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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의 자카르타톡] “인도네시아 화인, 경제 권력에서 정치 권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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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May 13, 2019, 15:05:56

중국 국적이 아닌 중국계 ‘인도네시아 3% 인구’...막대한 부 축적 이제 정치 진출 눈길

 

[정리=인더뉴스 박명기 기자] 지난 4월 17일 인도네시아 대선과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으로 보이는 국회와 지방의회 의원 후보들이 다수 출마했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유세기간 당시 자카르타와 수도권 도로변에 세워진 입간판에 중국계로 보이는 후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여성 권익과 다원주의를 표방한 신생 정당 인도네시아연합당(Partai Solidaritas Indonesia)의 공동설립자 그레이스 나탈리 당대표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으로 유명한 텔레비전 아나운서 출신이다.

 

◇인도네시아 인구 2억 6000만 명 가운데 대략 3% ‘780만 명’ 추산

 

인도네시아 화인(華人 또는 화교(華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십중팔구 ‘재리에 밝은 화상’을 꼽을 수 있다. 화인이 화교와 다른 점은 중국 국적이 아닌 중국계라는 점이다. 화교는 중국 국적을 가진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는 중국인이다.

 

화인들이 인도네시아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인도네시아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화인의 인구수를 파악하기도 힘들고 공식적인 통계도 없지만, 통상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 2억 6000만 명 가운데 대략 3%(780만 명)로 추산한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면 화인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화인들은 수하르토 정권기(1966~1998년, 또는 신질서시대)에 특히 정치와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으면서도 부를 축척했다. 1998년 이후 개혁시대를 맞이하면서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활동은 물론 정계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수끼 짜하야 뿌르나마(일명 아혹) 전 자카르타주지사다. 이 칼럼에서는 화인들의 정치적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 화인은 ‘중국 국적’인 화교가 아닌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화교’와 ‘화인’의 의미와 기준은 어떻게 다른지 다시 정리해 보겠다. 화교의 사전적 의미는 ‘외국에 사는 중국인’이다. 학계에서도 일반적으로 ‘화교’는 중국국적 소지자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정하며, ‘화인’은 법률적 의미에서 중국 문화와 중국인 혈통을 보존하고 있는 비(非)중국국민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거의 모든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이 인도네시아 국적을 갖고 있는 만큼 편의상 ‘화인’으로 통칭한다.

 

또 화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통념만큼 간단하지 않다. 혈통, 이름, 언어, 문화, 자기인식 등 그 어떠한 기준도 인도네시아 화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순수혈통을 간직하고 있는 중국인을 또똑(totok)이라고 부른다.

 

19세기 말 이전까지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로 이주한 중국인들 대부분이 남성이었으며 막노동이나 무역 활동을 위해 본국에서 이주해 귀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지 여성과 혼인해 부계혈통을 이어가면서 중국문화를 계승한 이들을 뻐라나깐(peranakan)이라고 부르며, 통상 중국계로 간주한다.

 

현재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화인은 뻐라나깐이고 또똑의 수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종족별 또는 출신지역별 구성은 호키엔 출신이 화인 전체의 절반 가량이며 이외에 학카와 광둥 출신이 주류를 이룬다.

 

주요 거주지역은 자카르타, 스마랑, 수라바야, 메단(북부수마트라) 등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지만 플랜테이션 노동자나 광부로 대거 이주한 역사를 반영하듯 서부깔리만딴 주, 방까-블리뚱 주, 리아우 주 등 지방에도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다.

 

◇ 수하르토 권력 잡으며 집권 32년간 ‘중국계 동화 정책’

 

화인들의 정치 활동은 어떨까. 인도네시아 독립 이전부터 화인들의 정치활동은 매우 활발했다. 인도네시아 정치와 사회적인 측면에서 화인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화인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나 인도네시아 근현대사에 영향력을 발휘한 화인은 다수가 있다.

 

특히, 수카르노 집권시기인 의회민주주의와 교도민주주의 시기(1950~1965년)에 화인들은 이념적으로 다양한 정치조직과 정당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화인들은 수카르노 정권의 좌경화로 중국 공산당과 접촉도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았다. 의회민주주의 시기에는 각료로 임명되기도 하고 의원으로 참여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수카르노 집권 말기에 화인사회가 극적인 변화를 맞는다. 1965년 9월 30일 인도네시아공산당(PKI)이 자카르타에서 7명의 군부장성 집을 습격해 6명을 살해하며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수하르토 소장이 중심이 된 우파 군부는 이 쿠데타를 빠르게 진압했다. 수하르토는 수카르노 대통령을 연금하고 공산당을 토벌하는 등 정변을 일으켜 국가권력을 손에 쥔다. 이 과정에서 화인을 포함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

 

정권을 장악한 수하르토는 강압적인 방식의 ‘중국계 동화 정책’을 펼친다. 1967년 수하르토가 내놓은 ‘중국인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정책’에 따르면 중국어로 된 공식문서를 폐지하고 화인의 종교 행사는 집 안에서 하는 것으로 제한했다. 중국어로 가르치는 학교도 폐쇄했다.

 

또 중국 이름을 인도네시아식으로 개명하도록 했다. 중국어 신문은 물론 차이나타운의 거리에서 간판과 광고판에 이르기까지 한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치인은 물론 군인과 공무원으로 화인을 선발하지 않았고 심지어 인도네시아대학교(UI) 등 국립대학에 화인 학생수를 제한했다. 수하르토가 집권 32년 동안 좀처럼 다른 문화에 순응하지 않는 화인들을 동화시키는 데 성공을 했다고, 학계는 평가한다.

 

◇ 정경유착 ‘화인 재벌’ 속속 탄생...민주화운동시 화인 표적 폭력도

 

반공과 반급진주의 이슬람을 표방한 수하르토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도네시아는 친미 성향의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었다.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정권을 잡은 수하르토는 경제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세우고 화인의 자본과 경영능력을 통해 경제를 부흥시키면서 림셔룡(인도네시아 이름 수도노 살림) 살림그룹 회장과 같은 화인에게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화인 재벌이 속속 탄생하게 된다.

 

신질서시대에 화인들은 이념적인 정치활동은 중단됐지만 우회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관여했다. 화교들은 경제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인도네시아상공회의소(Kadin)와 경제인총연합회(Apindo) 등 경제인단체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싱크탱크인 국제문제전략연구소(CSIS)를 화인재벌들이 후원하고, 일간 꼼빠스와 주간 뗌뽀 등 유력 언론사들은 화인들이 소유주이거나 편집인으로 활동해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했다.

 

수하르토는 빈곤의 상태에서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런 경제실적 덕분에 ‘개발의 아버지’로 추앙받기도 한다. 하지만 정경유착과 부패로 화인들은 부를 크게 축적한 반면, 민생은 도탄에 빠진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직후 실업률이 치솟고 가뭄과 산불 등 자연재해까지 겹치자 인도네시아 민심은 극도로 흉흉했다.

 

이듬해 5월 대학생을 중심으로 대규모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면서 수하르토는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온다. 이 과정에서 폭동이 발생하고 화인을 표적으로 한 엄청난 폭력이 자행됐다.

 

◇ 중국 G2 부상하자, 인도네시아 화인들 중국과 다시 네트워크 강화

 

아픈 상처를 딛고 1999년 총선 직후 상원격인 국민협의회(MPR)에서 선출된 압두라만 와힛(일명 구스두르) 대통령은 자신이 중국계임을 인정했고, 2000년 2월 유교를 인도네시아 합법적인 종교로 정식 승인하고 공포하는 등 중국문화를 허용하는 다원주의를 표방한다.

 

와힛 정권은 중국계인 퀵끼안기를 경제조정장관으로 선임했다. 2004년 인도네시아 최초 직접선거로 선출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중국계 여성 마리 엘까 빵에스뚜를 무역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중국계를 다소 폄하하는 의미를 지닌 찌나(Cina)라는 표현을 띠옹꼭(Tiongkok, 중국)으로 공식 변경하는 등 중국계 유화정책을 펼쳤다.

 

중국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하자, 큰 부를 축적한 인도네시아 화인들은 중국과 다시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과거 화인들은 호키엔어 등 각자 출신 지역의 지방어를 썼으나 이젠 그들의 2세와 3세들은 국내외에서 영어는 물론 만다린(표준 중국어)을 공부해 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으로 성장하고 있다.

 

화인들은 1998년 5월 사태를 경험하면서 토착사회와 협력을 증진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런 활동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와중에 2017년 5월 중국계 기독교도 출신인 아혹 전 자카르타 주지사가 이슬람 신성모독죄로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사건은 아직도 헤쳐 나갈 사안이 산적해 있음을 시사한다.

 

토착민과 화인 간 반목과 질시가 아니라 포용과 관용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다원주의를 견지해 나가는 게 인도네시아를 강대국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며, 인도네시아 정부와 국민들에게 주어진 숙제다.

 

글쓴이=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참고문헌> 인도네시아사, 양승윤(2012) / 인도네시아 화교와 화교자본, 신윤환(1993)

 

신성철 대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30년간 거주 중이다. 1999년 현지 인터넷매체 ‘데일리인도네시아’를 창간해 20년째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을 밟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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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명기 기자 pnet21@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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