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옥찬 심리상담사ㅣSBS 드라마 <보물섬>(연출: 진창규/극본: 이명희/출연: 박형식, 허준호, 이해영, 홍화연, 우현, 김정난 등)은 심리학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 그리스 신화에서 라이오스 왕은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 때문에 아들인 오이디푸스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오이디푸스는 살아남고 성인이 되어서 결국 아버지를 죽인다는 이야기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이론적 비판은 차치하고, 드라마 <보물섬>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킹메이커를 뒤에서 조정하는 실세 중의 실세인 염장선(허준호 분)과 대산그룹의 사장인 허일도(이해영 분)이다. 염장선과 허일도는 전통적인 아버지 상인 권위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아버지 상은 평가절하를 받는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서는 과거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반면에 JTBC 드라마 <조립식 가족>(연출: 김승호/극본: 홍시영/출연: 황인엽, 정채연, 배현성, 최원영, 최무성 등)에 등장하는 아버지들도 있다. 세 가정의 구성원을 조립하여 모여 사는 가족의 아버지들인 윤정재(최원영 분)와 김대욱(최무성 분)이다. 특히, 칼국수 집을 운영하며 딸을 혼자 키우는 윤정재는 남자이지만 전통적인 어머니 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어머니처럼 아이들의 먹을 것을 살뜰하게 챙겨주고 살림을 하고 양육을 한다. 드라마 <보물섬>에 등장하는 아버지 상과는 다른 아버지 상이다.
아버지 상과 역할은 시대의 변화에 맞물려 형성되는 사회문화에 따라서 변한다. 어느 사회문화권에서는 <보물섬>에 나오는 아버지 상와 역할이 필요하다. 가령,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와 안전을 온전히 책임지고 자녀에게 생존 기술을 전수한다. 아버지는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녀의 초자아(superego)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서 자녀는 프로이트가 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결하며 아버지의 권위와 규범을 내면화한다. 즉, 아버지는 규율, 질서, 금지의 상징으로 사회화 과정에서 도덕과 법의 대리자 역할을 한다.
반면에 <조립식 가족>에 나오는 아버지 상과 역할을 원하는 사회문화가 있다. 현대 한국 사회가 그렇다. 현대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강한 육체로부터 나오는 강력한 힘이 과거만큼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아버지에게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요구한다. 존 볼비의 애착이론에 비추어 어머니만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안정된 애착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아버지와의 안정된 애착은 자녀의 자율성, 탐색 행동, 사회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초저출산의 원인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자녀 양육의 어려움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드라마 <보물섬>을 보면 자녀 양육은 여전히 어머니의 몫이다. 아버지들은 정치하고 경제 활동을 한다. 과거와 다르게 육체적인 힘이 아닌 사회적인 힘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자녀의 안정된 애착은 보이지 않고,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저항한다. 심지어 아버지가 저항하는 아들을 죽이려고 한다. 오이디푸스를 죽이려는 라이오스 왕처럼 말이다.
한국은 핵가족화된 양성평등의 사회로 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아버지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아버지 상은 부정적이 되었다. 가부장적이고 통제적이고 푹력적이어서 자녀와 안정된 애착은 없는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반대로 아버지가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친구 같은 아버지’라는 명제를 가지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한 건강한 초자아가 발달하지 못하고 잘못된 행동을 절제하지 못하는 소위 ‘금쪽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아버지 상은 과거 아버지 상도 아니고 현재 요구되는 어머니와 같은 아버지 상도 아니다. 정반합의 원리에 따른 아버지 상이 필요하다. 융 심리학에서는 남성성(아니무스. Animus)과 여성성(아니마. Anima)을 단순한 생물학적 성이 아닌 정신 내적인 에너지의 양상으로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성에 상관없이 인간의 마음 속에는 양극의 에너지, 즉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존재한다고 본다.
융 심리학에서 여성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남성성(아니무스)은 이성, 분석, 구조, 논리, 권위, 의지, 결단력 등을 의미한다. 남성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여성성(아니마)은 관계, 감정, 수용성, 직관, 양육성, 창의성 등을 의미한다. 융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진정한 성숙은 한쪽 성질에 치우치지 않고 자기 안의 아니마(또는 아니무스)를 통합하는 것이다. 이것이 융 심리학이 강조하는 ‘개성화 과정(individuation)’의 핵심이다. 즉, 인간 존재의 통합의 과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아버지 역할은 남성성(아니무스)을 유지하면서도 여성성(아니마)을 발견하고 발달시키는 것이다. 어느 한쪽만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자녀의 인성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버지 되기’는 단순한 역할 수행이 아니다. 어찌 보면 자녀 양육을 통한 자기 성장의 여정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정직한 자기 인식, 성숙한 감정관리, 그리고 끊임없는 관계의 노력이 중요하다. 이 세상에 완벽한 아버지는 없다. 다만,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버지 자신을 위한 성숙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PS. 한부모 가족이나 조손가족은 아이의 주양육자가 남성성(아니무스)과 여성성(아니마)을 아이의 발달 단계에 따라서 드러내야 한다. 아이가 어릴수록 주양육자의 여성성이 중요하다. 아이와 안정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아이가 자랄수록 주양육자의 남성성으로 아이의 자율성과 책임감이 발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