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황현산 기자ㅣ최근 일부 보험사의 ‘기계적인’ 원칙 고수가 많은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소비자와의 마찰을 해결하기 위해 법률 공방을 벌이면서 발생한 논란인데 상대적 강자로 여겨지는 보험사가 일방적으로 비난을 받는 상황입니다.
보험사는 정해진 규정을 따라야 하는 처지를 강조하며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주는 시선은 많지 않습니다. 원칙 여부를 떠나 대기업이라는 유리한 위치를 이용해 상대적 약자인 소비자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 듯한 모습에 분노하는 정서가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에 불거진 DB손해보험과 교통사고 사망자 유족 간의 소송도 이에 해당하는 사례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해당 보험사도 답답한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처음부터 보험금 회수가 목적이 아니라 법원에서 채권소멸을 확인받아 사건을 종결하기 위해 제기한 소송인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부도덕한 보험사로 몰렸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니, 아주 허튼소리 같지는 않습니다. 우선 사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난 2000년 2월 청담대교 근처를 지나던 차량이 사고가 나면서 운전자 A씨를 비롯해 탑승자 4명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고 차량은 당시 무보험 상태여서 일반적인 자동차보험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정부가 운영하는 자동차손해보장사업을 통해 A씨를 제외한 동승자 3명의 유족에게 사망보험금 6000만원씩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에 정부 보장사업을 위탁받은 DB손보는 사망보험금 1억 8000만원을 지급하고, 12년이 지난 2012년 9월 A씨의 법적상속인인 배우자와 자녀 3명에게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A씨를 대신해 동승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했으니 이를 돌려달라는 의미입니다.
앞서 언급한 ‘예기치 못한’ 상황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DB손보는 원래 보험금 회수를 목적으로 제기한 소송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A씨 유족의 재무상태를 감안할 때 도저히 회수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자, 채권을 소멸하고 사건을 종결하려 했다는 겁니다.
이 회사 관계자는 “2000년 사고 이후 서울시와 도로공사 측을 상대로 구상소송을 진행했으나 패소를 했다”며 “유족 측 재산이 거의 없는 상태라 소송을 진행해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임의 채권청구를 진행했다. 2012년 소송을 제기한 것은 사건을 종결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남기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DB손보는 먼저 소송을 제기하긴 했지만, 당연히 질 줄 알았다고 합니다. 소멸시효(10년)가 지난 사건이라 A씨 유족이 법원에 나와 이의제기만 해도 패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유족이 법원에 출석하지 않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승소를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안타까운 지점이 있습니다. 유족은 법원 출석해 이의제기를 해야 하는 절차를 몰랐다고 합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경우 보장사업을 통해 정부의 예산이 들어간 만큼 DB손보가 마음대로 사건을 종결할 수 없습니다. DB손보는 물론 민간 보험사가 이같은 건을 임의처리할 경우 관련 규정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결국 법원의 판결을 받아 합법적으로 마무리하려다 일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는 것이 DB손보의 항변입니다.
법원 판결에 따라 DB손보는 원치 않는 구상금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됐으나, 그렇게 할 생각은 없는 모양입니다. 현재 이 건을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에 보내 보장사업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DB손보는 채권이 소멸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