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김용운 기자ㅣ"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서울시민이 가장 좋아하는 궁이자 대표적인 야간 명소다. 요즘 세대는 잘 모를 수 있지만 과거 창덕궁 앞에 주유소가 2개 있었다. 이 주유소들이 창덕궁 주변 경관을 해쳐 마음이 아팠는데 다른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더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023년 11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을 고궁 매력이 담긴 정원도시로 만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오 시장은 "서울 문화재와 역사를 복원해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시장이라 자부한다"면서 "도시개발에만 관심 있다는 일각의 평가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항변했습니다.
오 시장은 1000만이 사는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4번이나 민선 시장으로 뽑힌 유일무이한 정치인입니다. 오 시장은 2006년 민선 4기 시장으로 첫 취임한 이후부터 서울의 문화재 복원에 힘을 써왔다고 자부했습니다.
오 시장이 인터뷰에서 대표적인 문화재 복원 사례로 흥인지문 인근 복원과 창덕궁 앞 주유소 2개를 매입해 전문 국악공연장인 서울돈화문국악당과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을 지은 것을 꼽았습니다. 오 시장은 율곡로로 끊어진 창경궁 종묘 연결 복원사업을 2007년 자신이 시작했다면서 "일제가 없앤 창경궁 종묘 궁궐 담장과 복신문을 최대한 원형으로 복원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스스로 서울의 문화재와 역사를 복원해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시장이라 칭한 오 시장이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사업과 관련해 최근 국가유산청과 상당수 여론과의 갈등 상황에 놓였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시는 시보에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을 고시하며 세운4구역의 건물 최고 높이를 당초 종로변 55m, 청계천변 71.9m에서 종로변 98.7m, 청계천변 141.9m로 변경했습니다.
이번 기준은 2009년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이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정한 종묘 주변의 건축 높이 기준을 두 배 가까이 높인 것입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세운4구역이 2004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으나 9년간 총 13회에 걸쳐 문화유산 심의를 받으며 높이가 50m로 축소되면서 사업 동력을 잃고 장기 지연됐기 때문에 이를 변경했다고 밝혔습니다.
세운4구역은 2004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종묘 앞에 놓여 있는 위치 특성상 층고 높이 등으로 갈등을 겪었습니다. 일례로 민선 4기 오세훈 시장 시절이었던 2009년 세운상가 일대에 높이 122.3미터 36층짜리 주상복합 4개 동을 짓겠다는 건축계획안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지만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다시 세운4지구 재개발 사업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서울주택도시공사는 2017년 세운4구역 국제지명현상 설계공모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2018년 7월 박원순 시장 당시 고도를 낮춘 계획안이 사업시행인가를 받았습니다.
허가된 사업시행인가안은 2021년 착공, 2023년 완공이 목표로 세운4구역에 건물 9개 동으로 이뤄진 복합시설이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호텔 2개 동, 업무시설 5개 동, 오피스텔 2개 동으로 구성되며 건물 높이는 종로 쪽은 55m 이하, 청계천 쪽은 71.9m 이하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사업 진행이 또 다시 지지부진해졌고 오세훈 시장이 다서 서울 시정을 맡게 되었습니다.
오 시장은 이번 조례변경으로 종묘 앞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지난 5일 '녹지생태도심 선도사업 서소문빌딩 재개발 착공식'에서 "세운4구역 빌딩 높이를 높이면 종묘에 그늘이 생긴다는 우려는 잘못된 시각이다"라며 "관공서나 문화유산 주변 건물의 높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이다. 이제는 그 가치 체계에 대한 새로운 토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국가유산청은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최고 높이를 대폭 상향해 종묘의 가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며 유감을 표한 뒤 향후 "정부의 지원 아래 주어진 권한 하에 세계유산법 개정 등 모든 방법을 강구해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를 지키고, 종묘가 가진 가치가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전승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서울시의 정책에 반대할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서울시는 국가유산청의 유감 표명과는 별개로 세운4구역은 법적 문화재 보호 대상이 아니기에 강제력을 갖는 지시는 불가능하고 이번 계획은 주민 제안으로 추진되는 것이라고 반론했습니다.
오 시장은 앞서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종묘에 대해 "한국 최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만큼 보존과 복원을 마쳐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창경궁과 종묘 연결 복원사업에 의미를 부여했고 종묘 돌담을 따라 늘어선 서순라길 정비를 한 것을 자신의 업적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도심 개발과 문화재 보존이 상충하는 상황에 대해서 오 시장은 "단순 보존을 넘어선, 역사 존중의 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문화재청과 협의를 이어가겠다"며 본인의 입장은 "문화재에 대한 일방적 규제를 완화해 도시 슬럼화 발생을 막고 도심 내 문화재 가치를 더욱 높여 시민들이 제대로 누릴수록 유도하는 것이다"고 강조합니다.
종묘 앞 세운4구역에 서울시가 바라는 대로 고층 건물이 들어설지 아니면 정부가 다시 이에 제재를 가할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고층 건물이 종묘를 가로막는 것도 아니며 서울 도심의 슬럼화를 막고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여론도 실제합니다.
다만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여행지이자 자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서 경쟁력이 월등하다고 평가받는 일본의 교토와 이탈리아의 로마가 단순히 역사 유적의 보존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의 경관정책을 통해 도시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확보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도쿄 이전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의 경우는 2007년 경관조례를 제정해 히가시야마와 기온 일대는 15미터 이하로 고도를 제한했고 문화재 주변은 '시야축'을 법적으로 지정해 전통 사찰에서 산 능선이나 탑이 가려지지 않도록 보호했습니다.
실례로 기요미즈테라에서 바라본 히가시야마 능선과 도리이에서 비와호 방향 시야축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기반해 교토는 도시개발 과정에서 문화유산의 시각적 지배영역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건축과 개발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로마는 시야 경관 보존계획을 통해 주유 유적지별로 시야축을 지정해 콜로세움 주변은 20미터로 고도를 제한했고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돔을 향한 파노라마 시야를 가리는 건물은 지을 수 없습니다. 로마는 ‘시각적 장악력’이라는 개념을 중시해 도시 계획의 상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즉 문화재에서 보이는 풍경들도 도시 계획에 중요한 기준점으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종묘는 조선시대 왕들의 제례를 지내는 공간입니다.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결국 외세 침탈로 망한 나라의 왕들을 기리는 공간이 당장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더 잘 사는 것보다 중요할 것인가?' 반문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문화재 앞에 고층 건물들도 숱하던데 유별나게 종묘만 특별한 대우를 받을 필요는 무엇이 있나?'는 반론도 있습니다. 일견 타당한 듯 보이지만 사례들마다 상황이 다르고 무엇보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 당장의 필요 앞에서 우리가 간직하고 물려주어야 할 역사 문화유산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현생의 방해물’들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다음 세대들을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반문 해봐야 합니다.
종묘는 바깥에서 보는 것과 안에 들어가서 바깥을 보는 것과 천지 차이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지은 궁궐들은 그 공간 안에서 바라보는 도심의 남산, 낙산, 북악산, 인왕산 등 내사산과 스카이라인의 어울림이야말로 조선 궁궐 미학의 요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넷플릭스 애니메니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의 낙산공원과 남산, 북악산 아래 북촌 한옥마을이 등장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닙니다.
건축계의 최고 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프렝크 게리는 이른바 해체주의 건축을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입니다. 전통적인 건축의 고정관념을 넘어 비정형적인 디자인과 역동적인 형태, 그리고 금속 패널 등 최첨단 이미지의 건축물들을 설계했습니다. 스페인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 미국 LA 월트디즈니 트홀이 대표적입니다.
누구보다 전통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건축물을 선 보인 프랭크 게리는 2012년 9월 서울을 방문해 한 시간 남짓 종묘를 거닐었습니다. 당시 프랭크 게리가 남긴 말을 코리아중앙헤럴드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안내를 마친 뒤 건축가는 종묘에서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곳은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이 안에서 도시가 보여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이어 종묘가 지닌 고요함과 단순함에 깊이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After the hourlong tour ended, the architect lamented that Seoul’s skyline is visible from the shrine. ‘This is a sacred place. You shouldn’t see the city from here,’ he said, adding that he was moved by the serenity and simplicity of the structure."
다시 앞서 주간동아와의 인터뷰를 보면 오 시장은 안국동과 경복궁 사이 옛 주한미국 대사관 사택으로 쓰였던 '열린송현 녹지광장'에 대해서도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오 시장은 반환된 사택 부지를 둘러싸고 있던 4m 장벽을 1.2m 돌담으로 낮췄고, 담장 안에 1만㎡ 넓이의 중앙잔디광장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이런 결정에 대해 오 시장은 "'배경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을 비우는 것이다. 앞서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인근을 비워서 디자인했듯이 이곳도 비움으로 배경을 디자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오 시장은 결론적으로 일정 부분 '비움의 미학'으로 합의한 세운4구역을 지금 시점에서 굳이 파기하고 고층건물로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문화재와 역사를 복원해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시장"이라 스스로 칭했던 말을 스스로 부정하려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과연 서울의 앞날을 위한 현명한 판단일까요?
판단하기 어렵다 생각하시는 분들은 프랭크 게리처럼 한 번쯤 시간을 내 종묘에 가서 직접 둘러보시기를 권합니다. 왜 그 안에서 도시가 보이면 안된다 말을 했는지 굳이 프랭크 게리의 말을 빌지 않아도 체감하실 수 있습니다. 서울 복판 도심에서 생경한 듯 경건한 시공간의 단절감과 고요함이 바로 종묘의 가치이고 매력이며 서울이 지닌 독보적인 경쟁력이기도 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