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카페 운영자] 취업에 고민하는 <인더뉴스> 청춘 독자들을 위한 두 번 째 기획 시리즈. 언론계 입문을 위한 지상 특강. 국내 유일, 국내 최다 12만명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언론고시카페-아랑>의 운영진의 협조를 받아 논술 첨삭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 문제
지난해 7월부터 세종특별자치시가 공식 출범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목적이 있었지만,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비효율과 공무원의 삶의 질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오늘날 세종시 문제의 이유와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2013 SBS 기출 변형]
◇ 수험생 답안
“히말라야산을 오르는 등반대가 셰르파의 요구로 잠시 휴식을 취할 때, 한국 등반대는 ‘짜르디 짜르디(빨리빨리)’를 외치며 재촉한다. 그러면 현지 셰르파는 “비스따리 비스따리(천천히 천천히)”라고 대답한다. 아직 영혼이 따라오지 못했으니 영혼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행정복합도시 세종시체제도 마찬가지다. 세종시는 지난해 국무총리실을 시작으로 올해는 고용부등 18개 기관이 이전했고 내년에는 국세청 등 6개 기관이 내려올 예정이다. 하지만 세종시에는 부처의 이전만 급속도로 추진됐다. 일하는 방식은 과거 그대로다. 국회 회기 중에 장관이 국회에 출석하면 국장, 과장 등 실무자들까지 줄줄이 국회로 가야 했다. 올해 세종청사에서 열린 국감은 20일 기간 중 3일에 불과했다. 셰르파의 말처럼 몸만 왔지 영혼 없는 행정도시의 이전인 셈이다.
행정중심도시로 설계된 세종시가 오히려 국가 행정의 걸림돌이다. 2014년 공무원 인식 조사에 따르면 세종시로 이전한 부처 소속 공무원의 84%가 세종시로 온 뒤 행정 효율성이 낮아졌다고 응답했다. 공무원을 일하게 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무회의를 비롯한 정부 부처 간 공식회의나 국회와 관계 공무원의 업무 협의는 여전히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물론 정부나 국회는 세종시의 비효율성을 낮추기 위해 화상회의나 전화회의 등 정보기기를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고위층이 불편해하니 시스템은 있으나마나다. 서울 여의도 국회와 정부세종청사를 연결한 화상회의 시스템은 이번 국감 기간에도 예약 건수 ‘0’이다. 국회 기획재정위 대회의실과 세종청사를 연결해놓은 1회선의 시범망은 오픈한 지 이미 석 달이 넘었다. 결국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쪽은 하위직 공무원이었다. 앉아서 보고를 받는 고위층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할 리 없다. 그러는 사이 수십억원의 혈세를 들여 만든 화상회의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됐다.
행정체제가 바뀌었다면 기존의 일하는 방식도 대폭 혁신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본과 베를린으로 행정기관이 분산돼 있는 독일을 벤치마킹하여 원격 화상회의 시스템은 잔뜩 구축해놓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스템 구축이 아니다. 독일 정부가 화상회의를 통해 어떻게 부처 간 소통 능력을 키웠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해답은 고위층의 인식 변화다.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들이 조금만 불편을 참으면 행정 능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대면회의만 고집할 게 아니다. 국회 회의라면 의원들은 여의도에서 따져 묻고, 총리와 장관들이 세종청사에서 성실히 답하면 된다. 총리가 세종청사 화상회의실에 앉아 국무회의를 주재하면 서울청사 과천청사 그리고 청와대의 참석자들이 화상에서 만나면 된다. 김대중 정부 말기 반 년간 격주로 거르지 않고 화상 국무회의를 한 바 있다. 의지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무회의를 비롯한 정부 부처 간 공식회의의 40%는 화상회의로 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법령을 개정한다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법령이 실천이 되고 IT 시스템이 적극 활용된다면 세종시는 지금보다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심시티(SimCity)라는 도시개발 시뮬레이션 게임이자 도시 경영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단순히 도시에 건물들을 채우는 것에 급급하지 않는다. 도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도 세종시에 건물을 세우는 데만 치중해선 안 된다. 업무비효율 등 1단계 이전기관 공무원들의 불만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2 , 3단계 이전기관 공무원들이 세종시 이주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새로운 체제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행정체제와 이에 적합한 운영방식이 작동될 때, 진정한 행정복합도시 체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 해설
말 장난. 필자는 이 수험생에게 꽤 센 이야기를 했다. 이유는 뻔해 보이는 비유로 시작해, 공자님 말씀 같은 설명을 곁들인 뒤, ‘화상 국무회의가 정답이다’라는 이야기를 대안으로 댄다. 그게 대안인가. 화상회의로 소통능력을 키우는 것이 세종시 문제의 해결책이라면, 이미 지금도 기술적으로 화상회의가 다 되어 있는데 무슨 대안이 필요하겠나. 기업에서는 해외지사들과 컨퍼런스콜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리고는 결론은 게임 이야기다. 그것도 고전 중의 고전 심시티. 심시티 이야기를 1개 문단이나 한 것은 “새로운 행정체제에 적합한 운영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꺼냈다. 처음에 심시티를 꺼내는 것을 본 필자는 뭔가 재밌는 이야기를 할 줄 알고
문제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가장 큰 문제점은 ‘잔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흔히 글쓰기 연습을 대충, 그리고 오래 했을 때 나오는 오류라 할 수 있다. 글을 쓸 때 무엇을 쓸지, 즉 문제의 원인 분석(본론 1)과 대안 제시(본론 2)에 대한 고민보다는, 서론에 내가 스터디에서 공부했던 이야기를 상식을 쓰고, 결론에는 딱히 쓸 게 없으니 심시티 이야기를 비유처럼 내세워서 ‘운용의 묘가 중요하다’는 식의 강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구성은 논점이 구체화되지 않는 것은 물론, 대안의 설득력을 가져올 수도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두 가지 해법을 제안해 볼 수 있다. 우선 자신만의 분석 틀이 있어야 한다. 일단은 문제가 무엇이고, 왜 일어났는지를 구체화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논술 문제나 시사 주제에서 문제점과 논점을 명확하게 제시하기란 어렵다. 따라서 자신만의 분석의 틀을 하나 상정해서 이를 바탕으로 분석을 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수험생의 글은 ‘서울에서 먼 곳에 행정도시를 만들어 비효율’->불편 가중->일하는 방식 개선돼야 한다 등으로 논리가 흐르고 있다. 하나마나한 소리들이다.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운용의 묘가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필자는 더욱 적극적인 투자가 세종시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실제로 세종시는 현실이 됐다. 일부 국책 연구원들은 세종시 라이프가 싫어 직장을 옮겼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세종시로 이주하고 또 이는 하나의 현실이 되고 있다.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공무원을 타깃으로 하는 식당과 편의 시설도 내려갔다. 기대치의 5% 정도가 됐다면 30%, 50%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참신하게 쓰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한다. 대다수의 수험생들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비효율을 감수하고서라도 세종시를 존치해야 한다’ ‘세종시의 비효율은 정치 논리 때문으로, 지금이라도 역할 재조정이 필요하다’ 두 갈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이를 피해야 한다.
수험생의 글을 바탕으로 첨삭을 한다면 아래와 같이 고쳐볼 수 있겠다. 고치다 보니 너무 파격적으로 구성했는데, 수험생 스스로가 어느 정도 감안을 하고 음미하기를 바란다.
◇ 첨삭 후 답안
지역균형발전은 환상이다. 지역에 무슨 발전인가. 서울과 지방을 나누는 프레임이 있는 이상, 지방이라는 단어를 대체한 지역 프레임으로는 발전이라는 단어는 ‘지역주의’ ‘민원성 예산’ ‘생떼’ 같은 단어와만 어울린다. 세종시를 지역균형발전의 프레임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선정을 두고 지역 정치권에서 싸움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결정된 현실이요,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하는 매머드급 프로젝트다.
제2의 수도. 애초의 프레임을 떠올려야 한다. 브라질리아, 뉴델리, 워싱턴DC. 계획된 행정수도를 논하면서 말했던 해외의 사례들이다. 이들 도시를 만들기 위해 그 나라들이 지출한 소비와 우리가 세종시에 들인 노력을 비교해 보자. 가까이에도 사례가 있다. 강남이 그렇다. 계획된 개발로 시작된 강남 열풍은 한국의 대표적인 다운타운을 만들었다. 강남 개발에 쓴 노력을 반만 쓴다면 세종시가 광역시 이상으로 발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과감한 부처 이전과 지속적인 투자만이 필요하다.
국가 행정의 걸림돌이라는 논의 역시 근시안적인 복지부동 입장에 불과하다. 지금 세종시는 불편하다. 누구나 그 말을 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왜 그런가. 서울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조선시대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해방 이후만 따지더라도 60년간 서울시내에 인구의 20% 이상이 살고, 자본의 50% 이상이 집중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정도 생활권의 차이로 인한 불편함은 불가피하다.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이유를 찾아 고치면 될 일이다. 도시의 자족기능을 높이고, 10년 대계로 바라보고 인프라를 깔면 된다. 서울과 춘천이 1시간대에 주파할 수 있게 된 것은 대표적인 벤치마크 케이스다.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생기고, 전철과 ITX가 두 도시를 잇는다. 이제는 강원도 춘천시가 경기도급으로 인식되고 있다. 세종시라고 해서 못 할 것이 없다.
또한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진행한 신행정수도급 프로젝트를 단지 1년 반 만에 실패로 규정짓는 것은 난센스다. 서울에 있는 국회를 오가느라 공무원들이 힘들다는 논의가 대표적이다. 서울에 있는 국회에 뭐 그리 자주 와야 한단 말인가. 국정감사 보고를 한다고 모든 실국장이 스탠바이할 필요가 있는가. 충분히 운용의 묘를 살려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화상회의가 불편하고 출장비가 많이 든다는 비난도 있지만, 도시의 자족기능과 세종시 이전 기관의 권한을 높이면 될 일이다. 또한 지구촌 시대에 기업들은 매일 해외법인과 컨퍼런스 콜을 하고 있는데 화상회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 역시 웃기는 노릇이다.
설명이 너무 길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세종시에는 다른 것은 필요 없다. 파격적인 투자와 시간만이 필요하다. 90년대 대전청사를 지었을 당시 한 신문 기사를 떠올리면 금세 답이 나온다. 병무청 등 외청들이 입주했을 당시 “우리만 왕따 당하는 것 아닌가”, “준정부기관이나 독립기관으로 격하될 우려” 등의 비판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20년 뒤, 지속적인 투자가 있는 세종시의 모습은 어떨까. 공정거래위원회에 서면 제출하려는 기업인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회의를 하러 세종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직선화 고속도로가 생겨 2시간이면 세종시를 방문하게 된다. 우리는 지난 시절의 ‘세종시 비효율’ 논의를 잊어 버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투자, 투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