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정재혁 기자] 은행연합회와 생명보험협회의 신임 회장이 민간 출신 인물로 내정되면서, 일찌감치 관(官) 출신 인사를 협회장에 앉힌 손해보험협회가의 겸연쩍게 됐다. 앞으로 관치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단골 손님’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오전, 생보협회(회장 이수창)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신용길 KB생명보험 사장을 생보협회 34대 회장에 단독 후보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지난 27일, 은행연합회(회장 하영구) 역시 김태영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을 차기 회장 단독 후보로 추천한 바 있다.

김태영 전 부회장과 신용길 사장은 모두 민간 출신 인사들이다. 당초 은행연합회장은 관 출신 인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 등이 대표적이다. 생보협회장도 업계에서는 관 출신 인사를 선호한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세간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은행연합회와 생보협회가 민간 출신 회장을 내정한 이유는 관치 논란에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퇴직 고위 관료 출신 올드보이(OB)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자, 금융권 인사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기 때문.
우리은행도 이광구 행장이 채용비리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행장 후보 선정 과정에서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우리은행장 최종 후보에 관료 출신 인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러한 금융권 분위기를 고려하면, 대표적 올드보이 인사인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을 회장으로 ‘선점’한 손보협회의 선택이 자칫 ‘악수(惡手)’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관치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비난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것.
지난 6일 손보협회장으로 공식 취임한 김용덕 회장은 행정고시 15회로 공직에 입문해 2003년에는 관세청장을 지냈다. 참여정부 때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맡은 전력이 있어 현 정부와도 코드가 맞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손해보험 업계 관계자는 “신임 손보협회 회장은 친정부 성향의 낙하산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세간의 이목을 끌기가 쉬울 것 같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익단체의 성격이 강한 손해보험협회 수장으로 활동해야할 운신의 폭을 제한받기가 쉽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일례로, 처음 김용덕 회장이 손보협회장으로 결정되자 헤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차기 수장을 선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은행연합회와 생보협회가 난감한 처지에 빠지게 됐던 것.
금융업계 협회장들은 먼저 결정되는 손보협회장과 '급(級)'을 맞추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인데, 규모가 작은 손보협회가 거물급 인사를 영입하는 바람에 은행협회와 생보협회가 마땅한 인사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는 전언이다.(편집자주: 결국, 생보협회는 소형사 출신의 대표를 수장으로 맞이하는 묘수를 발휘했다.)
사실, 손보업계 내부에서는 '힘 있어 보이는' 김용덕 회장 선임을 반기는 의견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협회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업계의 의견을 잘 대변해 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컸던 것이다. 하지만, 관치 논란에 대한 가능성이 커질 수도 있어 이러한 기대감도 사그러드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한 손보업계 관계자는 “김 회장이 처음 선임될 때도 관치 논란은 있었다”며 “이후 은행연합회나 생보협회도 관 출신 인사를 회장으로 뽑을 것으로 예상돼 부담이 덜했는데, 결과적으로 두 협회 모두 민간 출신 회장이 내정되면서 손보협회만 상황이 난처하게 된 건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