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김용운 기자ㅣ음식료업종을 둘러싼 환경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국내 가공식품 수요는 구조적으로 둔화되고 있고 소비자 취향은 빠르게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이후 일부 곡물가와 운임, 환율도 상승했습니다. 과거처럼 원재료 가격이 내려가면 음식료 업체의 수익성이 일괄적으로 좋아지고 업종 주가가 함께 움직이던 공식도 약해졌습니다.
다올투자증권은 지난 13일 발간한 음식료 업종 보고서 <같은 얼굴, 새로운 맛>에서 음식료 업종에 대해 '비중확대' 의견을 유지했습니다. 업황 자체가 우호적이어서가 아닙니다. 국내 주요 음식료 기업들이 불리한 환경을 새로운 맛과 새로운 채널, 자산 효율화, 해외 브랜드력으로 돌파하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과거에는 식품 제조기업이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 수용을 이끌었고, 규모의 경제가 중요했습니다. 현재는 소비자가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트렌드를 확산시키고, 기업의 빠른 대응과 유연생산이 중요해졌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기업들이 선택한 방식은 익숙한 브랜드에 새로운 맛과 제형을 입혀 트렌드에 대응하는 전략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맛을 바꾸며 브랜드 수명을 늘린다
보고서는 우선 국내 식품기업의 'Flavor Extension' 즉 맛 다변화에 주목했습니다. 대표 사례는 기존 브랜드에 새로운 맛을 결합한 제품들입니다. 오리온의 ▲촉촉한초코칩 황치즈맛 ▲후레쉬베리 펑리수맛, 롯데웰푸드의 ▲찰떡파이 두쫀쿠맛 ▲돼지바 모나카 등을 예로 들었습니다. 즉 이미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가 황치즈, 피스타치오, 두바이식 디저트, 매운맛 등 최근 소비 트렌드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사례를 통해 국내 식품기업의 맛 다변화 전략에 긍정적 평가를 했습니다.
이 전략의 장점은 두 가지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를 띄우는 것보다 마케팅 비용과 실패 위험이 낮습니다. 동시에 익숙한 브랜드에 새로움을 더해 소비자의 재구매와 호기심 구매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식품업계에서 브랜드 수명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래된 브랜드는 인지도와 유통망을 갖췄지만 젊은 소비자에게는 낡은 이미지로 비칠 수 있습니다. 맛 다변화는 기존 브랜드의 신뢰를 유지하면서 소비자에게 새 상품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입니다. 이 때문에 보고서는 맛 다변화가 단순한 수요 촉진뿐 아니라 브랜드 수명 연장에도 기여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채널 전용 제품이 협상력을 만든다
두 번째 변화는 채널 전용 제품입니다. 유통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대형마트와 할인점 중심의 판매구조에서 다이소, 올리브영, 창고형 할인매장, 온라인, 관광상권 등으로 소비 접점이 분산되고 있습니다. 식품기업의 영업 방식도 과거의 ‘루트세일즈’에서 본부 바이어와의 협상 중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리점 영업사원이 탑차를 직접 운전하며 점포를 관리하고 진열·판촉을 지원하는 방식이 중요했습니다. 현재는 온라인과 신유통 채널이 커지면서 본부 MD·바이어와의 협상력, 채널 맞춤형 상품 기획 능력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보고서는 이런 변화를 상세히 조명했습니다.
채널 전용 제품은 이 과정에서 식픔기업의 협상력을 높이는 무기입니다. 유통사는 자기 채널에서만 팔 수 있는 상품을 선호합니다. 같은 제품이 다른 곳에서 더 싸게 팔리는 가격 비교를 피할 수 있고, 채널의 차별화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이소의 균일가 상품, 올리브영의 트렌드 맞춤형 건강·단백질 간식, 공항 관광상권의 K푸드 패키징 상품이 이런 사례입니다.
보고서는 롯데웰푸드가 선보인 김포공항 관광상권 전용 '빼빼로' 패키징, 관광상권에서 판매되는 빙그레의 해외 전용 '멸균 바나나우유', 오리온의 '온라인 전용 소용량·가성비 SKU(Stock Keeping Unit)' 등을 사례로 제시했습니다. 이는 같은 제품이라도 판매 채널과 소비자 상황에 따라 포장과 용량, 가격 구성을 달리하는 방식입니다.
보고서는 신유통채널 지표를 근거로 채널별 소비자를 이해하고, 해당 채널에서만 통하는 제품을 기획하는 능력이 새로운 성장 조건임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신유통채널의 대표격인 다이소 매출액은 2025년 4조536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3% 증가했고, 올리브영은 5조8330억원으로 21.8% 성장했습니다. 다이소의 식품·음료 카테고리 구매추정액도 건·견과류, 양념류, 즉석조리식품, 햄·소시지 등에서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식품기업 입장에서는 대형마트 진열 경쟁에만 머물 수 없는 환경입니다. 채널별 소비자를 이해하고, 해당 채널에서만 통하는 제품을 기획하는 능력이 새로운 성장 조건이 됐습니다.
공장과 자산도 다시 짠다
세 번째로 주목한 것은 저수익 SKU와 자산 효율화입니다. 가공식품 수요가 둔화되면 공장 가동률이 낮아지고 고정비 부담이 커집니다. 과거에는 대규모 생산설비가 경쟁력이었지만, 수요가 줄거나 트렌드 변화가 빨라지면 같은 설비가 부담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보고서는 CJ제일제당과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의 자산 효율화를 주요 사례로 들었습니다.
CJ제일제당은 비핵심자산 유동화, 생산시설 효율화,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재무구조 개선 방향으로 제시했습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인천3공장과 충남 논산3공장 등 3곳을 매각대상 자산으로 분류했고, 합산 가치는 약 2300억원 규모로 파악된다고 보고서는 설명했습니다.
롯데웰푸드는 2022년 합병법인 출범 이후 제빵, 육가공, 빙과 공장의 통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빵 공장은 3곳에서 2곳으로, 육가공 공장은 2곳에서 1곳으로, 빙과 공장은 4곳에서 2곳으로 줄이는 방향입니다.
롯데칠성도 경산공장을 매각하고 군산공장으로 생산을 이전했으며, 충주2공장을 맥주·음료 하이브리드 공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닙니다. 수요가 줄어드는 제품군의 생산시설을 정리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제품과 채널에 자원을 집중하는 구조조정입니다. 음식료 기업의 이익 방어력은 제품 가격 인상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생산·물류·자산 구조를 얼마나 가볍고 유연하게 바꾸느냐도 중요해졌습니다.
같은 원가 환경, 다른 실적
올해 음식료 업종의 중요한 다른 변수는 원가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전쟁 이후 일부 원재료와 운임, 환율이 상승했습니다. 다만 보고서는 원가 부담이 모든 기업에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고 분석했습니다.
원가 부담은 기업별, 지역별로 다릅니다. 소맥 가격이 올랐어도 주요 라면 업체들은 전년보다 낮은 가격으로 연간 조달 계약을 체결해 원가 부담이 오히려 완화됐습니다. 오리온은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원재료 부담이 낮아지고 있지만, 국내와 베트남은 하반기 원부재료 가격 상승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환율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에는 원화 약세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해외 매출 비중이 낮고 수입 원재료 비중이 높은 기업은 원가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보고서는 이런 환경에서 높은 해외 매출 비중, 차별화된 브랜드력, 해외 판매량 성장,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원가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기업을 선호한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가 삼양식품과 KT&G가 최선호주로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삼양식품은 매출의 약 80%가 해외에서 발생합니다. 원화 약세는 실적에 우호적입니다. 2분기에는 생산량이 전분기보다 약 10% 늘고, 생산시간 증가와 밀양2공장 가동률 상승에 따른 영업 레버리지 효과도 나타날 것으로 봤습니다. 다올투자증권은 삼양식품의 2분기 연결 매출액을 전년 대비 40.6%, 영업이익을 49.3% 증가한 1793억원으로 전망했습니다.
KT&G는 해외 궐련 매출이 국내 궐련 매출을 넘어섰습니다. 보고서는 해외 궐련 신규 국가에서는 판매량이 늘고, 기존 진출 국가에서는 가격 상승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2분기 담배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12.7%, 담배 전체 영업이익은 15.8%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하반기에는 국내 NGP 신규 플랫폼 출시와 순차적인 해외 출시, NGP 직접 판매 개시가 실적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브랜드력
보고서는 결국 '브랜드의 힘'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다올투자증권은 PepsiCo 사례를 통해 소비재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브랜드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은 PepsiCo에 북미 바틀링 자산을 외부로 매각하고 원액·브랜드·마케팅에 집중하라는 주주서한을 보냈습니다. 완제품 생산을 많이 하는 것보다 브랜드와 원액 공급, 로열티 중심의 고마진 구조가 더 높은 기업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즉 글로벌 소비재 기업은 소비자 가격 저항이 낮기 때문에 권역별로 가격을 인상할 수 있고, 이익률도 유지할 수 있기 수월한 만큼 ▲삼양식품의 '불닭' ▲KT&G의 '에쎄' ▲ 오리온의 '초코파이'에 주목했습니다.
불닭은 이미 하나의 맛을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 동남아 라면 기업들이 불닭 유사 제품을 내놓고 있고, 감자스낵·프랜차이즈 메뉴와의 협업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일본·중국·태국 기업의 매운 한국식 라면, 칼비의 불닭맛 감자스낵, 오리온의 중국 내 스윙칩 불닭면맛, 글로벌 프랜차이즈와의 협업 사례를 근거로 이런 미투 제품과 협업 확대가 오히려 불닭의 수요와 브랜드력을 확인시켜주는 현상이라고 봤습니다.
KT&G의 에쎄는 글로벌 초슬림 담배 시장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갖춘 니치 브랜드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초슬림형 담배 시장은 전체 글로벌 궐련 시장의 2~3% 수준이지만, KT&G는 이 시장에서 약 9.8%의 점유율을 보유한 것으로 제시됐습니다. 해외 궐련 ASP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은 가격 전가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리온은 중국, 베트남, 러시아 시장에서 오래된 브랜드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격 인상은 크지 않지만 국가별 식습관과 채널 특성에 맞춘 신제품을 출시하며 자연스러운 ASP 상승 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30쪽의 매출·영업이익 추이와 법인별 매출 그래프는 중국·베트남·러시아 법인이 여전히 오리온의 연결 성장을 떠받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성장 공식이 바뀌고 있는 음식료업종
음식료업종은 더 이상 단순한 방어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내수 수요가 둔화되고 원가 부담이 커지는 환경에서는 모든 식품기업이 함께 좋아지기 어렵습니다. 곡물가 하락이나 가격 인상만으로 업종 전체가 반등하는 시기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소비자 트렌드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는지, 채널별로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저수익 자산을 얼마나 효율화하는지, 해외 시장에서 반복 구매와 가격 전가가 가능한 브랜드를 갖고 있는지입니다.
‘같은 얼굴, 새로운 맛’은 이제 익숙한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소비자 변화에 대응하는 음식료 기업의 생존 공식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형 식품기업의 경쟁력은 과거의 대규모 설비와 영업망에서 이제는 유연한 제품 기획, 빠른 출시, 채널별 협상력, 글로벌 브랜드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성공한 기업은 내수 둔화와 원가 부담 속에서도 이익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브랜드력과 채널 대응력이 약한 기업은 원재료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수요 둔화와 고정비 부담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다올투자증권이 음식료 업종에 대해 비중확대 의견을 유지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업종 전체의 전망이 낙관적이라기보다 불리한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기업의 조건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하반기 음식료업종의 투자 포인트는 제품 가격 인상 여부보다 더 넓은 곳에 있습니다. 새로운 맛으로 브랜드를 되살리고, 새로운 채널에서 협상력을 확보하며,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 자산을 수익으로 바꾸는 기업이 업종 안에서 차별화될 성장 서사를 쓸 가능성이 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