈 수 있어 관람을 이어갔다. 이번엔 꽃향기로 가득했다. “못봤으면 정말 아쉬울뻔 했어요. 꽃향기도 좋고, 물고기도 볼 수 있잖아요.” 유미 씨가 말한대로 식물원은 볼거리가 많았다. 수족관에 여러종류의 열대어와 철갑상어가 있었고, 한 켠엔 거북이 커플도 볼 수 있었다.
볼거리가 가득한 식물원의 2층을 구경하지 못한 점은 정말 아쉬웠다. 평소 계단을 오를 일이 많아도 불편함을 못느끼며 지내왔는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겐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것을 느꼈다. 식물원 안쪽으로 자리잡은 사슴공원은 구제역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운영을 중단해 구경할 수 없었다.
이 후 호기심에 둘러본 '무장애 놀이터'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철망으로 엮은 거대 조형물만 있을 뿐 놀이터라고 할 만한 즐길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어린이대공원에 '무장애 놀이터'가 생겼다고 하는데, 유미 씨는 이지트립 체험단과 함께 5월에 한 번 가볼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숲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여행하기 꽤나 좋은 장소라고 유미 씨는 총평했다. 무엇보다 장애인 화장실의 시설이 훌륭했고, 식물원과 동물원 등 볼거리도 많다고 얘기했다. 서울숲 투어에 이어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근처 식당 중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휠체어 장애인들은 외출할 때 한 장소에 머물며 식사와 놀이 등을 해결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여행 장소를 소개하는 것만큼 식당 정보도 중요하다. 식당 입구에 얕은 턱이라도 있으면, 휠체어 이동이 어렵기 때문에 받침대가 있거나 턱이 없는 곳이어야 한다.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친구와 소풍가는 기분으로 시작했지만, 투어 내내 긴장을 했던 모양이다. 평소 아무생각없이 오르고 내렸던 계단, 언덕, 문턱이 유난히 크게 느껴진 하루였다.
유미 씨와 함께 돌아오는 길 서울숲-왕십리 환승구간에서 엘리베이터를 찾느라 엄청 헤맸다. 엘리베이터가 구석진 곳에 위치한 건 기본이고, 환승 동선도 복잡했다. 여기에 지하철 안내원의 불친절함과 휠체어 칸을 이용하는 지하철 이용객들의 부족한 배려는 너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