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타(Theta)2 엔진의 결함을 알고도 숨겼던 현대자동차그룹의 전·현직 임원들이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형사 재판을 받습니다. 현대차 김 모부장의 내부고발로 시작된 이 사건은 3년이 흐른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인더뉴스는 국내 자동차관리법의 허점을 진단하고, 현대·기아차의 늑장리콜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이번 시리즈 기사가 국내 소비자들의 권익 향상과 제도 개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인더뉴스 박경보 기자ㅣ쏘나타·그랜저 등 국내 세타2 엔진 고객에게 ‘평생 보증’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한 현대·기아자동차가 전문가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엔진 진동감지 시스템(KSDS)과 보증연장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현대·기아차는 11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국내 세타2 GDi 차량 고객들의 만족도 제고를 위해 엔진 평생 보증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대상 차량은 세타2 엔진이 적용된 2010~2019년형 쏘나타(YF·LF), 그랜저(HG·IG), 싼타페(DM·TM), 벨로스터N(JSN), K5(TF·JF), K7(VG·YG), 쏘렌토(UM), 스포티지(SL) 등 총 52만대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도 세타2 엔진 집단 소송 고객들과 화해안에 잠정 합의하고 미국 법원에 화해 합의 예비 승인을 신청한 사실도 전했다. 구체적인 합의금 액수가 알려지진 않았으나, 최소 수천억 원에 이를 것이란 예상이다.
현대차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업계에서는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제기된 결함 문제를 질질 끌다가 형사 재판을 앞두고 마지 못해 대응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조치가 소비자가 아닌 현대·기아차에만 유리한 결정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먼저,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검찰 조사로 힘들어지니 마지 못해 평생 워런티를 발표했는데 이걸 누가 좋게 보겠나”라며 “끝까지 설계 결함이 아니라고 발뺌하다가 이제야 보증을 더 늘린 것은 진정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대·기아차는 리터당 1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합성 엔진오일을 순정으로 내놨는데, 이는 문제가 있는 세타2 엔진의 마찰계수를 낮추기 위한 것”이라며 “결함으로 엔진오일의 성능을 올렸으면 기존 가격을 유지해야 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조사기관인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근무했던 박진혁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결함의 시정은 문제의 근본원인을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세타2 엔진의 사례처럼 점검 후 수리하는 것은 시정방법이 될 수 없다”며 “엔진이 당장 깨지지 않았더라도 예방적 차원에서 엔진을 전량 교체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대차가 도입한 KSDS는 엔진의 압력을 낮춰 파손을 늦추거나 막을 뿐, 본래 인증받았던 연비와 출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며 “현대차는 근본적인 해결책인 엔진교체를 피하기 위해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엔진교체를 압박해야 할 국토부와 조사기관은 이를 방관하고 있다”고 일침했다.
또 정비업계의 박병일 명장은 “평생 보증한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사례로 비춰볼 때 엔진오일을 서비스네트워크에서 교환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보증수리를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소비자들은 무상보증에 숨겨진 조건들이 많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항이 적은 세타2 엔진은 연비가 좋은 대신 내구성이 떨어지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고, 엔진이 깨지는 현상은 10만km 이상 주행했을 때 나타난다”며 “현대차가 결함원인으로 주장하는 이물질 유입은 엔진 전량 교체 등의 대규모 리콜을 피하기 위한 핑계”라고 덧붙였다.
또 이정주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 회장은 “평생 보증연장은 소비자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껴 어쩔 수 없이 결정한 것” 이라며 “소비자들을 달래기 위한 회유책일 뿐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전량 엔진교체 등의 제대로 된 리콜이 이어져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의 세타2 리콜에 대한 적정성 조사는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인데, 이는 11월 결정될 한국산 자동차 관세 부과 제외 여부 등 정치적인 문제가 엮여있다”며 “현대차가 미국 소비자들과 합의한 것도 이를 앞두고 미국 정부에 어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차량 교체 주기가 짧아진 상황에서 평생 보증으로 늘린 건 소비자들에게 큰 의미가 없다고 보여진다”며 “소비자 입장에선 최선이라고 볼 수 없지만, 비용 절감 측면에서 현대차에겐 최고의 선택”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