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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일본의 눈]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잇는 섬 쓰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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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pril 25, 2019, 09:04:57

김정기 교수가 쓴 일본이야기1. ‘섬으로 세상을 보는’ 소-다케유키의 시 눈길

 

[인더뉴스 편집국] 김정기 교수가 쓴 일본이야기1. ‘섬으로 세상을 보는’ 소-다케유키의 시 눈길

 

우리들은 일본에 대해 언제부터인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른다. 이를 두고 진부한 스테리오타입(고정관념)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한국인이 일본인이나 일본에 대해 느끼는, 연관된 관념을 떨쳐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일제 35년 동안 조선을 강점한데서 만 온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나그네가 아는 몇몇 일본인 친구들은 친절하고 상냥하고 예의바른 ‘가까운’ 이웃 일본인이다. 그러나 역사에 나타난 광기 어린 집단화한 일본인은 이런 개개인 일본인과는 한참 ‘먼’ 일본인이다. 그렇게 ‘먼’ 일본인 상은 1923년 9월 관동대지진(關東大震災) 때 6000명 이상의 무고한 재일조선인을 집단 학살한데서 잘 드러난다.

 

나그네는 이런 관념을 염두에 두면서 한국에서 지리적으로 제일 가까운 쓰시마(対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쓰시마는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한반도와 친근한 이웃 섬이다.

 

쓰시마는 고대로부터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를 잇는 징검다리 몫을 한 섬이다. 이 섬을 통해 먼 옛날 야요이(弥生) 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2, 3세기)에 논농사가 열도로 건너간데 이어 농기구를 만든 제철기술이 건너갔다. 이는 오늘날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자포니카 쌀 품종의 원종이 낙동강 하구에서 일군 쌀이라는 말이다.

 

물론 쌀 종자만 혼자 현해탄을 둥둥 떠갔을 리는 없다. 한반도 남부 가야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와 함께 건너간 것이다. 나그네는 그 문화 중 으뜸가는 것이 현재 일본인의 정신적인 지주를 이루는 신도의 종교적 토대라고 본다. 이것이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잇는 이 징검다리 섬, 쓰시마를 통해 전해졌는데, 이것이 조선의 무교로 토대가 된 일본의 고신도(古神道)이다.

 

■ ‘두 섬’-->‘쓰시마’ : 어김없이 보이는 ‘신사’ 일본 실감

 

먼저 지도상에서 쓰시마의 위치와 형태, 그리고 크기를 알아보자. 규슈 북부의 이토반도(系島半島)와 시카 섬(志賀島) 사이에 끼인 하카다만(博多灣) 입구에서 쓰시마의 중심 집락인 이즈하라(嚴原)까지 직선으로 해상 약 100킬로미터, 이키(壱岐)와 쓰시마 사이는 50킬로미터 남짓, 또한 북부의 히타가츠(比田勝)나 와니우라(鰐浦)에서 부산까지도 해상 약 50킬로미터이다.

 

 

쓰시마의 어원은 일본에서 한반도(당시 신라)로 넘어갈 때 나루터가 되는 섬[津島(쓰시마)라는 것에서 유래한다고도, 한반도 서남부의 마한(馬韓)에 상대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에 유래했다고도 일컬어지고 있다[일본국어대사전]. 그러나 나그네의 생각으로는 한국어 ‘두 섬’에서 ‘쓰시마’로 전화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짐작한다.

 

이 섬은 남북 약 82킬로미터, 동서 18킬로미터 내외로 좁고 긴 모습을 지니고 있다. 현재 카미시마(上島)와 시모시마(下島)로 나뉘고 있지만 이것은 1900(메이지 33)년의 만세키카이사쿠(万関開削[구일본해군이 군함을 왕래할 수 있도록 운하같이 뚫은 공사]로 그렇게 된 것이다.

 

섬 크기로는 709 평방킬로미터이며, 오키나와 본도-사도가시마(佐渡島)-아마미(奄美)대도에 뒤이은 큰 섬이다. 인구는 약 3만여 명을 웃돈다. 1876년 이후 나가사키(長崎 현에 속하고 2004년 3월 1일 상현(上県[카미아가타]) 하현(下県(시모아가타)]의 여섯 읍[이즈하라(嚴原町), 미쯔시마(美津島町), 도요타마(豊玉町), 미네(峰町), 가미아가타(上縣町), 가미쯔시마(上對馬町)]을 합해 전도가 쓰시마 시로 되었다.

 

이곳이 일본 땅이라고 실감케 하는 것이 섬 곳곳에 들어선 크고 작은 신사이다. 나그네 일행이 묵고 있는 이즈하라 호텔 이웃 골목에도 어김없이 작은 마을 신사가 들어서 있다. 우노도신사(宇努刀神社)라고 이름 붙인 이 마을 신사는 제신을 스사노오미고토(須佐男命)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신라 신이다. 좀 떨어진 곳에는 오오토시 신사(大歲神社)로 이름 붙인 작은 마을 신사도 있다. 토속신 오오토신을 제신으로 모신다고 되어 있다.

 

이즈하라에는 우사(宇佐) 신궁신사와 같은 큰 신사도 있다. 북부 규수에 있는 우사하치만 궁을 총본산으로 권청되어 온 이 신사의 제신은 신공황후와 그의 아들이라는 오-진 천황. 이들 제신이 한반도 계라고 나는 최근 한 저서에서 밝힌 바 있다[<일본천황, 그는 누구인가>(2018). 쓰시마 북안에 들어선 와다쓰미신사(和多都美神社)도 한반도와 관계 깊은 큰 신사이다. 이 신사는 특이하게도 토리이(鳥居, 신사의 문) 5개가 나란히 바다 쪽으로 뻗어있는데, 이는 옛날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금관가야국의 방향이다.

 

그런데 우사신궁신사의 섭사인 텐신신사(天神神社)가 나그네의 눈길을 끈다. 제신을 어린 나이에 비운에 죽은 안도쿠(安德) 천황으로 한다는데, 이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천신에 부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잘 살펴 볼 것이다.

 

■ 곳곳에 눈길을 사로잡는 한일관계 역사 상징하는 비석들

 

우선 나그네의 눈에 띄는 것은 섬 곳곳에 서 있는 한반도와의 관계를 말해주는 ‘말없는’ 비석이 서 있다는 점이다. 섬 북쪽 한 둔덕에 서 있는 ‘조선국역관 및 종관순난영위(朝鮮國譯官並從者殉難霊位)’라고 새긴 비가 한국전망대에 세워져 있다.

 

 

1703년 2월5일[음력] 위문행역관사(慰問行譯官使) 선박이 대마도로 입항하다 암초에 좌초되어 침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정사 한천석(韓天錫)과 부사 박세양(朴世亮) 등 112명 전원이 물에 빠져 죽는 참변이었다.

 

이 비는 그들의 넋을 기리는 조선역관순난지비(朝鮮譯官殉難之碑)라고 되어 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지만 1991년 ‘종가문고사료(宗家文庫史料)’에서 ‘도해역관종자성명’을 묵서로 쓴 소책자가 발견되어 112개의 영석으로 순국비를 건립해 추도하고자 건립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언제부터 일본이 아닌 조선을 위해 죽은[순국] 사람의 영혼을 기리게 되었는지 들은 일은 별로 없지만 매주 밀물처럼 밀려오는 한국관광객으로선 기분 나쁠 일은 아니다. 필자도 최근 부산에서 비틀호를 타고 한 시간 조금 지나 히타가츠(比田勝)에 도착한 지 얼마 뒤 처음 비석을 접하고는 ‘과연’하고 일본인들의 상업적 민첩성에 감탄하고 말았다.

 

또한 이즈하라 가네이시성(金石城) 유적지에는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가 쓰시마 도주 소-(宗) 씨의 후예인 소-다케유키(宗武志)와 결혼을 기념하는 이왕가종가백작어결혼봉축개념비(李王家宗家伯爵御結婚奉祝記念碑)가 세워져 있다.

 

조선을 잃은 비운의 마지막 ‘황제’ 고종의 딸 덕혜옹주(德惠翁主)와 도주 소-가의 후손 소-다케유키(宗武志)의 ‘정략’ 결혼을 축하하는 기념비이다. 일제에 의한 강제 결혼이었지만 1950년 대 덕혜옹주가 이혼하자 이 비석은 그대로 방치되어 버려진 채 있었지만 최근 한국관광객이 밀려오자 이즈하라 시청이 이를 다시 세운 듯하다.

 

그러나 이들 비석과는 결을 달리하는 ‘순국비’들도 있다. 시대를 거슬러 신라시대 신라국사 박제상공순국비(新羅國使朴堤上公殉國碑)도 그 중 하나이다. 그는 볼모로 잡혀간 신라의 왕자를 구출하고 자신은 일본에서 처형되었다. 조선왕조 시대로 내려오면 그 말년 1906년 구한말에는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불렸던 애국지사 최익현(崔益鉉)이 볼모로 잡혀와 순국한 곳이며 그를 추모하는 비석이 슈젠지(修善寺)에 세워져 있다.

 

나그네는 이들 비를 세운 까닭을 일본인들의 처지에서 생각해 본다. 일본인들은 원령(怨靈) 신앙을 뿌리 깊게 간직하고 있다. 무고하게 죽은 사람의 원혼을 달래지 않으면 해코지한다는 신앙이다. 특히 정적을 죽인 사람은 그 원령을 사당을 지어 기린다.

 

예컨대 8세기 중세일본의 실권자로 득세한 후지와라노후히토(藤原不比等, 659~720)의 사례가 여기에 딱 맞는다. 그는 당대의 실력자로 천하를 얻었지만 수많은 정치적 라이벌을 죽이는 대가를 치르고 서야 이룰 수 있었다. 원령신앙을 연구한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가 쓴 <신들의 유찬>(1985)에서 보듯 후히토는 원령으로 만든 신들을 이즈모 대사(出雲大社)에 가두고, 원령이 돼 버린 소가(蘇我)씨 또는 소가계의 황족을 호우류유-지(法隆寺, 이하 ‘법륭사’)에 유폐시킴으로써 ‘원령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것은 후지와라 일족이 이세신궁에 천황의 조상신 천조대신을 모시고, 자신의 조상신은 카스가대사(春日大社)모심으로써 정권의 영구한 안녕을 도모한 치세 전략이었다. 또한 그의 후손 후지와라노타다히라(藤原忠平, 1078~1162)은 셋칸가(攝關家)의 세습 섭정의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그의 실형 도키히라(時平)에 의해 회생당한 스가와라노미치자네(管原道眞)의 원령을 제사지내는 기타노텐만 궁(北天滿宮)을 지어 수호신으로 모시는가 하면, 자기 일족의 조상신을 모시는 우지테라(氏寺)로 코우후쿠지(興福寺, 이하 ‘흥복사’)을 지었다.

 

이런 비석 중 이례에 속한 비도 눈에 띈다. 그것이 미네초(峰町)에 있는 엔츠지(圓通寺)라는 사찰에 세워진 비석으로 초기 통신사로 쓰시마로 건너가 계해약조(癸亥約條)를 체결을 기리는 이예(李藝)의 공적비이다.  

 

나그네는 덕혜옹주나 소-다케유키나 정략결혼이라는 역사의 어둠을 거두어 내고, 그리고 인위적인 결혼봉축비의 억지성 지워 버리면, 소-다케유키(宗武志)의 시비는 마음에 다가온다. 이즈하라의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카미자카 공원에 이 시비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가 새겨져 있다.

 

 

섬도 야위었지만/친구도 야위었다.

어형[魚型]의 미끼를 깎으면서/밀려오는 파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허나 나에게는 꿈이 있지/라고 말을 맺자 친구는 웃음 짓는다.

깊은 밤 세계지도를 펴고/ 콤파스를 잡는다/섬을 축으로 한 바퀴 빙글 돌린다 (島も痩せたが/友も痩せた。魚型を削りながら/だまって 潮を見る/だが おれには夢がある、言いさして友は笑う。深夜 世界図をひらく/コンパスを取る/島を軸に ぐるっと回す)

 

이 시는 1964년 발간된 <신쓰시마지>(新対馬誌) 속표지에 서문으로 게재된 소-다케유키의 작품이다.

 

다케유키는 구 쓰시마 번주의 후예인데 도쿄대 영문학과 출신의 학자이었다. 하쿠슈(白秋) 파 문하의 시인이며, 게다가 영문시 짓기에 능통했다. 한일고대사에 밝은 고고학자인 모리 코이치(森浩一) 교수는 “과연 쓰시마 도주의 후예답다"고 이 시를 칭송했다.

 

그런데 내가 이 시를 눈여겨본 까닭은 섬을 축으로 해 세계를 본다는 그의 역사안(歷史眼)이다. 고대 이래 이 섬은 조선 문물 유입의 창구이었음은 앞에서 본대로 이다. 과연 이 섬을 통해 열도로 건너간 조선 문물은 어떤 것인가.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명예교수

 

◇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다.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일본천황, 그는 누구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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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명기 기자 pnet21@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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