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보험설계사의 업무 가운데 보험금 청구 관련 업무도 상당히 비중이 크다. 청구 관련 업무 중에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가 무엇이냐는 것과 어떤 질병으로 이런 치료를 받았는데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이 있냐는 문의다.
다행히 가입한 보험에서 보험금이 잘 지급되면 고객도 그렇겠지만 나도 기분이 좋다. 몸이 아픈 건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보험금이 고객의 치료에 중요한 힘이 될 테니 내 직업 참 보람 있구나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약관상의 문구 하나로 보험금 지급이 부결되면 어쩔수 없이 힘이 빠진다. 내가 신이 아닌 이상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가입은 전적으로 고객의 선택이긴 하지만 내가 뭔가를 놓치거나 잘 못했나? 싶어 전전긍긍한다. 아마도 보험설계사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앓이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문의를 받았다. 내게 가입한 건 아니지만 15년쯤 전 어머니 이름으로 제법 큰 금액의 보험을 들었고, 건강하던 어머니가 최근 병환으로 뇌수술을 받으셨다고 한다. 병명은 뇌수막종이었다.
뇌수막종은 뇌와 척수를 둘러싼 얇은 막인 수막에 발생하는 종양이다. 원발성 뇌종양 중 가장 흔한 유형이며 약 90%가 양성이다. 양성이긴 하지만 위치에 따라 수술 위험도가 높을 수 있고 예후도 예측이 어려워 가볍게 볼 질병이 아닌 데다, 상황에 따라 수술을 비롯한 치료비에 거액이 필요할 수 있다. 지인 어머니의 상황이 바로 그랬다. 이미 몇 천만원 단위 치료비가 들어갔고 지인은 어머니께 들어드린 보험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진단서와 소견서를 읽은 후 해당 보험의 약관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머니의 뇌수막종에는 가입한 보험이 적용되지 않음을 확인하고 나는 낙담에 빠졌다. 진단서와 약관, 소견서, 치료 세부 명세서를 읽고 또 읽었다. 뭐라도 내가 발견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수술, 패혈증으로 인한 소뇌 경색증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약관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뇌수막종에 적용되는 진단금 항목은 없었지만, 수술 특약과 입원 특약, 뇌경색 진단에 대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을 듯했다. 청구 후 반가운 결과를 들었다. 지급 가능이라는 내용이었다.
신입 설계사 교육을 위해 강의를 할 때 상품 설명서를 정독하라는 말을 잔소리처럼 한다. 약관을 읽으면 더 좋겠지만 상품마다 백과사전 두께의 약관을 다 읽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상품은 계속 개정과 절판을 반복하고 약관 역시 그때마다 조금씩 바뀌기 때문이다. 상품 설명서는 약관의 요약본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약관 대신 읽으면 보험 이해도가 한결 높아진다.
계약을 체결하는 고객에게도 가능하면 상품 설명서를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지만, 실은 쉽지 않다. 설계사도 100% 이해가 어려운 용어가 많아 일반인에게는 더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읽었다 한들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잊는다. 그래서 설계사 역할이 중요하다. 고객에게 궁금증이 생기면 찾아서라도 안내해야 한다. 뜻밖의 고난 앞에서는 누구나 당황하며 그때 돈은 결정적인 힘이 돼주기도 하니까. 당장 쓸 일도 없을 것 같은 보험을 드는 까닭도 그게 아니겠나.
대체 보험 약관은 왜 이렇게 내용이 방대하고 용어가 어려운 걸까? 보험설계사 10년의 경력을 가진 내게도 보험 약관은 이상한 문서다. 수많은 사람이 인생의 위험을 대비해 서명하는 보험 계약임에도 약관을 끝까지 읽은 고객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읽어보려 한 가입자는 있겠지만, 대개는 중도에 포기한다. 어렵게 쓰여있는 탓이다. ‘면책’, ‘준용’, ‘감액지급’, 이런 용어가 빼곡하게 들어있는 보험 약관은 사실상 전문가만의 언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보험 약관의 특징으로 인해 결정적인 순간에 법은 가입자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정보와 협상에 약한 비전문가 고객이 약관의 문구를 고쳐달라 요구할 수 없으므로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라는 ‘작성자 불이익 원칙’을 두고 있어서다. 간혹 약관의 이런 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거대 조직이 일방적으로 만든 규칙을 개인이 다 알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일을 법은 부당하다고 본다.
약관이라는 방패가 아무리 견고해도 사실 싸우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방대한 내용이 담긴 약관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부분은 어떤 경우에 지급하지 않는지(면책사유 및 알릴 의무), 어떤 경우에 보험금을 삭감하는지(감액 규정), 이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보기를 권한다.
보험 약관이 더 널리 읽히기 위해서는 요약서를 의무화하고, 용어를 쉽게 바꾸는 등 어느 회사나 표준화된 문장과 증명 방식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보험사도 모르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보험 제도 시작이 일본의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보니 약관 역시 이를 보완해 사용해 온 지 오래고, 이걸 뜯어고치는 작업이 현실적으로 당장 이루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약관은 매우 어렵다. 약관은 읽지 않아도 나를 지키는 방패가 된다. 하지만 읽은 약관은 내가 위험한 순간에 나를 지켜줄 더 강한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