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찬 심리상담사ㅣJTBC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연출: 임현욱/극본: 유영아/출연: 박서준, 원지안, 이주영, 강기둥, 조민국, 이엘 등)는 이경도(박서준 분)가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첫사랑인 서지우(원지안 분)를 잊지 못한 채 30대 후반에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스무 살에 만났다 헤어졌고, 스물여덟 살에 다시 만났다 헤어졌다.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는 경도와 지우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재미가 있다.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홀로여도 첫사랑의 설레었던 마음을 추억하며 즐기기 좋은 로맨틱 코미디다.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에서 경도는 첫사랑 지우를 잊지 못한다. 경도는 18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우가 이혼한 후 다시 만나면서 첫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첫사랑은 부모 외에 다른 사람과 정서적이고 신체적으로 깊은 유대감을 맺는 강렬한 첫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매우 강렬해서 뇌에 각인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첫사랑의 설렘과 열정적인 정서경험을 다시 하기는 어렵다. 첫사랑의 초두효과(Primacy Effect)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경도는 지우가 떠난 후 30대 후반까지도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지 못했다. 첫사랑의 정서경험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헤어짐 후에 지우와 경도는 30대 후반에 다시 만난다. 지우는 경도 집에서 스무 살 때 경도에게 사줬던 옷을 발견한다. 경도는 지우가 사준 옷을 가지고 30대 후반까지 첫사랑을 마음 곳에 품고 있었다. 경도는 뒤늦게 마음을 정리하려고 옷을 버리지만, 곧바로 다시 주어든다. 그리고 다 해진 옷을 수선하려고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님에게 가져간다. 경도는 그 옷을 어머니가 버리라고 할때 "내 애착인형 그런 거야"라고 저항한다. 이에 어머니는 "애착 인형? 미친놈 그러니까 장가를 가! 맛이 가잖아... 내가 젖을 덜 물려 키웠나. 저 나이에 애착 인형이 뭔 지랄이래?"라고 한다. 심리상담사로서 재밌는 표현들이다.
심리학자 존 볼비의 애착이론에 의하면, 영유아기 때 주양육자, 주로 엄마와 형성한 애착체계는 이후 모든 인간관계에서 기본값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대인관계 문제로 상담에 오는 경우에는 어린 시절 주양육자와의 정서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기억 너머 저편의 정서경험이 현재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주양육자와의 관계경험을 통해서 형성되는 애착체계를 내적작동모델(Internal Working Model)이라고 한다. 이러한 내적작동모델은 무의식적이고 잘 변하지 않는다.
내적작동모델은 주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내적작동모델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드러낸다. 신념이나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의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인식하기도 어렵다. 내적작동모델은 대인관계 패턴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대인관계나 연애에 어려움이 있다면 자신의 애착유형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자신의 무의식적인 내적작동모델을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야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부정적인 대인관계 패턴에서 벗어나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인관계나 연애관계에서 상처만 받고 힘들다면 내적작동모델의 변화와 성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내적작동모델은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가?', '타인은 신뢰할 만한가?', '세상은 안전한가?'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에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는 이러한 물음에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누군가는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갓난아기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긍·부정의 생각틀은 세상에 태어나 첫사랑인 주양육자와 상호작용하는 정서경험으로 형성된다. 아기는 주양육자의 태도와 반응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생각틀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아기는 주양육자와의 첫사랑에서 사랑을 받을 수도 있고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사랑과 상처 경험에 따라서 애착유형이 형성된다. 사랑받은 경험이 많을수록 안정형 애착을 형성하고 '나는 소중하고, 타인을 믿을 수 있고, 세상은 안전하다'는 긍정적 내적작동모델을 만든다. 이러한 아이는 자존감이 높고 대인관계가 유연하고 원만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상처받은 경험이 많을수록 불안/회피형 애착을 형성한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없고, 타인을 실망시킨다'는 부정적 생각틀을 만든다. 그러니 대인관계가 상처고 고통이다.
불안/회피형 애착은 타인과 세상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대인관계나 연애에서 거리를 둔다. 심지어 대인관계 사이에 강한 불신의 벽을 세우기도 한다. 주양육자와의 부정적 정서경험때문에 세울 수밖에 없었던 불신의 벽은 어느 누구도 대신하여 깨트려 줄 수가 없다. 그러나 성인기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불신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 갈 수는 있다. 그래서 경도 엄마가 경도에게 "장가를 가!"라고 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애착인형이 아닌 실제 안정적인 애착 대상과의 상호작용 정서경험으로 내적작동모델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의 애착유형으로 연인 관계를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 불안/회피형 애착은 사랑이 고통스럽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안정형 애착만 사랑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애착유형이 아니라 사랑의 기술이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기술이라고 분명히 했다.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에서는 지우가 경도를 기다리면 경도가 올 것 같다. 로맨틱 코미디는 해피엔딩이 좋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가 오지 않는 것처럼 기대하는 사랑은 오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은 기대하는 사랑을 하기 위한 사랑의 기술을 훈련하면서 좋은 애착 대상을 찾고 기다릴 뿐이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