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적지 않은 세월 이 업(業)에 종사하면서 붙들고 살아온 '신념' 같은 게 있습니다. '출입처 논리에 매몰되지 말자. 특히 사람에게…'
주로 취재하는 특정조직을 '출입처'로 삼다보면 시나브로 그들에 적응·동화될 수 있으므로 이를 스스로 경계하자는 다짐이었습니다. 15년 나름 성공적으로 지켜온 이 직업가치에 균열이 일어났음을 고백하는 건 그래서 어렵고 부끄럽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 한 구성원으로서 겪을 것이라 차마 생각지도 못한 작년말 '격변'의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피었다 스스로 지는 길을 택한 어느 관료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이해받을 수도 있다 위안해 봅니다.
그는 2024년 7월31일 금융위원장으로 취임해 13개월여만인 올해 9월12일 직(職)을 내려놓은 김병환 장관입니다.
시장 자율과 예측가능성 전면에…
김병환 위원장 취임 전후로 금융권은 정권발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특히 은행권은 2023년 10월말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원색적인 '은행 종노릇' 발언으로 촉발된 '이자장사' 논란에 납작 엎드린 채 눈치보기에 급급했습니다.

게다가 첫 검찰 출신 금융감독원 수장이자 윤석열 사단 막내로 알려진 이복현 전 원장의 업권불문 거침없는 언사와 광폭행보는 업계로선 정권을 등에 업은 혹은 정권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4년 8월말 이복현 당시 금감원장이 한 방송에 출연해 "은행이 물량관리나 적절한 미시관리를 하는 대신 금액(금리)을 올리는 건 잘못된 것"이라며 "부동산시장 상황 등에 비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강도높게 비판한 것입니다.
감독당국 수장의 강경발언에 화들짝 놀란 은행권이 부랴부랴 가계대출 관리대책을 내놓으면서 애먼 실수요자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김병환 위원장은 은행권의 자율관리를 꺼내듭니다. 가계부채를 적극적으로 관리한다는 확고한 정부기조 아래 시장 고유기능에 무게를 둔 발언입니다. 오락가락하는 당국자의 언사로 빚어지는 혼란을 수습하면서 금융위-금감원간 기관의 위상을 다시 정립하려는 것으로 시장은 받아들였습니다.
서민의 내집마련 '감성터치'
김병환 위원장이 금융정책 수요자에 가장 큰 관심을 끈 건 뭐니뭐니해도 '지분형 주택금융(모기지)' 입니다. 정책금융기관이 지분투자자로 참여해 주택매수자가 과도하게 부채를 일으키지 않고도 집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가령 집값이 100일 때 매입자 보유자금이 10이고 40을 빌릴 수 있다면 나머지 50을 정책금융기관이 지분으로 취득하는 것입니다.
김병환 위원장은 올해 4월 한국은행 주최 정책 콘퍼런스에서 "그간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비판이 부모에게서 받을 것 있는 사람만 집을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일종의 접근성 문제이자 불평등 문제다. 소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하더라도 집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무주택 서민의 내집 마련 사다리를 적극 지원하는 동시에 대출증감에 따른 거시건전성 관리까지 깊이 고민한 결과 나온 정책제안으로 여겨집니다. 이후 금융위는 상반기중 로드맵을 공개하고 하반기 시범사업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정권교체와 함께 사실상 정책추진동력을 상실했습니다.
물론 지분형 모기지가 부동산시장을 과열시키고 가계대출도 늘릴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제기됐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내집 마련의 꿈을 꾸는 절반의 국민을 위해 정교하고 치밀하게 정책을 구체화하고 시장 및 이해관계자와 머리를 맞대 공론화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정책이 사장된다는 것은 사회적 손실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크든 작든 국민삶 개선하는 게 공직자"
이재명정부에서 금융당국 개편은 뜨거운 감자입니다.

9월7일 정부가 금융위 금융정책 기능을 분리해 재정경제부로 이관하고 금융위를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재편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당사자는 일대혼란으로, 금융권은 불확실성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김병환 위원장은 정부발표 닷새만인 12일 사의를 밝히고 금융위 직원들에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는 취임할 때도 이임할 때도 별도의 행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새정부에서 조직해체를 예고한 금융위원회의 사실상 마지막 위원장(10대) 김병환 장관의 소명의식을 엿볼 수 있는 1년전 취임사 일부를 인용하면서 맺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어표현으로 make a difference가 있습니다. 공직자는 크든 작든 국민의 삶을 개선시키는데 그 소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