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F 2019] 무협지 작가에서 당구장 컨설턴트를 거쳐 부동산 스타트업 대표로

부동산 데이터 제공 업체 지인플러스 정민하 대표 인터뷰
무작정 상경해 출판사 문 두드리며 장르 소설 집필 시작
40대에 부동산 경매 뛰어들어…지인 모아서 사업 착수
정민하 지인플러스 대표. 사진 | 지인플러스

“20대 초반의 일이에요. 친구 방에 혼자 누워 있는데,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면서 먼지가 떠다니는 게 보였어요. 문득 ‘내가 아무것도 안 하면 저 먼지처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순간 공포감이 엄습해 왔죠.

그때 무엇이든 하자. 무엇이든 하되 내가 좋아하는 걸 하자고 결심했어요.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무엇을 하든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래도 내가 원하는 걸 하자’는 기호가 중대한 선택의 기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인더뉴스 진은혜 기자ㅣ 총 7편의 장르 소설을 출간한 작가에서 부동산 스타트업의 대표가 된 이가 있다. 심지어 벤처, 스타트업 성지 판교에서 직선거리로 300km 이상 떨어진 부산에서 회사를 운영 중이다. 프롭테크(부동산과 기술의 합성어) 업체 지인플러스의 정민하 대표 얘기다.

지인플러스는 2018년 10월 정식 오픈한 부동산 관련 빅데이터 제공 플랫폼 ‘부동산지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부동산 지인은 아파트 가격 변동, 전출입, 공급 물량, 거래량, 입주 예정 아파트, 분양가 등 알짜배기 정보를 공급해 ‘부동산 투자자의 방앗간’으로 꼽힌다.

정민하 대표의 삶은 IT 회사 근무, 부동산 금융 전공 등 주류 부동산 스타트업 창업 루트와는 거리가 있다. 그 보다는 당구장 개업 현장을 누비고 부동산 경매장 문을 두드리는 등 ‘발품’의 흔적이 역력한 길을 밟았다. 지난 1일 인더뉴스 편집국에서 그를 만나 무(無)에서 유(有)를 꾸준히 창출해온 삶의 비결을 물었다.

– 한때는 무협 소설 작가, 현재는 부동산 스타트업 대표. 공통분모를 찾기 힘든 두 분야에 몸담으셨어요. 남다른 삶을 살아온 것 같은데,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스스로 어떤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남다르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다만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엄격히 구분해서 행동하는 편입니다.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하면 힘들거나 남들이 꺼리는 일이라도 진행합니다. 남들이 일반적으로 다 하는 일이지만 저에게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일에는 아예 손을 대지 않습니다.

예컨대, 저는 청소나 정리, 외부 영업을 일절 하지 않습니다. 중요도가 낮다고 판단되면 아예 신경을 꺼버리거든요. 반면 제가 해야 할 일에 몰입할 때, 혹자는 저를 ‘부지런한 친구’라고 평가하는데 오해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에 더 집중해왔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소설 쓰기가 한때 ‘해야 할 일’이었다는 건데, 어떤 일을 계기로 펜을 들게 됐는지 궁금해요.

“20대 초반에 방황한 적이 있어요. 그때 뭔가 시작하되 이왕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당시 좋아하는 게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운전, 다른 하나는 글 읽기. 당시 모터스포츠가 막 뜨기 시작했는데, 그 일을 시작하려면 돈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글 쓰는 건 돈이 들지 않으니 글을 한번 써보자고 결심했어요.

만화 스토리 작가가 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어요. 출판사를 찾아서 제가 쓴 스토리 원고를 전달했더니 출판사에서 소설로 받아들였는지 무협지 출간을 권하더라고요. 그렇게 스물세 살부터 무협 소설을 쓰게 됐어요. 작가로 활동하며 총 7개 시리즈의 책을 냈어요.

마흔쯤 되니 먹고 사는 문제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나이는 불혹에 가까워지는데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점점 커지고. 글로는 돈을 못 벌겠다 싶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제가 활동할 당시엔 장르 소설 작가는 불가촉천민 수준이었어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어요. ”

그래도 장르 소설 작가와 부동산 스타트업은 연결고리가 느슨한 것 같아 의아했습니다. 부동산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사건이 있었나요?

“모든 시작은 지극히 우연이었어요. 글쓰기를 관두고 ‘당구 치는 걸 좋아하니 당구장을 차려야겠다’ 생각했어요. 무작정 당구장 차리는 분을 찾아가서 그 분 아래에서 당구장 차리는 일을 배우러 다녔죠. 200곳 정도의 당구장을 돌면서 자리도 봐주고 수리도 해주며 1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당구장은 안 되겠더라고요. 당구장 사업으로 돈을 벌려면 당구장을 세팅해서 권리금을 받고 팔면 되는데, 그러면 가게를 산 사람 10에 9는 망하거든요. 소위 ‘오픈빨’이 떨어지니까요. 다른 사람의 손해를 담보로 돈을 벌고 싶진 않았어요.

1년 동안 준비한 게 무산되고 아무거나 해보자는 생각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부동산 경매’를 검색했어요. 경매 학원, 인터넷 카페 등등 엄청 많은 정보가 쏟아지더라고요. 문득 ‘이게 정말 돈이 되면 이렇게 정보가 쉽게 나올 리가 없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경매는 부동산을 이용하는 분야니까 경매로 이익을 거두려면 부동산부터 알아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가장 먼저 공인중개사 자격증부터 땄습니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 후 본격적으로 부동산 경매를 시작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시작한 부동산 경매가 장르 소설 작가와 부동산 스타트업의 연결고리가 된 거네요.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없는 돈에 부동산 경매 일을 시작하다 보니 남들과 다르게 접근해야겠다 싶었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개인으로 움직이지 팀으로 활동하진 않더라고요. 주변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부동산 경매를 같이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까이 지내던 동생들에게 우리가 같이 뭘 만들어보자, 그리고 우리가 만든 서비스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뭔가를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다섯 명이 모여서 부동산지인을 구상했어요. 여기서 ‘지인’은 부동산을 아는 사람, 동시에 제 주변의 지인들을 모아서 만든 서비스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럿이 모여서 만들었다는 ‘무엇’이 부동산 데이터를 취합하는 것이었나요? 어떤 서비스를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요.

“2015년에 부동산 관련 데이터를 쭉 보다가 ‘패턴’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엑셀을 다룰 줄 모르니 아는 동생한테 패턴을 찾아보라고 부탁했죠. 이 친구가 한 달 이상을 방에 틀어박혀서 그 패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디가 오르고 어디는 가격이 내리는 식의 흐름을 발견했습니다. 흐름을 따라 시장 가격을 유추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무엇보다 우리가 발견한 패턴을 통해 ‘정보의 격차 문제’를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집을 매수해야 할 타이밍이나 악재에 관한 정보를 몰라 재산상의 손실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부동산 중개인조차 거래가격을 시세보다 낮게 불러서 집주인이 손해 보는 일이 잦았죠.

2016년, 구상한 서비스를 외주로 맡겼습니다. 한 8개월 뒤에 넘겨받았는데, 뜯어고치는데 또 8개월이 소요됐어요. 우리의 지향점과 일을 위탁받은 개발자와의 괴리를 극복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2017년에 베타 버전이 나왔는데 그걸 또 대대적으로 수정했어요. 시행착오 끝에 2018년 10월, 정식 버전을 오픈했습니다. ”

– 개발자 없이 스타트업 인프라가 부족한 부산에서 회사를 꾸려나가자니 애로사항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어요.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팀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글이야 혼자 쓰고 감내하면 되잖아요. 근데 제가 회사 잘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모아서 일을 시작한 거니, 그에 따른 책임을 감내하는 게 쉽지 않았죠.

그래도 그냥 버텼어요. 거창한 비전이나 희망에 기댔다기보다는 ‘사업을 시작했으니 일정 기간은 버텨야 한다. 그리고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니 나 자신과 팀원을 믿고 보자’는 일념으로 일했어요.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호전되면서 숨통이 트였던 것 같아요.”

– 이미 직방, 다방, 부동산 114등 빅데이터 기반 부동산 정보 제공 서비스가 다수 존재하잖아요.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고요. 부동산 지인만의 차별점이 궁금해요.

“타깃 시장, 주 고객층이 타 서비스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부동산지인의 주요 고객은 자산가, 기업, 부동산 업계 사람들입니다. 사실 부동산지인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어려워요. 베타 서비스를 오픈하고 어떤 분들이 들어오는지 사람들 반응을 살펴보니까 일반인들은 저희 사이트에 안 오더라고요. 일반인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들어오는 사람들 99.9%가 투자자고 0.1%는 그날 잘못 들어온 사람이고(웃음).

저희도 잘 가공된 정보를 자산가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지역 보고서가 대표적이고요. 또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내공이 쌓인 덕에 고도화된 기능들이 좀 있는데, 이런 기능을 조금 더 개발해서 유료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 다들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와중에 대형마트의 무인 계산대, 인공지능(AI) 아나운서, 로봇기자 등 ‘사람이 필요하지 않는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요.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단순히 기술이 발전해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세상이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해서, 필요한 만큼 나온 것이라고 봐요. 많은 사람이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데, 인류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어요. 산업혁명을 떠올려 보세요. 당시 사회가 고도화되고 구조도 복잡해지면서 일자리가 오히려 늘었잖아요.

저는 기술 발전이 아니라 세상이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를 조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술 발전이 시장을 급진적으로 바꾸는 게 우려된다면 정부가 속도 조절을 해야겠죠. 프롭테크 분야를 예로 들어볼까요? 만약 인공지능으로 감정평가가 가능해지면 법적 허가 가능성, 기존 감정평가사들의 반발 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감정평가사 협회에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시스템이 사회에 안착하겠죠.

이처럼 기술 변화로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이 시스템을 수용할 수 있냐 없냐에 대한 조율이 필요합니다. 기술이 당장 일자리를 없앨 거라는 발상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기술과 인간의 타협점을 조절해 나가지 않을까요?”

– 그렇다면 부동산지인도 대중이 필요로 하고, 세상과 타협할 수 있는 서비스를 지향하겠네요. 부동산지인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회사의 모토가 ‘지인을 행복하게’입니다. 서비스를 만드는 우리도 행복하고 남(이용자)도 행복하기를 희망합니다. 구체적으로 일반인들은 집을 살 때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자산가들은 안정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돕는 걸 목표로 합니다. 고객이 보유한 부동산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도록 핀테크와 연계할 방안도 구상 중입니다.

프롭테크 기업으로서의 야심도 있습니다. 부동산 업계는 변화에 더딘 편이에요. 업계 종사자들 평균 연령이 높은 편이라 좋은 서비스가 등장해도 묻히기 일쑤죠. 그래서 저는 대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이들이 서비스를 언제 필요로 할지 지켜보다가 적기에 내놓기 위해서죠. 시장을 선점했을 때 스타트업이 성공하니까요.

회사 자체의 계획도 세우고 있지만, 대중이 원하는 것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항로를 변경하고, 새로운 길을 추가하다 보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지지 않을까요? 저의 20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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