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하지정맥으로 복재정맥 폐쇄술이라는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보험 청구 서류 뭐예요?" 보험설계사 경력 10년이 넘어가다 보니 새로운 보험 의뢰만큼 이런 청구 관련 문의도 증가했다.
내 고객들의 보험 자산은 내가 유치한 계약 외의 것들도 목록을 정리해 두고 있어서 이런 문의를 받으면 청구 서류만 알려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보험금 청구가 가능한 항목을 함께 안내한다.
고객이 각 보험사에 일일이 연락해 알아보는 일은 보험업 종사자가 아닌 이상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청구 항목별 서류가 다른 탓에 이왕이면 한 번에 안내하려 마음을 쓴다. 보험금 청구 접수는 물론이요, 고객에게 사정이 있어 직접 발급이 어려울 땐 위임장을 받아 대신 서류를 발급하러 가기도 한다.
그 또한 고객 관리 일환이라 여기고 있어 귀찮다고 여긴 기억은 없다. 오히려 이런 일들이 보험 영업에 귀한 경험으로 작용한다는 걸 경력이 더 해질수록 깨닫고 있다.
보험사는 금융회사의 성격도 있어 상당히 보수적인 집단이지만 동시에 변화에 민감한 곳이다. 금융당국의 방침과 사회, 경제, 정치 상황 등에 긴밀하게 반응하다 보니 보험상품은 개정을 거듭하거나 아예 판매가 중지되는 상품도 생긴다.
2015년 홍상수 감독의 영화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보험과 관련된 영화는 물론 아니지만 이 제목이야말로 보험의 생리를 제대로 반영한 표현이다 싶어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같은 이유로 어느 설계사가 "예전 보험 잘못 가입하셨네요"라고 표현했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내가 얼마 전 유치한 보험도 훗날 틀리게 가입했다는 말을 들을지 모른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간혹 과거와 지금의 보험상품을 비교하다 그런 상상을 한다. 하긴 인간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보험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보험상품이 자주 개정되고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는 이유는 의료기술적으로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름조차 없던 질병을 발견되기도 하고 기술 의 발전으로 효과가 뛰어난 혁신적인 치료법이 속속 등장한다. 건강보험도 그만큼 분주하다. 어떤 치료법을 보험이 적용되는 '급여'로 할 것인지 100% 환자 부담이 되는 비급여로 할 것 인지를 정해야 한다.
심지어 이마저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상황이 발생한다. 중증 환자로선 당연히 급여가 되는 치료법이 많기를 바라지만 의료수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 건강보험과 의료 사이에 실손보험 같은 사적 보험이 들어있다. 실손보험은 비급여 치료의 금전적 부담을 상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오랜 기간 쌓인 모랄헤저드로 개정의 개정을 거듭해도 속 시원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 상태다.
얼마 전 내 고객 중 실손보험을 가입한 지 20년 정도 되었지만, 지금껏 청구할 일이 없다가 한 쪽 눈의 백내장이 심각해 멀쩡한 다른 한 눈도 시력 저하가 예상되어 백내장 수술과 렌즈 삽입술을 받았다. 상태 확인을 위해 8시간 이상 체류해 입원확인서도 받았고 검사지 및 전문의 소견서까지 모두 제출했음에도 실손보험 금을 거의 받을 수 없었다. 과거, 소위 의료 쇼핑으로 백내장 수술 대상자를 무더기로 유치해 수천만원의 실손보험금과 수수료를 챙긴 이들만 이득을 본 셈이다.
현재 백내장은 청구 민감 항목이 되어 내 고객과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불가피하게 나오기도 한다. 여전히 해결이 요원한 혼란 속에 지난 5월 5세대 실손보험이 시작되었다. 이와 함께 '관리급여'라는 낯선 용어가 등장했다.
관리급여라니 이게 뭘까? 5세대 실손에서 가장 커다란 변화는 '비급여' 항목이 중증과 비중증으로 나뉘어 자기부담비율을 차등해 적용하겠다는 점인데, 중증 비급여에는 기존 4세대와 마찬가지로 본인 부담이 30%를 적용하지만, 비중증 치료에 대해서 는 50%를 부과한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일부 비급여 치료를 '관리급여'로 지정해 환자가 전국 어느 병원에서 받아도 동일한 금액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정가제를 도입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비용을 온전히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치료법이 관리급여로 지정되면 '급여' 항목으로 들어오게 되어 환자의 부담이 낮아지고 실손보험 청구도 용이해 전반적인 의료비 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재정 누수나 과잉 진료 우려가 있는 의료 항목을 선별적으로 통제하고 지속 가능한 보장을 위한 안전장치로 도입된 것이 바로 관리급여 제도다. 5세대 실손보험과 관리급여 지정은 이제 막 시작 단계라 향후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은 미지수다.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변화하고 있다. 사적 보험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다만, 국민 건강보험도 실손보험도 어느 일부의 이익을 위해 나타난 제도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비급여와 동일한 비율인 100% 자기만족을 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내가 짊어지겠다는 마음을 나눌 수만 있다만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보험에도 이 말이 통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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