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더뉴스 양귀남 기자ㅣ새 주인을 맞이한 물류업체 국보의 자금 조달과 활용에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다. 지난해 말 새로운 대주주가 들어오면서 올 2월까지 800억원을 출자하겠다고 밝힌 것과 달리, 실제 투입한 자금은 70억원에 그치고 있다. 유상증자 납입이 늦춰지거나 전환사채(CB) 납입 대상이 바뀌면서 당초 발표보다 대주주의 투자 규모가 급격히 축소된 모습이다.
게다가 국보가 조달한 일부 자금조차도 만년 적자에 빠져있는 회사 정상화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투자조합 지분 인수에 밀어넣고 있어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애초부터 1360억원(재무적 투자자, FI 포함) 수준의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단기 주가부양용 재료로 활용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계기업이 1360억 조달? 우려가 현실로
19일 금융투자업계 및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바른네트웍스와 피제이에이치조합이란 곳에서 지난 11일 국보의 14회차 CB를 납입했다. 해당 CB는 당초 국보의 새 대주주인 엠부동산성장1호투자목적 유한회사(이하 엠부동산성장1호)가 300억원을 납입하기로 한 건이다. 하지만 규모가 150억원으로 축소됐을 뿐 아니라 납입 대상도 변경된 채 발행됐다.
엠부동산성장1호는 지난해 11월 160억원 규모의 유증에 참여하며 대주주에 등극할 당시, 올해 2월까지 총 800억원의 자금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500억원 규모의 유증에 참여하고 300억원 규모의 CB를 납입한다는 계획을 공시한 것.

하지만 지난해 12월 납입하기로 한 유증은 납입일이 올해 3월로 연기됐고, CB는 주체와 규모가 바뀌었다. 대주주가 투입한 자금은 70억원 규모의 15회차 CB가 전부다. 지난해 공언했던 800억원에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자금만 넣은 셈이다.
이렇다 보니 오는 3월에 납입하겠다고 한 500억원 규모의 유증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오는 6월 대주주 측의 우호 FI인 나반홀딩스 유한회사가 납입하기로 한 400억원 규모의 유증에 대해서도 실제 납입 가능성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나반홀딩스는 지난 2021년 10월 자본금 1억원에 설립된 법인이다.
대주주 변경 전후 시점인 지난해 11월, 국보는 총 136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 계획이 발표되면서 주가가 급등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만년 적자에 빠져 있는 부실기업이 대규모 자금을 끌어온다는 소식에 시장에서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보였다. 반짝 급등했던 주가도 이내 제자리로 돌아온 상태다. 결국 발표 내용이 현실화되지 않자 애초부터 대주주가 자금 여력이 부족함에도 호재성 재료를 통한 단기 주가 부양에 활용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주주의 자금 조달 능력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추가적인 자금 조달 여부에 대해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달 자금, 경영 정상화 아닌 투자조합 인수에 활용
국보는 14회차 CB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 150억원을 타법인 지분 취득에 활용한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당초 회사 운영자금으로 쓰겠다며 대주주를 상대로 300억원 규모로 발행하기로 한 CB이지만, 150억원으로 줄어들었고 용도도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으로 바뀐 것이다.

국보는 14회차 CB가 납입된 날 즉시 오션뉴웨이브신기술조합1호(이하 오션뉴웨이브) 주식 1만 5010주(81.79%)를 150억 1000만원에 취득했다. CB 납입과 타법인 지분 인수가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같은 금액으로 이뤄졌다.
더욱이 CB의 주요 납입 주체와 오션뉴웨이브의 기존 대주주(최다출자자)가 모두 바른네트웍스다. 이 업체는 코스닥 상장사 광무(옛 바른테크놀로지)의 자회사다. 광무 역시 만년 적자에 빠져있고, 수시로 사명과 대주주가 변경되고 있는 전형적 한계기업이다. 결국 국보 입장에서는 실질적 자금 이동없이, 사채를 발행해 조합 지분을 산 셈이다.
오션뉴웨이브는 지난해 12월부터 적자 상태인 코스닥 상장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 업체는 지난해 4월부터 새 주인에게 회사를 매각하고자 했지만, 수차례 인수 주체가 바뀐 끝에 오션뉴웨이브가 양수인 지위를 승계받으며 매각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오는 26일 잔금을 치르면 오션뉴웨이브의 인수가 마무리된다. 이렇다 보니 국보가 오션뉴웨이브를 통해 또 다른 한계기업 상장사를 인수하는 형태가 됐다.
국보는 계속되는 적자로 결손금이 꾸준히 불어나 지난해 3분기 기준 525억원에 달하고, 부채비율은 167%에 달한다. 지난해 3분기까지 1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적자 폭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열악한 재정 상황이다 보니 새로운 대주주도 애초 CB 발행을 통해 운영 자금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션뉴웨이브를 인수하게 되면서 자금 활용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됐다.
시장에서는 대주주의 경영 정상화 의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 내부 상황 정상화와 본업 살리기가 우선 과제인 상황에서 힘겹게 조달한 자금을 투자조합에 투자했다”며 “회사 자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유가증권시장 소속인 국보는 최근 3년여 사이 네번째 대주주 변경이 이뤄지며 불안정한 지배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적자 폭 확대로 재무 상황이 악화하는 가운데 잇따른 CB 발행과 유증으로 주주가치도 크게 훼손되고 있다. 주가는 3년여 전 고점 대비 90% 넘게 하락한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