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민주주의 남기고 ‘동지 김대중’ 곁으로 떠나다

대학 시절 당찬 태도로 ‘다스’ 별명 얻어..전쟁 겪으며 가부장제 폐해 눈떠
박애주의·화합에 기초한 포용적 정치..평화 중시한 햇볕정책에서 드러나

[인더뉴스 이진솔 기자]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에서 이희호는 무일푼이던 김대중에게 프러포즈를 받는다. 1962년 당시 이희호는 미국에서 사회학 석사과정을 밟은 뒤 귀국해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연합회에서 여성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때 김대중은 무일푼 정치 지망생이었던 데다 전처와 사별하고 홀로 두 아들을 부양하느라 형편도 변변찮았다. 그런데도 청혼을 승낙한 이유는 두 사람이 공유하던 민주주의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이 선택은 이희호의 삶을 바꾼 중대한 결정이 됐다.

 

“그에게 정치는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 이유였다면 나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였다.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그와 나를 동여맨 끈이 되었다.” (‘동행’ 中)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행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먼저 세상을 떠날때 까지 47년에 걸쳐 우리 근현대사 곳곳에 스며있다. 이희호 이사장은 대통령 부인을 넘어 1세대 페미니스트이자 정치가로서 민주주의라는 유산을 남기고 10일 별세했다.

 

◇ 전쟁 속에서 가부장제 폐해 목격..1세대 페미니스트 활동

 

1946년 서울대 사범대에 입학한 이희호 여사는 대학생 시절 독일어 중성관사인 ‘다스’(das)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학생들을 이끌며 매사 당당한 리더십을 발휘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전통적인 여성성이 강조되던 당시 세태에 비춰보면 파격적인 별명이다.

 

되려 여학생들이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면 화가 났다고 한다. 이희호 이사장은 평전 ‘고난의 길, 신념의 길’(한겨레)에서 “신입생 환영회 같은 행사에서 여학생들은 수줍어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어 후배 여학생에게 고개를 똑바로 들고 당당하게 앞을 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이었다. 대학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이희호 이사장은 부산 피란 생활 중 가부장제가 드러내는 참상을 극명하게 목격한다.

 

“여성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였다. 남성은 전쟁터에서 싸우다 전사하면 ‘조국을 위해서’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순국선열 반열에 올라간다. 그러나 후방의 희생자인 여성들에게는 불명예와 수모만 있을 뿐이었다.” (‘동행’ 中)

 

강렬한 경험은 이후 페미니즘 운동을 추진하는 동력이 됐다. 1958년 YWCA에서 기획한 ‘혼인신고 합시다’ 운동을 시작으로 여성문제연구원 간사를 거치며 여성 권리 쟁취에 매진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은 남편은 8촌까지 친족으로 인정하지만, 아내는 4촌까지만 인정하는 가족법이 1989년 개정되면서 결실을 본다. 재산권과 상속권 행사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

 

 

아내를 따라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희호 이사장의 노력을 정책에 반영했다. 여성가족부가 창설됐고 장관 4명을 포함해 여성 장차관 수를 크게 늘렸다. 이희호 이사장과 만남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결과들이다.

 

◇ 박애주의·화합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앙 정치적으로 실천

 

이희호 이사장은 감리교 신자였던 부모를 따라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대학 시절 속해있었던 기독교청년학생운동과 유학에서 돌아와 몸담았던 YWCA는 기독교 단체다. 그가 생전 펼친 정치 운동에서도 신앙에 기반한 박애주의와 화합의 실천이 드러난다.

 

1973년 3월 28일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으로 망명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이러한 신념이 드러난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정치 탄압을 가하는 이들에게도 기도하겠다고 말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들 위에 축복이 있기를 비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으라’는 말씀대로 나는 그들을 위해서도 빌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옥중서신. 2: 이희호가 김대중에게’ 中)

 

가톨릭 신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반대편을 포용하는 리더십을 드러낸 바 있다. 1998년 2일 취임식에 과거 정적이었던 이들을 초대했으며 그들을 용서했다.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햇볕정책을 내세워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했다.

 

이희호 이사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도 종교적 신념이 담겨있다. 그는 유언을 통해 “국민들이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