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입문을 위한 지상 특강. 국내 유일, 국내 최다 12만명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언론고시카페-아랑>의 운영진의 협조를 받아 <인더뉴스>의 청춘 독자들께 촌철살인 언론사 취업팁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아랑카페 운영자] 최근 한 성당에서 교리 수업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이날 수녀님은 요한복음의 말씀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셨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요한복음 8장의 말씀이었다. 간음을 한 여자가 있는데, 군중들이 돌을 던지면서 그 여인을 비난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너희 가운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돌을 던져라”고 이야기 했고, 그러자 나이든 사람부터 하나씩 사라져갔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죄를 생각하지 않고 남을 욕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좋은 말씀이다. 하지만 교리를 듣다가 문득 우리의 언론고시생들, 특히 시사교양 PD를 지원하거나 기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쉽게 일으키는 오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굳이 비유를 한다면, 언론고시생들 중에는 ‘예수’가 많다. 피끓는 청년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자신의 기사 한 줄이나 프로그램 1초로라도 독자나 시청자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한 것 같다. 이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는 말로 주로 설명을 한다.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유형은 사회 정의를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확고히 믿고 있는 유형이다. 이런 경우에는 반론이라는 점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름은 ‘선’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집단은 ‘악’으로 규정한다. 반론을 취재할 생각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 “잘못했는데 뭘요”라고 한다. 아무리 잘못된 사람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 사람의 입장을 최대한 취재하고 반론을 실어주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기사를 쓰는 데에도 드러난다. 자신이 활동했던 시민단체와 연관돼 있는 경우에는 상대방 입장에 대해 사실과 의견이 분리되지 않는 때도 있다. ‘A 단체의 대응은 그동안 자행했던 임금 체불에 대해 한 마디 변명으로 끝내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식의 문장을 사용하는 식이다. 누가 그 단체의 입장을 꼼수로 정의할 수 있는가. 그것은 팩트(사실)인가 기자 개인의 의견인가. 기자 개인의 의견을 기사 본문에 쓰는 것은 올바른가? 올바른 것을 떠나 이것은 심사위원에게 플러스가 될까 마이너스가 될까. 조금 더 생각하면 답이 나올 수 있다.
일부 학생들은 이분법적 사고가 확고해 사실 자체를 왜곡하기도 한다. 한국의 언론자유가 경제력에 비해 부족하다는 비판을 하면서, 라이베리아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교를 잘못하는 경우다. 물론 한국의 언론자유가 최근 몇 년간 해직기자 사태와 기자들에 대한 정부의 많은 소송 문제 때문에 후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구(舊)소련이나 일부 독재국가들과 비교하는 것은 오류다. 그런 나라들에서는 기자들이 테러를 당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직 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반론권 보장 및 양측 입장을 충분히 취재하는 ‘균형’ 및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는 실제 취재 및 기사작성 실무평가 현장에서 엄청난 마이너스 점수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나 기사 작성 후 Q&A를 진행하는 일부 언론사에서는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때 다시 한 번 ‘취재과정에서 편향된 입장을 지니고 있음’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언론인이 된 다음은 물론이고, 언론인이 되는 과정에서는 더더욱 심사위원이나 독자, 시청자, 이해당사자 등 어떤 사람이라도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언론인은 사람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 의식을 공유하며, 아젠다를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소명이다. 그렇지 않고 언론인 스스로의 사견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뉘앙스를 줘서는 안 된다. 취재 시험장이었다면 당연히 탈락에 한 발 더 다가서는 셈이 된다.
물론 다른 지원자들도 있다. 지금은 어엿한 경제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는 후배 K는 필자가 사회부에서 근무할 당시 대학생 인턴으로 가르쳤다. 그 때 K가 꽂혀 있던 주제는 ‘버려진 고양이들에 대한 대책’이었다. 6주 동안 진행된 인턴십에서 4주 내내 고양이 주제만 집착했고, 그 때 K를 가르치던 담당 1진 선배인 기자는 그걸 그냥 놔뒀다.
이 때문에 K는 6주 동안 제대로 배워야 할 사회부 기자로서의 스킬을 배우지 못했다. 물론 5주차에 필자가 인계받아 2주 동안 고난을 주면서 많이 가르쳤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배워야 할 시간을 낭비한 셈이다. 물론 K는 이후 2주간 인턴십을 연장해 제대로 다시 배우면서, 이후 공채 전형에서 쓸 수 있는 취재 스킬을 습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