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정재혁 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나 넥밴드’의 개발자인 유퍼스트 이현상 대표입니다. 청각장애인과 노인성 난청 환자들을 위한 청력 보조기구를 선보이게 됐는데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고생하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눌 때까지는 잘 몰랐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이현상 대표가 매우 조신(!)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걸 보면서 청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제품을 만드는 평범한(?) 스타트업 대표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아는 데까지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유퍼스트는 저의 12번째 회사입니다. 대학생 시절부터 창업을 시작했는데, 어느 새 창업을 해 본 경험이 10번이 훌쩍 넘어버렸네요. 한때는 팔로워 35만명을 거느린 ‘트위터리안’으로 활동할 때에는 네이버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오른 적도 있습니다. 하하.”
소셜마케팅·의류·까페·쇼핑몰 등 다양한 종류의 창업을 경험하면서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봤다는 이현상 대표. 그랬던 그가 이번에 개발한 것이 바로 ‘누구나 넥밴드(nuguna NECK BAND)’라는 청각 보조기구다.
생김새는 블루투스 이어폰과 비슷하다. 넥밴드의 양 쪽 끝 부분에 소리를 감지하는 센서가 달려있는데, 소리가 나면 진동이 울려 청각장애인이 소리가 나는 방향을 인지할 수 있게 돕는다. 소위 ‘대박’이 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제품인 셈. 그는 왜 이런 걸 만들게 됐을까.
“예를 들면, 청각장애인은 아기 키우기가 너무 힘듭니다. 애가 울어도 들리지를 않으니 알 수가 없잖아요? 하지만, 저희가 개발한 넥밴드를 끼고 있으면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설명을 듣고 바로 든 생각은 ‘보청기를 끼면 되는 것 아닌가?’였다. 보청기를 사용하면 굳이 이 제품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는 걸 눈치챈 모양.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 대표는 곧바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보청기를 끼는 건 쉽게 말하면 비장애인이 이어폰을 끼고 있는 거와 같습니다. 기자님, 하루 종일 이어폰 끼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불편하지 않겠어요? 청각장애인이나 난청 환자 분들을 보면, 밖에 나갈 때나 집에 있을 적에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넥밴드는 유용할 수 있죠.”
또 다시 궁금증이 생겼다. 아무리 불편해도 안 들리는 것보다 더 불편할까. 그래서 이번에는 물었다. “집에 있을 때야 보청기를 빼놓을 수 있지만, 청각장애인들이 외출 중에도 보청기를 잘 끼지 않는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요?”
기다렸다는 듯이 이 대표는 답했다.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국내 청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었는데요. 그들이 외출 중에 보청기를 잘 끼지 않는 이유는 바로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자신이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청각장애인들은 외출 중에 보청기를 주머니에 넣고 있답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실제로, 블루투스 이어폰과 비슷하게 생겨서, 목에 두르고 있어도 청각 장애인이라는 것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넥밴드를 쓰다가, 꼭 필요한 상황에만 보청기를 꺼내 쓰면 된다”는 이 대표의 설명이 머릿속에 박혔다.
어떤 계기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넥밴드가 탄생하게 됐는지 궁금해져서 물었더니. “어머니 때문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대표의 어머니가 노인성 난청 질환을 앓고 있었던 거였다.
“어머님이 한 쪽 귀가 잘 안 들리세요. 그래도 아예 안 들리는 건 아니니까 괜찮은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는데요. 문제는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어느 쪽에서 나는 소리인지를 바로 인식하지 못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오른쪽 귀만 들리는 사람은 실제로 왼쪽 방향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외부 활동 중에 교통사고 등 큰 사고를 당할 위험성이 크다. 넥밴드는 진동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어머니의 불편이 상품 개발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긴 했지만, 제품명인 ‘누구나(NUGUNA)’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제품은 청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다. 누구나 노인이 되면 청력을 잃어 불편함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가 70억명입니다. 이 중에 1%인 7000만명에게만 상품을 팔아도 소위 ‘대박’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세계 청각장애인 숫자가 7억명이고, 노인성 난청 인구는 13억명이라고 합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 않나요?”
제대로 한 방 먹었다. ‘돈 안 되는 아이템일 거’라는 기자의 편견이 산산조각나는 순간. 후속타는 뒤따랐다.
‘누구나 넥밴드’는 오는 19일, 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kickstarter)’에 상품을 올리고 후원금을 모금할 예정이라고. 킥스타터는 개인이나 기업이 상품 아이디어·모금 목표액 등을 사이트에 올려놓으면,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회원이 후원자로 나서는 시스템이다.
“지난 1년간 해외 10개국을 돌면서 우리 제품이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누구나 넥밴드’가 후원금을 얼마나 모금하는지 한 번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