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산업부장 제해영 | 2020년입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또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방식이야 다를 수 있겠지만 마음은 모두 비슷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저만의 방식으로 연말연시를 맞이해 왔는데요. 최근 몇 년간은 '1년간 나는 무엇을 실패했는가?' 를 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하게 되었는데요, 지난 12월에 생방송으로 보게된 이세돌 사범과 한돌의 바둑을 보면서 떠오르게 된 생각입니다.
그 방송을 보면서 예전과는 뭔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해설을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인간 대 인간의 대국에서는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서 해설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승부수, 실수, 흔들기, 기풍, 착오 등 인간이기에 존재하는 것들이겠지요.
그러나 이번에 유심히 해설을 들어보니 AI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약점(버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을 찾아나간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AI가 어떻게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지, 어떻게 학습을 하는지, 이길 확률은 어떻게 계산되는지 등에 대한 해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생각의 방향을 잡다 보니 AI를 상대하는 전략 또한 인간과의 대국과는 다르게 잡히는 걸 느꼈습니다.
"중반 이전에 승부를 내지 못하면 후반에는 이길 확률이 매우 낮아지게 된다"거나 "대국이 불리할 경우에는 변수를 만들어 버그를 유도해야 한다"는 해설자의 코멘트가 대표적인데요. 그 이유는 변수가 작아지면 끝내기 실수가 없는 AI가 당연히 유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세돌 사범은 이번 은퇴 대국을 하면서 은퇴를 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알파고와의 대결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둑은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예술이라고도 했습니다. 더 이상 최고가 아닌 상황에서 AI를 이기는 것에 목표를 두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AI는 인간의 방식을 벤치마킹하여 학습하며 발전을 하게 되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인간이 AI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됩니다. 실제로, 지금 많은 바둑기사들이 AI와 대결을 하면서 실력을 키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바둑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의 AI는 인간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은 기계처럼 사고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바둑을 둘 때 인간은 자신이 둔 수에 대해 끊임없이 되새기게 됩니다. 좋은 수든 나쁜 수든… 그리고 상대의 심리를 읽고 대응하기 위해 계속 과거를 넘나들게 됩니다.
그러나 AI는 지금 현재의 바둑판 상황을 스냅샷처럼 찍은 다음 과거와는 상관없이 지금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만 계산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계의 사고방식이니까요.
인간이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그렇게 변해오기도 했습니다. 인간다운 사고의 기회마저 점점 줄어들 것 같다는 불안감도 가집니다.
‘지난 시간 나는 얼마나 인간다운 사고를 하며 살아왔을까?’ 되돌아 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리 긍정적인 답을 스스로에게 주기가 힘들었습니다. 아이러니합니다.
앞으로는 인간다움을 외면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0년에는 눈앞의 스냅샷을 찍는 데만 몰두하지 않고 오랜 기간 찍어온 영화처럼 주변을 살펴보며 살아야겠습니다. 저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자연지능’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