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정재혁 기자]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가 보편화되면서 종이로 된 ‘달력’을 보는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즐겨 찾는 달력이 있다. 바로 연말에 은행에서 제공하는 달력이다.
이는 은행에서 주는 달력을 집에 걸어 놓으면 ‘재물운’이 들어온다는 일종의 ‘미신(迷信)’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선 저렴한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서 좋은데, 일부 은행 지점의 경우 막무가내로 달력을 찾는 ‘진상’ 고객들로 인해 골치를 썩는 것으로 나타났다.
◇ 돈을 부르는 ‘은행 달력’...중장년층 고객에 인기
2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우리, KEB하나, NH농협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은 연말을 맞아 내년(2019년) 달력을 고객들에게 제공 중이다. 달력 배부 일정은 은행별로 다르며, 같은 은행 내에서도 각 지점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으로 파악됐다.
달력은 은행의 가장 대표적인 고객 서비스 중 하나다. 다른 서비스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실용적이라는 장점 때문에 은행권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애용하고 있다. KB국민‧신한 등 주요 은행 7곳이 발행한 지난해(2017년) 달력 부수는 총 1035만부로 나타났다.
은행 달력은 특히 주로 중장년층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집에 걸어두면 재물이 쌓인다는 속설 혹은 미신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러한 미신이 왜 생겨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며 “아마도 돈을 보관하는 은행의 역할 때문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런 연유로 은행 달력의 주 수요층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고객들이라는 게 은행원들의 설명이다. 아울러,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은행을 직접 방문하는 젊은 세대의 비중이 중장년층에 비해 적은 것도 주요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 ‘병원 달력 재수 없어’?...황당한 달력 요구
일부 지점에서는 달력 배부를 놓고 은행 직원과 고객 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해당 은행 혹은 지점과 거래가 없는 고객이 찾아와 막무가내로 ‘달력을 내 놓으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모 시중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은행원 A씨는 “우리 지점의 경우 거래 고객이 많은 편이라 실거래 고객들을 위한 달력을 챙기기에도 빠듯한 실정”이라며 “처음 뵙는 분들이 느닷없이 찾아와 달력을 달라고 하면, 직원 입장에서 순순히 내 줄 수는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원 B씨는 다소 황당한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한 노인이 찾아와 병원에서 준 달력이 ‘재수가 없다’며 은행 달력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는 것.
B씨는 “병원 달력의 경우, 노인 분들 사이에선 ‘집안에 병마를 가져온다’는 미신이 있는 것 같다”며 “원칙적으로는 바꿔줄 수 없지만, 지점 내 소란이 우려돼 그냥 바꿔줬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은행 지점들은 아예 달력 배부 일정을 고객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내부 방침을 정해 놓기도 한다. 일정에 맞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달력을 나눠주게 되면, 정작 실거래 고객들에게 줘야 하는 달력조차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금융권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선 다소 야박하게 느낄 수 있겠지만, 비용 문제를 고려하면 은행 측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