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몇 해 전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친구가 보장성 보험 설계를 의뢰했다. 한국에서 하게 된 일이 아직 시작 단계라 급여가 넉넉지 않았다. 여유가 생기면 보장을 더하기로 하고 기본적인 수준의 암 보험과 의료실비보험을 많지 않은 금액으로 설계해 청약을 진행했다. 이후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아직 창창한 40대 후반, 암은 친구의 간에 숨어들어와 존재감을 키우고 있었다. 병마가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놀란 마음에 보험금 청구를 도왔고 1억원이 넘는 보험금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이제 치료에만 전념하면 되겠구나’하고 조금이나마 안도했다.
각종 데이터만 봐도 암 생존율은 크게 높아졌다. 의료 기술이 발전했고, 건강검진을 통해 조기에 질병을 발견하는 경우가 늘어난 덕분이다. 친구도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했다. 1차 항암치료에서 큰 효과를 못 본 탓에 실망감이 들었으나 통장에 들어있는 보험금은 병마와 싸우는 친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듯했다.
1년여가 지났다. 친구는 곧 새로운 항암치료를 시작한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지금까지 해온 경구용 항암약물 대신 주사 형태로 하는 치료로 입원이 필요할 뿐 아니라, 한 번에 6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래도 친구는 내가 설계한 보험 덕분에 지난 1년 걱정 없이 치료에 집중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1억원 넘게 지급된 보험금이라도 결국 친구의 통장은 병원비로 인해 가벼워졌을 거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아서다. 친구에게 발병한 암이 그저 원망스러웠다.
10년 전 여름, 보험설계사란 새 직업을 가졌다. 내 스스로에게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는 길을 가고 싶었다. 당시 개인적으로 절망의 한복판에서 방황하고 있어 더 그러했다. 그 절망의 여름이 영원할 것 같았다. 이후 영업의 어려움을 삶의 고단함과 바꿔가며 새로운 직업에 적응해 왔다. 그리고 아직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이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생의 고난이 내가 시작한 새 일에 나쁘게만 쓰이지는 않은 듯하다고 확신하게 됐다.
그럼에도 암 투병 중인 친구가 마주한 현실을 보며 보험의 한계도 떠올라 한동안 무기력했다. 미래의 위험을 보험이 완벽하게 대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에게 보험마저 없었더라면 친구가 지금까지 병마와 싸우며 완치의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이 훨씬 더 힘겨웠을 것이다.
절망의 여름을 보냈던 10년 전, 이장옥 시인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시인은 시집의 말머리에 이렇게 썼다.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하다고 중얼거렸다. 그것이 차라리 영원의 말이었다. 물끄러미 자정의 문장을 썼다. 나는 의욕을 가질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지금 당장 절망이나 고통 역시 영원하지 아니하기에 그것을 극복하거나 다스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항암치료를 앞둔 친구도, 잠시나마 무기력에 빠졌던 나도 다시 의욕을 가질 것이다. 보험이 그 의욕의 작은 디딤돌이 되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훗날이 오도록 말이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