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이진솔 기자 | “아이폰으로 게임하기 힘드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요즘입니다. 올해 하반기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KT 등에서 ‘클라우드 게임’을 정식 출시해도 애플 iOS에서는 즐길 수 없습니다.
한편에선 ‘포트나이트’같은 인기 게임이 앱스토어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앱스토어를 거치지 않고는 앱을 설치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플레이를 금지한 셈입니다. 두 사례는 모두 애플이 독단적으로 ‘자체 지침’을 내세워 막은 결과입니다.
최근 MS는 iOS에서 시범 운영해온 자사 클라우드 게임 ‘엑스클라우드’를 다음 달 11일 종료하기로 했습니다. MS는 시범 운영을 중단한 이유를 명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애플이 자사 앱스토어 지침을 강력하게 고수하며 앱 출시를 불허했기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애플이 고집을 부린 것은 이번만이 아닙니다. 구글 ‘스테이디아’나 엔비디아 ‘지포스나우’ 등도 iOS용 앱을 출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앞서 이들과 비슷한 서비스인 밸브가 내놓은 ‘스팀 링크’와 프랑스 스타트업 블레이드의 ‘쉐도우’ 등도 앱스토어에서 앱이 갑자기 삭제되는 피해를 봤습니다.
애플은 지난 7일 비즈니스인사이더(Business Insider) 보도를 통해 입을 열었습니다. 핵심은 게임을 ‘개별적으로’ 출시하라는 겁니다. 게임에 있어서는 앱 플랫폼(앱스토어) 위에 또다른 플랫폼(클라우드 게임)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게임 서비스는 리뷰와 검색, 차트 등록 등을 위해 개별적으로 내놓는 것을 포함해 모든 개발자에게 적용되는 지침을 준수하면 앱스토어에서 당연히(absolutely) 출시할 수 있습니다.”
현재 출시가 예정된 클라우드 게임은 모두 구독형 수익 모델을 지향합니다. 게임을 살 때 추가 요금을 받는 예도 있지만 대체로 넷플릭스처럼 달마다 일정 금액만 내면 콘텐츠 수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게임을 ‘하나씩’ 내놓으라는 애플의 요구는 사실상 클라우드 게임을 앱스토어에 출시하지 말라는 말에 가깝습니다.
더군다나 애플은 이미 게임 구독형 서비스인 ‘아케이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른 점은 아케이드가 별도 앱이 아닌 앱스토어 내부에 편입된 형태로 제공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아케이드 게임을 내려받을 때도 앱스토어에서 개별 게임을 하나씩 다운로드하는 것과 같은 형태가 됩니다. 자가당착을 피하고자 일종의 ‘꼼수’를 부린 겁니다.
이러한 완고한 애플의 태도 때문에 현재 클라우드 게임 사업자들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출시 여부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일 KT가 클라우드 게임 ‘게임박스’ 정식 출시를 발표하면서 10월 애플 앱스토어 출시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습니다.
하지만 6일 더 버지(The Verge) 보도에 따르면 넘어야 할 산은 개별 출시에 그치지 않습니다. 애플이 강조하는 지침을 적용하면 기술적으로 앱스토어는 클라우드 게임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앱스토어 심사 지침에서는 원격 데스크톱 앱(클라우드 게임)이 특정 소프트웨어(게임)를 미러링(스트리밍)할 경우, 앱과 연결할 수 있는 기기를 ‘사용자가 소유한 개인 컴퓨터 또는 전용 게임 콘솔’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트리밍을 위해 5세대(5G) 이동통신 등 무선 연결을 할 수 없습니다.
클라우드 게임에서 게임이 실제로 실행되는 곳은 사용자 가진 개인 컴퓨터가 아니라 MS나 구글이 제공하는 전용 서버입니다. 해당 서버는 게이머의 가정이 아닌 멀리 떨어진 데이터 센터에 있습니다. 더 버지는 “다시 말해, 완전한 원격 데스크톱 앱이 아닌 이상 클라우드 게임은 현재 지침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사람의 게이머 입장에서, 애플의 이러한 태도는 앱스토어 운용사라는 독점적 지위를 악용한 ‘갑질’처럼 느껴집니다. 최근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가 애플에 내는 30% 수수료를 우회하고자 직접 결제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삭제해버린 사건을 보면 소비자 의사를 고려하긴 하는지 의문입니다.
에픽게임즈는 애플에 고소장을 보낸 뒤 포트나이트 소셜미디어에 이번 사건을 빗댄 영상을 올리며 조롱했습니다. 해당 영상은 애플이 1984년 컴퓨터 ‘매킨토시’를 출시하며 내놓은 광고를 뒤집은 내용입니다. 과거 애플이 시장 진입을 막던 IBM을 소설 1984 속 ‘빅 브라더’에 묘사했던 장면을 꼬아, 이번에는 애플이 포트나이트를 괴롭히는 썩은 사과 독재자로 그려집니다.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차세대 게임 서비스를 막으면서까지 자체 지침을 결벽증처럼 고수하는 애플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구글과 MS에까지 30% 수수료를 받아내려는 속셈일까요? 36년 만에 썩은 사과 독재자로 묘사되는 애플을 보고 있자니 KT 게임박스 출시가 불발된다면 아이폰으로 클라우드 게임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