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찬 심리상담사ㅣ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연출: 차영훈 / 극본: 박해영 / 출연: 구교환, 고윤정, 오정세, 강말금, 박해준, 심희섭 등)는 제목부터 '나는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무가치하다’는 말은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값어치와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런데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다면, 자기 자신을 돈의 가치와 도구적인 쓸모로 평가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쓸모없다는 건 무서운 말이야. 세상에 내 자리가 없다는 선고 같거든."
우리가 느끼는 무가치감은 단순한 자신감 부족이 아니다. 무가치감은 존재감과 연결되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다. 즉, 자기 존재가 관계와 사회 안에서 허락되지 않는 것 같은 고통이다.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 상담은 사람이 실제로 무가치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조건부로 배워 왔기 때문에 무너진다고 본다. 사람의 가치는 쓸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사람은 쓸모를 증명하기 전에 이미 존중받아야 할 존재다. 그러나 환경이 지나치게 경쟁적이라면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경험은 약해진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값어치를 해야 하고, 쓸모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중심 상담은 사람을 결함 있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사람 안에는 성장하고 회복하려는 힘이 있지만, 사랑과 인정이 조건부로 주어질 때 사람은 자기 자신을 조건부로 바라보게 된다. “잘해야 가치 있다”, “성과를 내야 인정받는다”, “쓸모 있어야 곁에 머물 수 있다”는 믿음이 오래 반복되면, 실패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최종 판결처럼 느껴진다.
황동만(구교환 분)에게 20년 넘게 감독으로 데뷔하지 못한 시간은 "나는 아직 가치 있는 사람인가"를 매일 다시 묻게 하는 고통스러운 불안의 시간이었을 수 있다. 그래서 황동만의 형(박해준 분)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데뷔야? 성공이야? 뭐야?”라고 묻자, 황동만은 “불안하지 않은 거. 그냥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난"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가진 것으로 한 사람을 정의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주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무너진다. 우리는 무엇을 갖추었는지로 서로를 평가하지만, 정작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갖지 못한 것들이 자기 존재를 갉아먹는다.
인간중심 상담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자기 가치의 기준이 자기 안에 있지 않고 타인의 평가에 놓였을 때 생기는 고통이다. 이미 데뷔해 성공한 감독인 박경세(오정세 분)도 이상하리만치 황동만을 치를 떨며 싫어한다. 이에 박경세의 아내 고혜진(강말금 분)은 "황동만하고 다른 인간이고 싶으면 다른 인간이라는 걸 좀 보여 줘. 똑같은 인간이니까 길길이 날뛰는 거 아니야"라고 박경세를 질타한다.
황동만에게는 8인회와 황동만을 조건 없이 만나 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친구 이준환(심희섭 분)이 곁에 오래 있었다. 황동만은 완전히 혼자가 아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8인회는 20년간 함께한 황동만의 행동과 태도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절교한다.
황동만은 20년간 감독으로 데뷔하지 못한 무가치함의 고통이 쌓이면서 자신이 의지하는 관계마저 깨뜨린다. 인간중심 상담에서 말하는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은 모든 행동을 받아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되, 그 상처가 타인을 계속 찌르는 방식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무가치감이 깊은 사람은 가면을 쓰게 된다. 괜찮은 척하고, 센 척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그러나 그 가면이 두꺼워질수록 자기 마음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인간중심 상담에서 회복은 더 그럴듯한 사람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자기 안의 불안과 수치심을 조금 덜 숨기고 만나는 과정에 가깝다.
회복은 혼자 마음을 고쳐먹는 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기 경험을 말해도 완전히 버림받지 않는 관계 안에서 시작된다. 물론 모든 관계가 끝없이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타인을 찌르는 말과 행동으로 반복될 때 관계에는 경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무가치감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때로 그를 아직 사람으로 바라봐 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무가치함은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냥 같이 사는 거지. 비 오는 날 젖은 신발을 신고 걷는 것처럼, 찝찝해도 멈출 수는 없으니까."
변은아(고윤정 분)의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현실적인 통찰처럼 들린다. 무가치함은 한 번의 성공이나 한 사람의 지지로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그 감정에 삶 전체를 맡길 수도 없다. 젖은 신발을 신고도 걸어야 하듯이, 사람은 무가치감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도 자기 삶을 선택해야 한다. 실존적 회복은 감정이 사라진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감정을 안고도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황동만에게 필요한 것은 무가치함을 완전히 이기는 일이 아니라, 무가치함에 삶 전체를 빼앗기지 않는 일이다. 친구 이준환과 변은아의 지지는 그가 다시 걸어가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지를 받더라도 자기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은 결국 자기 몫이다.
무한경쟁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치와 쓸모를 증명하라고 한다. 그러나 실존적 삶은 가치와 쓸모의 증명보다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며 살 것인가. 어떤 관계를 지키며 살 것인가. 그리고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날에도 어떤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 그럼 막 가슴이 뛸 텐데. 어떻게든 해 주고 싶어서. 감독님 글 보면서 알았어요. 아, 이 감독님은 사랑하는 게 없구나."
황동만이 어떻게 하면 시나리오의 주인공에게 파워가 생기는지 물었을 때, 변은아가 답한 말이다. 이 대사는 무가치감에서 벗어나는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무가치감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단번에 사라지는 감정은 아니다. 그러나 사랑할 대상이 있는 사람은 무가치감에 삶 전체를 빼앗기지 않을 힘을 얻을 수 있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사회의 수많은 약자든, 내가 마음을 주고 어떻게든 해 주고 싶은 대상이 있을 때 사람은 다시 움직인다. 변은아가 "사랑이 떠나고 나면 까맣게 잊고 있어서 사라진 줄 알았던 게 그대로 있는 게 보여요. 어디로 안 갔구나, 이 무지막지한 무기력"이라고 말한 것처럼, 무가치감과 무기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사랑은 그 감정이 있어도 다시 걸어가게 하는 힘이 된다.
결국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것은 자신이 쓸모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곁에 머물고,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날에도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무가치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할 대상이 있을 때, 사람은 젖은 신발을 신고도 다시 걸어갈 수 있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