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 열기 인더뉴스 부·울·경

Global 글로벌

[김정기의 일본의 눈] ‘日 국민작가’ 시바료타로 “쌀, 한국서 왔다”

URL복사

Tuesday, May 07, 2019, 09:05:00

김정기 교수가 쓴 일본이야기2. <쓰시마 섬 ‘적미’ 보고>..“일본쌀 원산지는 낙동강”

 

[한국외대 김정기 명예교수] 쓰시마를 통해 일본열도로 전해진 한반도 문물 중 중요한 것이 논농사이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쌀은 국민의 주식이다. 우리는 이전 이야기에서 일본인이 자랑하는 자포니카 품종의 원종이 실은 낙동강 하구에서 일군 고대 한국 쌀이라고 일깨웠다.

 

그러나 많은 일본인은 한반도에 대한 콤플렉스에서일까 한반도 논농사의 일본 전래를 한사코 부정한다. 그것은 ‘대륙’ 문화의 일본 전래를 인정하면서도 ‘한반도’는 아예 제쳐놓거나 그렇지 않으면 “한반도를 거쳐”로 표현하는데서 드러난다.

 

논농사의 경우 남방전래설도 주장하는가 하면 북방전래설을 인정하면서도 중국 양쯔강의 직래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남방전래설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일본의 이름난 민속학자 야나기타 쿠니오(柳田国男, 1875~1962)를 들 수 있다.

 

그는 <해상의 길>(海上の道, 1960)이라는 저술에서 일본쌀이 남방에서 왔다면서, 논농사가 남중국에서 출발해 대만, 오키나와 남부의 야에산 군도(八重山群島)의 이리오모테 섬[西表島], 이어 오키나와(沖縄)를 거치고, 다시 남부제도를 거쳐, 사쓰마(薩摩) 곧, 규슈남부 쪽으로 상륙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논농사가 남중국해를 거쳐 일본에 들어 왔다는 남방전래설이다.

 

동중국해를 거쳐 양쯔강에서 직접 일본으로 전래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예컨대 소설가 구로이와 지유고(黒岩重吾)를 들 수 있다. 그는 왜인들이 조선반도를 거치지 않고 직접으로 규슈 앞바다인 아리아케(有明)를 거쳐 중국을 왕래했다면서 이들을 통해 논농사가 전래되었다고 우긴다.

 

그는 그 근거로 중국의 후한 왕조시절 서기 170년 경 양쯔강 하류 회계군(会稽郡)에 상당한 왜인 집단이 거주했을 가능성을 든다. 오오와 이와오(大和岩雄)와 함께 쓴 <히미코와 야마타이국>(卑弥呼と邪馬台国, 1992)에서 이렇게 우기면서 그는 그 당시 이미 아리아케 (有朋)와 양쓰 강과 연결하는 항해로가 있었다는 것이다(위 책, 32).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가 일본에서 이름난 역사 소설가이니 상상은 그의 몫이다. 그러나 돛대를 올릴 줄 몰랐던 왜인들이 통나무 배로 험한 동중국해를, 그것도 그 옛날 야요이 시대 왕래했다고 말한들 과연 누가 믿을 수 있을까.

 

 

◇ 논농사 ‘남방전래설-양쯔강 직래설’에 대한 쓰시마의 반란

 

한국 쌀이든 일본쌀이든 그 원산지가 중국 양쯔강 하류, 곧 저장성(浙江省) 부근 하모도(河姆渡)가 확실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곳은 지금부터 약 6000년 전 논농사가 시작된 고장이다. 1920년대 일본인들이 이 쌀 품종을 ‘자포니카’라고 불러 지금 학명으로 정착했지만, 이 쌀은 둥글고 길이가 짧고 찰기가 있는 단립(短粒) 쌀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알랑미[安南米]’로 알려진 찰기 없는 장립(長粒)쌀과 구별된다.

 

그러나 논농사의 남방전래설이나 양쯔강 직래설에 “여기요” 손들어 이의를 제기한 것은 의외로 쓰시마 섬이다. 즉, 반기를 든 것이다. 이것은 일본과 같은 상하질서가 엄격한 ‘다테(從)’ 사회에서는 차라리 반란이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그 반란 이야기를 캐낸 사람은 놀랍게도 일본의 ‘국민 작가’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郎)이다.

 

시바는 인기 연재물 <가도를 가다>(街道をゆく)13 편에서 ‘이키 쓰시마의 길’(壱岐 対馬の道)에서 이 쓰시마 반란 이야기를 논증적으로 풀어간다. 먼저 그 골자는 쓰시마 사람들이 받드는 신인 텐도사마(天道樣)에 공물로 적미[赤米(아카고메)]를 바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적미야말로 한반도에서 온, 오늘날 자포니카의 원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적미의 원류가 한반도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는 쓰시마 키사카(木坂) 출신 사가 나가도메 히사에(永留久惠)씨의 견해에 의존해 이 문제를 풀고 있다. 이제 시바의 <가도를 가다> 13 편에 좀 더 다가가 보자.

 

그는 “<일본서기> 신대권 하에 타카무스비노미고토(高皇産霊尊: 일본 신화에 나오는 천상국 다카마가하라(高天原)의 사령신)한 말”에 눈을 돌린다. 즉, “나는 아마츠히모로기(天津神籬) 및 아마츠이와사카(天津磐境)을 만들어 세워 진실로 우리 자손을 위해 제사를 바치리라.” 그는 ‘히모로기’와 ‘이와사카’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이어간다(249~253).

 

[히모로기(神籬)는 단적으로 말하면 신이 강림하는 산이다. ‘히’는 령(霊)이라는 것. ‘모로’는 ‘모리(社[사당])’과 같은 뜻. 쓰시마의 사고(佐護)라고 하면 텐도산(天道山)이다. 히모로기 산을 만들고, 그것을 제사하는 공간설정을 위해 이와사카를 만든다는 위의 기술은 정경으로서는 이 눈앞의 신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고장에서는 이 신[お宮]을 무어라 부릅니까.

텐도사마(天道樣)라고 부릅니다.

나가도메 씨는 다이쇼(大正)시대 즈음까지 텐도사마의 제례가 매우 잘 치러졌지만 지금은 쇠락했다고 말한다. 물론 사무소 같은 것은 없고 신사를 호지(護持)하고 제례를 주재하는 것은 어느 고장의 많은 사당이 그렇듯 토-야(또는 토-)라고 부르는 특정의 농가이다. 고대 제사단의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도메 씨는 토-야 사람들이 신전(神田)에서 신에 바치기 위해 적미[赤米(아카고메)]를 지었다고 하며, 그러나 그것도 다이쇼시대 즈음 쇠락했다고 하면서 이것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그것은 다이쇼 시대[1912~1926]까지 쓰시마 사람들이 적미를 신에 바쳤다는 사실이다. 시바는 쓰시마 사람들이 적미를 지어 신에게 바친 것을 나가도메 씨를 통해 캐내고는 그 적미가 어디서 왔는지를 밝혀낸다. 다시 계속해 보자.

 

 

옛날 이 열도에 벼를 가져온 것이 지금 자포니카라고 부르는 쌀(조선쌀도 물론 그럴 것이다)이 처음은 아니고 적미이었다는 설이 정설화 되고 있다. 벼의 전래에 대해서 고고학과 문화인류학이 종합하는 여러 분야의 노력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나에게는 그다지 말할 능력이 없다.

 

쓰시마에서 제사와 적미에 대해서 쓰시마에 사는 민속학자 시로타 기치로쿠(城田吉六)씨의 <쓰시마 적미의 마을>(対馬 赤米の村, 葦書房 刊)이 있다. 적미는 쓰시마의 옛 신사에서는 신미(神米)라고 여겨진다.

 

지금 일본에서는 쓰시마 남쪽 끝 쓰쓰(豆酘)에 있는 신전(神田)과 타네코시마(種子島, 나가사키 현-필자)의 케-에이(茎永)라고 하는 작은 마을의 신전밖에 없다고 한다. 다른 세계로부터 처음으로 도래한 쌀(이 경우 적미)은 신의 음식으로 신성시된 것은 당연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이 반해 뒤에 들어와 보급된 쌀은 그렇지 않았다. 적미가 사라진 뒤에도 신성의식만은 남아 있었다. 일본에서는 세키한(赤飯: 팝밥)을 축일에 먹는데 먼 옛날 신들이 먹었던 적미의 자취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시로타 책에 의하면 “조선반도에는 쇼와초기까지 조선미에 섞여 있는 적미가 여기저기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낙동강 유역에 많다고 한다. 그 부근은 고대 미마나(任那)가 존재했던 땅이며, 또한 옛 신라가 그 세력권에 두었던 땅이기도 하다. 일본에 벼의 전래라는 과제에 있어 암시적인 느낌이 없지도 않다.

 

[내가 사는 가까운 곳에 정귀문(鄭貴文)이라는 친구가 살고 있다. 낙동강에 인접한 예천 사람인데 어려서 일본에 와 반세기 이상 흘러갔다. 위에서 말한 밥에 적미가 섞여 있는지 여부를 전화로 물어 보았지만 어렸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내 전화 뒤에 정귀문 씨가 지인인 늙은 조선인에 물어봐주었다. 경상남도 고령 옆 거창사람인데 쇼와 9년[1934] 20대 중반에 일본에 와 지금 80세라고 한다.

 

“[적미가] 섞여 있었죠”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보통 쌀을 재배할 때에 야생종과 함께 섞여 온 것 같다. 적미는 열악한 환경에 강하다.

 

“키는 보통 벼보다 컸든 것 같고, 수염도 길고요. 겉겨는 갈색[茶色]을 드러내고 쌀알은 붉은 빛을 띠고 있고요. 아무래도 그것은 섞여 오는 것이죠. 적미를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그것은 밥을 지을 때도 불려 지지 않기 때문에, 손해라는 것이었지요. 집집마다 적미가 섞여있어도 먹었지만 시장에서 팔 수는 없었어요. 시장에 내기 위해 논에서는 적미는 그루터기째 뽑혀버리고 말았지요.”

 

80세 노인의 이야기로는 흑미[黑米(쿠로고메)]도 있었던 같다. 조선어로는 흑벼[黑稻]라고 하며 이것은 맛있는 것인 듯하다. 다만 흑벼는 밥이 퍼지지 않았기 때문에 돈 있는 백성들은 제집용으로 재배했지만 보통 이하 백성들은 재배하지 않았다. 흑미에 관한 여담이다.

 

비교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자칫 메이지 이전 일본에서도 적미가 석인, 말하자면 거친 논 재배 방식을 행하고 있었던 지방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여부를 알기에는 최저 120세 이상의 노인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데 지금에는 불가능에 틀림없다.]

 

위의 시바의 글은 몇 가지 사실을 알려주지만 그 핵심 줄거리는 일본 쌀 자포니카 이든 자손을 많이 두기로 유명한 한국 쌀 통일벼든 그 원종은 적미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포니카든 통일벼든 그것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생겨난 품종일 뿐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쓰시마 사람들이 다이쇼 시대[1912~1926] 까지 신에게 바친 공물이 적미라는 것에서 드러난다. 물론 시바의 글에는 임나일본부와 같은 허구를 인정하는 어조가 묻어 있는 것을 무시할 순 없다. 그러나 그것은 곁가지일뿐 적미의 뿌리가 한반도 낙동강 하류의 야생종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쓰시마 사람들이 받드는 텐도(天道) 신앙의 고향 역시 한반도라고 일깨운다.

 

◇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다.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일본천황, 그는 누구인가』 등이 있다.

English(中文·日本語) news is the result of applying Google Translate. <iN THE NEWS> is not responsible for the content of English(中文·日本語) news.

배너

More 더 읽을거리

정리=박명기 기자 pnet21@inthenews.co.kr


[C-레벨 터치]치킨 3위 교촌…허니시리즈 만든 송종화 ‘절박함’ 통할까

[C-레벨 터치]치킨 3위 교촌…허니시리즈 만든 송종화 ‘절박함’ 통할까

2024.04.25 07:00:00

인더뉴스 장승윤 기자ㅣ치킨업계 1위를 지켜온 교촌치킨의 성장세가 멈췄습니다. 적극적인 출점과 마케팅으로 점유율을 끌어올린 bhc, BBQ와 대비되는 흐름에 본업 경쟁력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상황입니다. 교촌은 '허니시리즈의 아버지' 송종화 대표 체제에서 올해 새판 짜기에 돌입합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치킨업계 매출 순위가 뒤바뀌었습니다. bhc 매출이 전년보다 5.5% 증가한 5356억원으로 교촌치킨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치킨 3사 중 유일하게 매출 5000억원을 넘겼습니다. BBQ는 지난해 매출이 12.8% 증가한 4732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2년 연속 500억원 넘게 올랐습니다. 교촌에프앤비만 역성장했습니다. 지난해 매출이 445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4% 줄었습니다. 2014년부터 8년간 이어온 국내 치킨프렌차이즈 업계 선두 자리를 bhc에 뺏겼고 BBQ에 2위 자리마저 내줬습니다. 3위로 내려앉았지만 이유는 있습니다. 교촌은 외연 확장보다 내실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수익성 개선에 성공한 교촌에프앤비입니다. 영업이익이 248억원으로 전년 대비 181% 늘었습니다. 1년 사이 3배 급증했습니다. 영업이익률도 1.7%에서 5.6%로 3.9%p 끌어올렸습니다. bhc와 BBQ의 영업이익은 각각 1203억원, 553억원으로 전년보다 15.2%, 13.7% 줄었습니다. 교촌에프앤비 측은 "당초 가맹점 확장 전략을 추구했다면 매출이 큰 폭으로 올라 업계 순위 회복이 어렵지 않았겠지만 권원강 교촌에프앤비 회장은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가맹점 수익이 우선이라는 권 회장 경영철학을 2023년 실적에서도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 교촌에프앤비는 가맹점 및 파트너사와 상생 협력 관계 구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점포당 점주 매출은 업계 최고 수준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거래에 따르면 2022년 교촌치킨 가맹점의 전국 평균매출액은 7억5000만원으로 bhc(6억원), BBQ(4억3000만원)보다 높습니다. 0%대 폐점률도 이를 입증합니다. 다만 가맹점주 수익성 보전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 외형 성장이 더뎠고 매출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지난해 경쟁사들이 수십 개 이상 매장을 낼 때 교촌에프앤비의 신규 출점 매장은 10개에 불과했습니다. 전국 가맹점 수(2022년)에서도 교촌에프앤비(1365개)는 BBQ(2041개), bhc(1991개)와 차이가 큽니다. 특히 치킨 가격 인상을 주도한다는 점이 매출 하락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교촌은 2018년 업계 최초로 배달비를 도입했고 이는 요식업계 전체 배달비 유료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촌은 지난해 4월에도 주요 메뉴 가격을 나홀로 최대 3000원 인상하며 소비자들의 눈총을 받았습니다. 경쟁사 대비 부족한 히트 상품도 보완 과제로 언급됩니다. 교촌의 인기 제품으로는 1991년 간장치킨(교촌시리즈)을 시작으로 2004년 레드시리즈, 2010년 허니시리즈 등이 손꼽힙니다. 허니시리즈 이후 15년 가까이 꾸준히 신제품을 내고 있으나 히트작으로 불릴 만한 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지난 2020년 24가지 재료로 완성한 불맛을 강조하며 선보인 '교촌신화'는 반짝 인기를 끌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2년 뒤인 2022년 7월 단종됐습니다. 교촌에프앤비는 같은달 블랙시크릿을 출시하며 5가지 향신료로 만든 이국적인 치킨 콘셉트를 앞세웠고 콤보 출시, 시식단 모집 등 마케팅을 강화했습니다. 블랙시크릿은 지난해 1월 출시 약 6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이 100만마리를 돌파하며 가능성을 보였으나 시장에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교촌에프앤비 입장에서는 허니시리즈를 이어 매출 증대와 신규 고객 창출을 견인할 인기 제품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는 송종화 부회장을 교촌의 새 사령탑으로 임명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교촌은 지난달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송 부회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했습니다. 송 대표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교촌에프앤비 총괄상무 및 사장으로 재직한 전문경영인입니다. 지난해 9월 부회장으로 11년 만에 경영에 복귀했습니다. 송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조류 인플루엔자(AI) 파동으로 가라앉은 치킨 프렌차이즈 시장 위기를 극복하고 교촌치킨을 치킨 선두 브랜드로 올리는 데 기여한 프렌차이즈 전문가로 평가받습니다. 임원 재직 당시 미국과 중국 시장 진출을 주도했습니다. 2010년에는 교촌의 효자 상품인 '허니시리즈'를 출시했습니다. 허니시리즈는 후라이드와 양념으로 대표되던 치킨 시장에 꿀을 활용해 상품화에 성공했습니다. 치킨 고객층을 아이와 여성들까지 넓히는 첨병 역할을 했습니다. 2014년에는 허니시리즈 판매량이 전년 대비 2배가량 신장하며 그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30%, 63% 증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최근 교촌은 신사업 확장에 주력하는 모앙새입니다. 이마트와 협력해 자사 소스를 상품화한 K1 핫소스를 출시하며 소스 시장에 진출했고 지난해 6월에는 이태원에 '치킨 오마카세' 닭요리 전문점 교촌필방을 열었습니다. 올초에도 여의도에 메밀 한식주점 '메밀단편'을 론칭하고 소비자 반응을 살피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촌의 신사업 시도는 매출 부진과 맞물리며 본업 경쟁력 저하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교촌에프앤비는 그룹 성장의 전기를 마련한 송 대표 체제에서 재도약을 도모한다는 계획입니다. 송 대표는 국내가맹사업과 신성장사업, 해외사업, 각 계열사 등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송 대표는 취임사를 통해 "경기위축과 소비침체 등 회사 안팎의 여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절박함’을 갖고 업무에 임할 것"이라며 "지속적 경영혁신을 통해 체질 개선을 가속화하고,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해 교촌을 100년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일에 열정을 바치겠다"고 말했습니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