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칼럼

[정은정의 음식추억] 외국인 300만명 시대, 명절 다문화 상차림도 ‘K푸드’

Wednesday, January 29, 2025, 00:01:27 크게보기

 

정은정 농촌사회학자ㅣ2000년대 초반, 짧게 외국 생활을 한 적이 있다. 한인마트에서 웬만한 식료품은 구매하면 된다는 말을 듣긴 했으나 된장, 고추장, 간장만은 꾸역꾸역 챙겨갔다. 100년을 이어온 씨간장이 있는 종가 출신도 아니건만 시판 장류로 음식 간을 맞출 자신이 없어서였다. 물설고 말설은 외국 생활에서 된장찌개 맛마저 흔들리면 그 생활을 제대로 이어나갈 수 있을지 두려웠다.

 

돌이켜 보니 삼시 세끼 오로지 한식만 해 먹고 산 시절은 외려 외국에 있을 때였다. 현지 음식을 해 먹기엔 경험도 부족하고 빠듯한 외국 생활에 외식은 아주 특별한 날 아니면 어려웠다. 배달음식에는 배달비와 봉사료(팁)가 붙었기 때문에 주야장천 집에서 해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떡국은 명절만이 아니라 수시로 해 먹던 일상식이었다. 쌀과 고깃값은 그래도 한국보다 저렴하여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한식재료였기 때문이다.

 

명절에나 해 먹는 잡채나 갈비찜, 불고기도 가장 만만한 메뉴였다. 당면은 중국마켓에 가면 저렴했고 간혹 외국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일이 있으면 누구나 좋아하는 수월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K푸드 열풍이 불기 전이었는데도 한인타운에는 한국의 슈퍼마켓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라면이나 한국 과자는 한국 가격과 차이가 없었고 콩나물과 두부는 현지 공장까지 갖추어져 있어 가장 싸고 흔한 식료였다. 심지어 옥춘사탕이나 약과, 산자와 같은 제수용 과자부터 차례상에 올려놓을 배나 곶감, 북어도 한국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교포가정에서 오히려 세시풍속을 ‘제대로’ 챙긴다는 말이 틀리진 않았던 듯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1999년에 미국 뉴욕의 재미한인여성 27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의례의 맛과 상차림에 관한 인식과 실행>이라는 논문을 보면 총대상장의 57.9%가 의례음식과 상차림에 대하여 중요하다 생각했고 그중에서도 68.3%가 전통적인 제사를 준비한다는 응답을 했다. 한국을 떠난 기간이 길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의례음식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제 시간이 흘러 교포들 세대도 변했고 인식도 많이 변했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명절은 음식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이들의 마음과 그리움을 묶는 날이다. 현지에서 가용할 수 있는 식재료를 모아 고향의 음식에 최대한 가깝게 구현하고 재현한다. 투철한 민족정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기 보다는 그렇게 먹어야만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비행기에 된장과 고추장을 싣고 간 21세기의 내가 그랬듯. 한인들은 어디에 가서든 밥과 국, 김치, 나물을 기본 찬으로 갖추고 먹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 극동과 스탈린 체제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은 동토의 땅에 불가능해 보였던 벼농사를 지어 밥과 국을 먹는 한식의 골격을 지켰다. 콩을 길러 메주를 쑤고 된장을 담가 아침마다 시래기된장국인 ‘시락장무리’에 밥을 말아 먹고, 빵을 먹더라도 된장을 발라 먹었다. 배추가 없어도 양배추와 파로 김치를 담가 먹고 고추와 마늘을 반드시 길렀다. 귀한 쌀은 아껴먹고 그나마 흔한 밀로 잔치국수와 비슷한 ‘국시’를 먹고 산천에서 고사리와 머위를 꺾어 나물반찬을 해먹었다.

 

명절이면 가족들이 모여 ‘베고자’라 부르는 고기만두를 먹거나 두부떡국을 끓여 먹으며 한 번도 밟지 못한 고향의 명절을 지켜냈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고려인들의 당근김치인 ‘카레이스카야 마르코비’다. 채 썬 당근을 소금에 절여 매콤하게 무친 이 당근김치는 고려인을 가리키는 ‘카레이스키’가 붙어 ‘고려인 당근김치’라 불렀다. 당근김치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역으로 수용되어 현지화되었고,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고려인들이 운영하는 식당과 반찬가게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중국 지린성 옌벤 일대의 중국동포(조선족)도 장을 담그고 김치를 담가 먹는다. 나물문화도 고스란히 남아 나물을 갈무리하여 일년 내내 반찬으로 먹고 오이와 가지를 무쳐먹고 볶아 먹는다. 장문화가 그대로 전수되어 청국장도 띄워 먹을 정도다. 한국으로 이주한 자녀들이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맛본 고향의 ‘한식’을 그리워해 중국에 남아있는 노부모들이 장과 김치를 한국으로 싸서 보내기도 한다.

 

설날에는 쌀가루 만두피로 만든 ‘밴세’라 부르는 쌀만두를 먹는다. 메밀과 도토리가루를 만두피로 쓰기도 한다. 쌀이 귀했던 곳에서 떡국보다는 만두를 주로 설명절에 먹는 북한 함경도 일대의 음식문화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중국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 어디에든 ‘입쌀만두’라 부르는 밴세를 흔하게 접할 수 있다.

 

한국으로의 이주가 활발한 베트남도 음력 설을 큰 명절로 삼는 나라다.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그대로 남아있다. 베트남의 제사상에 한국 초코파이를 올려놓기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사에는 조상들에게 맛보이고 싶은 음식을 올리는 것이 기본 정신이니 초코파이가 인기를 구가할 때 어울리는 제사 음식이었던 모양이다.

 

베트남의 대표적인 설날 음식은 ‘반쯩’이라 부르는 녹두찰밥이다. 바나나잎처럼 생긴 ‘라종’이라는 잎에 찹쌀과 녹두, 고기를 싸서 오래도록 쪄서 만든다. 얼핏 연잎밥처럼 생긴 반쯩의 식감은 찹쌀떡에 가깝다. 베트남 여행을 가면 별미로 한 번씩 사 먹던 반쯩이 이제 한국의 베트남 음식점 메뉴로도 올라와 있고, 베트남 식료품점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베트남 엄마 음식을 먹고 자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한국식 떡국처럼 반쯩이 명절음식으로 받아들여질 날이 올 것이다.

 

한때는 명절만 되면 ‘다문화가정’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수한다며 한복을 입고 송편이나 만두를 빚고, 전을 부치는 요리교실을 여기저기에서 열렸다. 나조차도 헷갈리는 공수방향(절할 때 손을 얹은 방향)을 알려주며 절을 가르치며 ‘한국 며느리 만들기’에 몰입했었다.

 

그러나 명절의 의미는 토박이 한국인들에게도 급변했다. 차례나 제사를 유지하겠다는 의사도 절반이 되지 않는다. 이제 명절 연휴는 가족들이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이자 여행을 가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날이 되어간다. 이런 마당에 전통문화 전수교육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여 각 나라와 민족의 명절 문화와 어떤 음식이 있는지 알아보고 직접 만들어 나누어 먹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각 출신 국가별 행사가 열리고 한국인 남편이 참여하는 문화도 자리 잡아가고 있다.

 

다양한 식재료가 유입되고 외국인과의 접촉도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빈번하다. 현재 해외에서 삶을 일구어 나가는 재외동포가 약 750만 명이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동포들이 100만명이고, 결혼과 노동 이주로 들어와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들은 300만명에 육박한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이토록 활기 발랄한 나라의 전통은 그 이전 세기와는 다른 모습이고 또 달라져야 한다. 한국의 떡국과 베트남의 반쭝이 함께 올라오는 명절 밥상, 고려인들의 당근김치와 만둣국이 함께 올라오는 ‘만남의 밥상’이야말로 K푸드의 저력이 될 것이다.

 

■정은정 필자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등을 썼다. 농촌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와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그림책 <그렇게 치킨이 된다>와 공저로 <질적연구자 좌충우돌기>, <팬데믹시대, 한국의 길>이 있고 <한국농업기술사전>에 '양돈'과 '양계'편의 편자로 참여했다.

 

English(中文·日本語) news is the result of applying Google Translate. <iN THE NEWS> is not responsible for the content of English(中文·日本語) news.

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Copyright @2013~2023 iN THE NEWS Corp. All rights reserved.



인더뉴스(주)/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서울 아 02788/ 등록일 2013년 8월 26일/ 제호: 인더뉴스(iN THE NEWS)/ 발행인 문정태·편집인 박호식, 주소: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92, 광화문오피시아빌딩 1803호 발행일자: 2013년 9월 2일/ 전화번호: 02) 6406-2552/ 청소년보호 책임자: 박호식 Copyright © 2013~2024 인더뉴스(iN THE NEWS) All rights reserved. / 인더뉴스(주)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므로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단, 기사내용을 일부 발췌한 뒤 출처표기를 해서 ‘링크’를 걸어 두는 것은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