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처음 보험업에 발을 들였을 때 누군가 내게 직업을 물어보면 '재무 컨설턴트'라 답했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보험업에 종사한다고 하면 보험아줌마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놓고 나를 그렇게 부르는 고객도 있었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이 일을 시작했으니,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불려도 그러려니 해야만 할까? 게다가 아줌마 앞에 보험을 붙이니 상대에게 내 직업을 숨겨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궁리 끝에 재무 컨설턴트라는 말을 찾아낸 나는 한동안 그렇게 소개했다. 보험설계사 9년 차인 지금은 보험회사에서 설계사로 일하고 있다는 말을 자연스레 할 정도로 이른바 '짬'이 쌓이긴 했으나 누군가에겐 여전히 보험이라는 단어가 불편하다는 것을 안다.
보험설계사의 '사'는 한자로 선비 사(士) 자를 쓴다. 여기서 '사'는 전문가를 뜻한다. 어학사전에서 보험설계사를 검색해 보니 보험 상품을 소개, 안내하고 설계를 돕는 금융 전문인이라고 쓰여 있다. 보험설계사의 주된 업무는 어학사전에 쓰인 대로 보험 상품을 소개하고 설계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고객의 보험금 청구를 비롯해 가입한 보험의 관리와 책임까지 포함한다. 때론 그 업무를 더 밀도 있게 한다. 그래서 보험설계사가 받는 수수료에는 계약 체결 시 받는 모집 수수료 외에도 유지 수수료가 존재한다. 얼마 전 이 유지 수수료에 얽힌 소송의 판결 내용이 이슈에 올랐다.
이 사건은 모 지역 보험설계사들이 퇴사 이후 자신들이 모집한 계약이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유지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비롯됐다. 보험설계사의 직군은 4대 보험이 적용되는 근로소득자가 아니라 프리랜서 자영업에 속한다. 소득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보험 계약 체결이 이루어지면 신계약 수수료 50~70%를 먼저 받고, 나머지 30~50%를 1, 2년간 유지 수수료 명목으로 나누어 지급한다.
만일 설계사가 이직이나 퇴사 등의 이유로 해촉되면 남은 수수료는 지급하지 않는다. 유지 수수료 지급에 관한 규정은 관련 법령에 명시된 바는 없으나 대개 보험설계사와 소속 회사의 사적 자치에 따라 계약으로 정해진다. 이런 구조 때문인지 유지 수수료 관련 소송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등장한다. 수수료가 소득이 되는 직군 특성상 설계사는 이직이 다른 직업보다 잦은 데다, 영업직은 진입 장벽은 낮으나 제대로 마음먹지 않는 한 오래 하기란 쉽지 않다.
같은 보험회사에서 오래 일하는 것과, 좀 더 나은 환경에 더 높은 수입을 획득할 가능성이 큰 회사로 이직하는 것, 둘 중 어느 게 옳은 방향인지 한 마디로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만일 내가 소득만을 목표로 이직을 실행했다면 10년 가까이 보험설계사로 일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보험설계사의 소득인 수수료의 시작도 사람에서 비롯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동안 이직을 한 번도 고민한 적 없다는 말은 거짓말로라도 하기 어렵다. 공들여 준비한 보장 설계 제안이 고객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거나 기껏 체결한 보험을 고객이 금세 해약하는 상황 앞에선 여전히 자책하고 의기소침해진다. 그럴 때 혹시 소속 회사를 바꿔보면 더 낫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 툭툭 튀어나온다.
이번 원고(보험설계사)의 피고(전 보험대리점)를 향한 유지 수수료 청구 소송에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수수료가 단순히 모집 대가인지, 아니면 계약의 유지 관리 대가까지 모함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즉, 설계사의 업무는 신규 계약 모집뿐 아니라 기존 계약의 유지와 관리까지 포함하며 보험 영업 수수료 체계는 설계사 지위 유지와 연동된다고 본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설계사 수수료에 2026년부터는 수수료 총액이 모집한 계약 월 보험료의 12배를 초과할 수 없다는 1200% 룰이 적용된다. 또한 2027년에는 판매수수료 비교 공지(보험 상품별 수수료 등급 공개) 제도가 도입 적용될 예정이다. 어찌 보면 보험설계사 운신의 폭이 좁아진 걸로 보이기도 하지만, 일부 보험대리점 등이 행했던 '먹튀'나 보험사기를 근절하자는 목적도 있을 테다.
보험을 비롯해 돈을 다루는 금융 세계는 도덕적 해이에 빠지는 순간 엉망이 된다. 회사만이 아니라, 소속 직원을 비롯해 돈을 맡긴 고객까지 죄다 무너진다. 사기꾼을 시쳇말로 ‘사짜’라 부른다. 같은 모양의 ‘사’를 쓰지만 사짜의 '사'와 보험설계사의 '사'는 엄연히 격과 뜻이 다르다, 호칭에 선비 사(士)자를 쓰며 살지, 사짜로 불릴지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며, 재무 컨설턴트라는 호칭 대신 보험설계사를 쓰게 된 까닭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