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칼럼

[서지은의 보험키워드] 인생의 난간을 설계하는 일

Sunday, November 05, 2023, 10:11:35 크게보기

 

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일곱 살 무렵, 동네 이층집 옥상에서 맹렬한 기세의 연기를 아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연기 색이 비현실적으로 두텁게 어두웠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로 불이 났음을 알게 되었다.

 

화재가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불이 났던 집 앞을 지나갔다. 불에 탄 집은 너무 끔찍했다. 불에 탄 잔해 중 검게 그을린 장난감 목마를 보는 순간, 어린 마음에도 깊은 슬픔과 공포에 빠졌다. 한동안 그곳을 지나가지 않으려 빙 돌아가고는 했다. 화재가 휩쓸고 간 집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그대로 있었다.

 

살면서 화재를 경험하는 경우가 얼마나 빈번할까마는 화재가 무서운 까닭은 ‘혹시’가 현실이 되었을 때 안팎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 남의 집에 난 화재의 상흔을 본 것이 아직도 내 기억에 또렷한 데 화재 피해를 본 당사자들은 오죽했을까 싶다.

 

약 한 달쯤 전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악기상을 겸해 교습실을 하는 친구네 음악학원이 화재 피해를 당했다는 것이다. 교습실이 엉망이 되었을 뿐 아니라 악기도 상당 부분 손상이 되었다며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왔다.

 

교습실 화재 피해는 같은 건물 식당의 과실이었다고 한다. 커다란 냄비에 사골국물을 우리는 동안 직원이 깜박 잠이 들었다가 화재가 발생해 주변까지 번지게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인명피해는 크게 없었다고 해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었다.

 

이럴 때 손해를 입은 쪽은 과연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책임이 있는 식당 측이 피해배상을 해줄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만 할까? 그동안 레슨도 악기 판매도 중단하면서? 화재는 내부만이 아닌 외부의 요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고, 내 과실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타인의 과실로 불이 나기도 한다. 이렇듯 화재의 원인과 발생할지 모르는 경우의 수를 좁혀 특정하기란 어렵다.

 

이런 경우 음악학원이 화재보험 등을 가지고 있다면 과실의 주체가 어디에 있는가를 밝히기 전 우선 그 보험으로 실손을 처리할 수 있다. 음악학원은 악기 가격이 고가라 혹시나 만일을 대비해 보험이 잘 가입되어 있었다.

 

덕분에 100% 원복은 불가능할지라도 보험사에서 지급되는 보험금으로 일상의 회복에 전념하는 한편, 해당 보험사가 과실이 있는 쪽에 구상권을 청구하므로 음악학원 원장이 직접 배상을 둘러싼 분쟁에 나서지 않아도 됐다. 다만 불을 낸 식당이 보험에 제대로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식당주인은 인생에서 ‘혹시 불이라도 나면’하고 떠올려본 적은 없었던 것일까?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혹시 했는데, 역시 였어!"

 

묘한 건 기대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도 쓰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을 때도 쓴다는 점이다. 보험 상담을 마치고 "보험 왜 드세요?"라고 의뢰인에게 농반진반으로 물으면 대개 "혹시나 하는 마음에"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누구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보험을 떠올리지는 않을 테다. 혹시 했던 일이 일어났을 때 그래도 그 위기를 어떻게든 넘길 힘이 있으면 다행한 거니까, 그렇지만 혹시는 혹시로 끝나야 좋은 거니까. 대부분 이런 마음이 아니겠나.

 

비단 화재만 아니더라도 예기치 못한 사건과 사고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물리적 배상이나 보상만으로 치유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물리적 배상이나 보상은 사건과 사고의 여파로 흔들리는 일상과 정신적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혹시나'가 '역시나'가 될 때 아찔한 충격 속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지지대 역할을 하는 튼튼한 난간이 인생에서도 꼭 필요하다.

 

난간을 붙잡을 일이 없는 것과 붙잡을 난간이 없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사실 그 인생의 난간을 설계하는 일이 바로 내 직업이기도 하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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