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에서 스토리 디자이너로..오십, 이야기 잔치는 계속된다

국내 1호 스토리 디자이너 유희경 작가..방송작가 25년 환경·문화 등 교양 다큐 직접 기획
“스토리를 세련되게 구성하는 게 내 일”..‘만학도 출신 최우수장학생 졸업’ 인생 스토리텔링도

 

[인더뉴스 권지영 기자] 유투브 크리에이터, 심리 기획자, 스토리 디자이너···.


이름하여 ‘신종 직업’들이다. 이전엔 영상 콘텐츠 제작자, 심리 상담가, 작가로 불렸던 직업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춰 진화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미디어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1인 미디어가 각광받으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킬링 콘텐츠'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이런 콘텐츠의 핵심은 스토리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 기존 이야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해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일, 즉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중의 시각에서 최적화된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공감을 끌어내는 일을 업으로 삼은 '스토리 디자이너' 유희경 작가를 만났다.  

 

유희경 스토리 디자이너는 본인을 이야기꾼으로 소개했다. 잡지사 기자를 거쳐 25년 방송작가 경력을 통해 창의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토리 디자이너로 발전했다. 기존에 있는 이야기에 아이디어를 가미해 글, 영상, 전시 작품으로 보여주는 직업이다. 


“미디어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대중의 흐름을 재빠르게 읽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기존 콘텐츠를 좀 더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엮어서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내는 작업이요. 모두가 봤을 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 바로 스토리를 디자인하는 일이죠.”


그는 대학 졸업 후 신문기자를 꿈꿨다. 여러 신문사 시험에서 낙방한 끝에 당시 유명했던 종합 여성지 '여원(女苑)'의 기자로 취직했다. 하지만, 3개월 수습 기간 중 우연히 KBS로 취재간 것을 계기 삼아 '방송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당시 생소했던 '프리랜서 방송작가'를 하겠다고 나서니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일이 좋았던 그는 방송국에서 휴일도 없이 일에만 전념했다. 1990년 KBS2에서 방영한 '언제나 젊음'이라는 60분물 종합구성 프로그램이 첫 작품이었다. 


“함께 일했던 PD가 1호 여성 PD여서 서로 24시간 붙어서 일했는데, 정말 재미있었고 보람 됐어요. 그 땐 작가 한 명이 모든 일을 했죠. 덕분에 스튜디오, 주제토크, 야외 등 여러 포맷의 방송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고, 프로그램 끝날 때 내 이름이 스크롤에 올라가면 너무 뿌듯했어요.”


어느덧 작가로 15년 차에 접어드니 기획일에 안목이 생겼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줄곧 맡아온 유 작가는 MBC 다큐스페셜 '종자전쟁! 그 희망의 열쇠'라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 이 프로그램은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기획하는 내내 무척 속상했던 경험이 있다. 

 

“생물 자원을 취재하면서 식물 종자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논문 등을 찾아보니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토종 식물 종자를 다른 나라에 많이 빼앗겼더라고요. 대표적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는 구상나무가 우리 식물인데, 지금은 로열티를 내고 있잖아요.”


유 작가는 취재를 하면 할수록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고 토로했다. 생물과 곤충 등은 가치가 어마어마한데 제대로 못챙기고 오히려 돈을 지불하고 있으니, 화가 났다는 것이다. 환경 다큐 프로그램은 '방송위지원금선정작'으로 상까지 받았다. 


“이런 분야는 기획부터 방송까지 어렵지만 시청률은 기대이하였어요. 하지만, 꼭 다뤄줘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했고, 이후 국내 부품산업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당시 정말 생소했던 트렌스젠더의 이야기도 다뤘습니다. 이러니 제가 예능 쪽이랑은 안 맞죠. 하하.“

 

MBC로 옮기면서도 아침 교양 프로그램을 맡았다. 육아를 병행하면서 케이블 방송 위주로 일했고, 비슷한 시기 기업의 광고·홍보 문구를 쓰는 일을 제안받았다. 경기도 화성에 '향남제약일반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내용의 프로젝트였다. 업계에 소문이 났는지 일이 끊이지 않았다. 

 

일복이 많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첫째와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도 경력 단절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썼고, 워킹맘으로 마음 고생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일만 바라보고 앞으로 달렸다. 스스로도 일밖에 모르는 워커홀릭이라고 평했다. 

 

만학도의 길도 걸었다. 마흔 넘어 진학한 대학원(성균관대 문화콘텐츠학)에서는 3학기 내내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졸업 때에는 최우수학생으로 총장 표창의 영예도 얻었다. 이 시기 대규모 행사의 기획안 스토리 구성을 맡는 일과 기업의 사사를 만드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기존의 이야기에 창의적인 내용을 더해 스토리를 디자인했다. 백제 문화제 미디어 파사드 '백제의 혼' 스토리텔링 작가로 참여했다. 충북지식산업진흥원 돌미로공원 미디어 파사드 작업도 맡았다. 

 

 

“백제문화콘텐츠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구성해 미디어 파사드(건물 외벽 LED 조명 등 활용한 영상표현기술)를 연출했어요. 백제 선화공주 이야기를 재미있게 각색했는데, 금강을 타고 가면서 연꽃에서 빛이 나오는 등 백제식건물에 표현했습니다.“

 

웰크론그룹의 25주년 사사(社史)도 유 작가의 작품이다. 기업의 역사를 스토리텔링 구조로 제작, 소설책 읽듯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도록 구성했다. 웰크론그룹 사사는 '2017년 대한민국커뮤니케이션 대상 사사부분 우수사사대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올 11월에 개최되는 2018 제주국제감귤 박람회 역사관 콘텐츠의 스토리디자이너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쉼없이 달려온 그는 아직도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쳤고, 아이디어도 샘솟는다고. 

 

“최근엔 설명하기 힘든 직업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스토리텔러는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거라면 스토리 디자이너는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재창조하고, 세련되게 포장하는 일을 하죠. 지금도 여러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인터뷰 말미에 유 작가에 '국내 1호 스토리 디자이너'로 소개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쳤다. 거창하게 소개되는 일은 쑥스럽다며, 조용히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고 전했다. 

 

“제 사주에 보면 70살까지 일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일은 정말 많아요. 스토리 디자이너로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능력있는 작가 후배들과도 같이 일하고 있어요. 요즘엔 일이 넘치다보니, 같이 일할 수 있는 후배 양성에도 관심이 가네요. 전 정말 일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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