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박경보 기자ㅣ레저열풍에 힘입어 SUV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엔트리카 시장도 큰 폭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 경차와 소형 세단이 ‘첫 차’로 사랑받았다면, 지금은 소형 SUV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모습이다.
세단 위주로 판매 라인업을 구성했던 현대차도 인기가 떨어진 세단 대신 SUV를 강화하며 과감한 ‘세대교체’에 나서는 중이다. 소형 세단인 엑센트를 국내서 단종시키고 소형 SUV인 베뉴를 출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경차가 없는 현대차는 세단 대신 SUV를 막내로 내세운 셈이다.
엑센트는 아반떼에 이어 두 번째로 글로벌 1000만대 판매를 넘긴 차종이지만, 소형차 시장이 갈수록 위축되면서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소형차라고는 르노 클리오 정도지만 판매량은 극히 저조한 상황. 엑센트의 배턴을 이어받은 베뉴는 국내 소형차 시장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새롭게 출시된 베뉴는 엄밀히 말하자면 ‘초소형 SUV’다. 기아차 스토닉과 비슷한 차체를 갖고 있고, 코나와 티볼리를 비롯해 곧 출시될 셀토스 등 기존 소형 SUV보다 한 체급 밑이다. 현대차가 베뉴를 소개할 때 ‘소형 SUV’라고 하지 않고 ‘혼라이프 SUV’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 형님들과 같은 경쟁선 상에 놓이지 않겠다는 의중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혼라이프 SUV’, 즉 혼자 타는 SUV답게 베뉴의 실제 차체는 사진보다 더 작게 느껴졌다. 기아차 쏘울과 비슷한 높은 전고만 제외한다면 경차로 봐도 무방할 정도.
실제로 베뉴의 제원은 전폭 1770mm, 전장 4040mm, 축간거리 2520mm, 전고 1585mm다. 기아차의 경차 레이와 비교하면 전장이 45mm 길고 축간거리는 동일한 수치다. 다만 나름 ‘SUV’인지라 전폭은 레이보다 175mm나 더 넓다. 특히 전고는 형님뻘인 코나보다 35mm나 높은 점도 인상적이다. 다시 말해 소형급임에도 충분한 공간 활용성을 갖췄다는 이야기다.
베뉴의 운전석을 키가 180cm인 기자의 몸에 맞춘 후 2열에 앉아보니 운전석 시트가 양 무릎에 닿아 상당히 불편했다. 2열 레그룸이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사실상 성인 남성이 2열에 앉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혼라이프’ 라는 수식어답게 혼자, 또는 조수석까지 2명 탑승하기에 적합한 실내 공간이다.
2열에 성인이 앉긴 힘들지만, 짐을 적재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소형SUV 치고 전고가 높은 덕분에 트렁크 공간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편. 베뉴의 트렁크는 355ℓ(VDA 기준)의 수화물을 적재할 수 있지만, 2열시트를 모두 눕힐 경우 중형차 부럽지 않은 넓은 적재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2열에 누군가가 타지만 앉는다면 작은 차체에도 얼마든지 큰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셈.
베뉴의 외관은 ‘리틀 팰리세이드’로 봐도 좋을 만큼 현대차 SUV의 패밀리룩을 그대로 따랐다. 젊은 1인가구를 겨낭한 차종답게 현대차 라인업 가운데 가장 개성적인 외관을 갖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차의 모든 SUV가 공유하는 분리형 헤드라이드와 캐스캐이딩 그릴을 기반으로 범퍼에 사각형 LED 주간주행등을 적용해 차별화된 개성을 충분히 살렸다.
특히 측면에서 보면 해치백에 가까운 코나보다 훨씬 SUV다운 면모를 갖췄다. 과감한 선이 들어간 캐릭터 라인과 볼륨감 있는 휠하우스 덕분에 작은 차체에도 제법 단단한 이미지의 SUV로 빚어졌다.
하지만 전면과 달리 후면부는 상대적으로 밋밋한 모습을 하고 있어 상당히 왜소하게 느껴졌다.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반짝거리는 ‘렌티큘러 렌즈’가 세계 최초로 적용됐지만, 추가 비용이 드는 옵션사양이기 때문에 이렇다할 개성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전반적으로 외관 디자인은 만족스러웠지만, 실내 디자인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개성적인 외관에 비해 아무런 특색이 없는 코나와 매우 흡사한 첫 인상이다. 운전자 입장에선 차량의 외관보다 내부 디자인을 훨씬 더 많이 보게 되는데, 정작 차량의 콘셉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밋밋한 인테리어가 적용됐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실내의 일부 가니쉬를 다른 색으로 바꿀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고객이 타깃이라면, 좀 더 과감한 디자인이 들어 갔어야 하지 않을까.
베뉴의 심장은 현대차가 새롭게 개발한 차세대 엔진인 스마트스트림 가솔린 1.6 엔진이다. 무단변속기와 맞물린 이 엔진은, 연료를 분사할 때 GDI(직분사)와 MPI(간접분사) 방식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행 환경에 따라 적절한 분사 전략을 쓰기 때문에 효율을 크게 향상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뉴의 엔진은 최고출력 123마력, 최대토크 15.7kgf·m의 힘을 내며, 복합연비 13.7km/ℓ(15인치 타이어 기준)의 우수한 복합연비를 확보했다. 고속 위주로 시승한 탓에 계기판의 평균연비가 10.0km/ℓ를 넘지 못했지만, 복합연비를 뛰어넘는 15.0km/ℓ 이상의 평균연비를 기록한 기자도 있었다. 가속페달에 힘을 주지만 않는다면 기대 이상의 연비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효율을 위해 동력성능이 크게 희생됐다는 점이다. 베뉴에 적용된 이 엔진은 이미 아반떼와 K3에서도 겪어봤기 때문에 동력성능에선 큰 기대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다만 아반떼보다 차체가 작은 만큼 좀 더 날렵한 거동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달리기 실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알피엠(엔진회전수) 게이지가 줄곧 7000 이상의 레드존을 넘나들지만, 속도 증가는 그에 비례하지 않았다. 스포츠 모드를 써봐도 거동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무단변속기가 적용된 것도 한몫한 듯 했다. 달리기를 위한 차량이 아닌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고속주행 시 엔진음만 요란하고 속도가 오르지 않는 점은 분명한 스트레스였다.
베뉴의 동력성능은 기대 이하였지만 현대차답게 각종 편의사양은 부족할 것이 없었다. 특히 스포츠, 에코 등 드라이브 모드와 함께 ‘2WD 험로 주행 모드’를 지원하는 것은 칭찬할 부분. 다만 4륜구동을 선택조차 하지 못하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현대차는 가격경쟁력을 위해 과감히 4륜구동을 삭제하고 2륜모델만 판매하는 것으로 보인다. 험로주행모드는 29만원짜리 선택사양이기 때문에, 4륜구동과 맞물리지 못할 바엔 차라리 선택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험로주행모드가 있다고 하더라도 베뉴로 험로를 다니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
전방 충돌 방지 보조(FCA)를 비롯해 차로 이탈 방지 보조(LKA), 운전자 주의 경고(DAW), 하이빔 보조(HBA) 등 첨단 지능형 주행 안전 기술이 기본 적용된 것도 만족스러웠다, 실제 주행 시 부지런히 작동했던 FCA나 LKA 기능은 초보운전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내비게이션의 검색 편의를 높인 카카오의 음성인식 시스템 ‘카카오아이’가 탑재됐다. 스마트폰 기능을 차량 디스플레이 화면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도 모두 지원돼 주요 고객인 젊은층의 니즈를 잘 반영했다.
하지만 이 같은 편의사양들에서도 아쉬움은 느껴졌다. 센터페시아 중앙에 자리한 심리스(Seamless) 8인치 디스플레이는 위로 솟아오른 ‘플로팅’ 타입이 아니다. 이 때문에 운전을 할 때 화면이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다.
특히 이젠 필수옵션으로 자리잡은 ‘통풍시트’를 선택조차 할 수 없는 점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동생급인 경차 모닝에도 적용된 사양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기존 엑센트를 대체하는 베뉴의 판매가격은 무단변속기를 기준으로 1620만~2111만원에 책정됐다. 같은 엔진을 적용하고 실내 거주공간이 훨씬 넓은 아반떼(1558만원~)가 트림별로 약 60만원 저렴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성비가 높다고 보긴 어렵다. 혼자서 캠핑 등을 자주 떠나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 아반떼를 첫 번째 선택지에 올리라고 권하고 싶다.
◇ 총평
기존 엑센트를 대체하는 베뉴는 혜택이 줄어 애매해진 모닝과 스파크 등 경차를 위협하기 충분한 상품성을 갖고 있다. 경차보다 월등한 공간 활용성은 물론이고, 개성에 맞춰 차량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점도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특히 카텐트, 반려동물 패키지 등 애프터마켓 상품들이 준비된 것도 칭찬할 만한 점이다.
하지만 고객을 유인할 수 있는 결정적 ‘한방’이 아쉽다. 험로주행모드를 적용하고도 4륜구동을 선택조차 할 수 없고, ‘개성’을 강조한다더니 인테리어는 너무 평범하다. 특히 엑센트의 대체 차종이면서도 사실상 윗급인 아반떼보다 비싼 점도 구매를 망설이게 되는 부분. 뚜껑을 열어봐야 하겠지만 베뉴가 시장에 자리잡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