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모니터 대표 김수헌] 수출기업 A사의 재무담당 임원이 은행과 선물환거래를 한다고 하자. 1년 뒤 수출대금으로 들어온 달러를 1100원의 환율로 바꾸기로 했다. 1100원이면 A사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비용을 감안하고도 약 10%의 영업이익률이 보장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1년 뒤 막상 계약이행을 해야 할 시점에 달러 환율이 1150원으로 변했다. 현물시장에다 달러를 내다팔면 1150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은행과의 선물환계약에 따라 A사는 1100원 밖에 못 받는다.
CEO는 재무담당임원을 불러 다그친다. 선물환계약을 안했더라면 회사 수익이 크게 늘었을 텐데, 왜 그런 계약을 해 수익을 까먹었냐고.
재무담당 임원은 좌절한다. 만약 환율이 1000원 밑으로 떨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선물환 계약을 하지 않았다면 A사는 적자를 낼 수도 있다. 이랬더라면 이 CEO는 재무담당 임원에게 "왜 선물환 거래를 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며 사표를 내라고 했을지 모른다.
선물환 거래는 환율변화에 따른 미래 리스크를 헷지하는 역할을 한다. 자칫 회사 경영수지에 큰 적자나 나거나 현금흐름에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다. 리스크 헷지에는 일정한 비용이 들어간다.
예컨대 A사의 경우 은행과의 거래에 따른 수수료 외에, 환율상승에 따른 추가수익은 포기한다. 대신 환율하락에 따른 여러 가지 위험을 없애 기업의 지속성과 경영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다.
환율이 오르건 내리건 선물환거래로 수익을 내고자 한다면, 회사 경영을 할 것이 아니라 회사의 자금으로 외환선물 롱숏 전문투자(또는 투기)를 하면 된다. 직접 투자하기 어려우면 전문가에게 맡기든지.
보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렇게 장황한 환율상품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보험에 대한 인식들이 좀 바뀌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필자 주변 사람들은 대놓고 말한다. “보험은 사기다”, “보험에 가입하면 자기도 모르게 코 베인다”고. 문제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상당수가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는 것이다.
나도, 내 가족도 가입한 보험이 몇 개 있다. 필자는 보험에 가입하면서 앞으로 나에게 닥칠 위험을 보험이 얼마나 잘 커버해 줄지를 먼저 생각했지, 나중에 보험금이 환급이 되는지, 원금은 보장이 되는지, 이자가 나오는지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
나와 가족에게 닥칠 가능성이 있는 리스크를 얼마나 헷지할 수 있는지, 리스크 헷지에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지에 주목해 상품을 골랐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돈이 별로 없고, 나중에 보험이 나의 어려움을 커버해 주지 않으면 상당한 생활고가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재테크 수단으로서도 유용하고, 나에게 닥칠 위험에 대한 보장수단으로서도 탁월한 보험이라는 것이 있을까? 요즘 일부 보험광고, 특히 케이블방송 같은 것에 나오는 광고를 보면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 네 마리 토끼잡기도 가능할 것 같다.
이런 상품들은 찬찬히 뜯어놓고 보면 뭔가 어정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람들은 낸 돈을 다 돌려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보험에 얼마동안 돈이 묶여 있어야 하는지, 여기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이 얼마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저 암에 걸려도 보험에서 해결해 주고, 암에 안 걸리면 낸 돈 고스란히 돌려받는다는 생각만 하는 것 같다.
원금에 집착해 보험에 돈을 붓다보면 오래가지 못한다. 적어도 필자 생각에는 그렇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보험은 사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험회사들의 자업자득이다.
보험은 미래의 위험을 헷지하는 수단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본다. 보험 소비자는 이를 위해 적절한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재테크 수단으로 유용한 보험상품을 고르려면, 소비자는 보험사를 거대한 자산운용사로 생각해야 한다.
“낸 돈 돌려주는 보험 있어요”라고만 외친다면 보험의 미래는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보험사가 지금 겪고 있는 역마진의 고통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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