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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의 음식추억] 옥춘당과 팔보당, 언젠가 찾는 사람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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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September 17, 2024, 09:09:27

 

정은정 농촌사회학자ㅣ지난봄 이사를 했다. 서울 동북부 끝자락인 이 동네는 1983년 충청도에서 올라와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생때까지 살던 곳이다. 돌아가신 엄마와 다니던 재래시장이 그대로 남아 있어 고향 같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동네 시장 구경에 나섰다. 혹독했던 여름, 전통시장 상인들이 너나없이 고난이었다. 유사 이래 경기가 좋았던 적은 없었지만 올해는 기후위기 문제가 일상을 깊고 파고들어 특히 농산물과 과일에 악영향을 끼쳤다. 아직 푸르뎅뎅한 생대추가 억지로 제수 용품 구색은 갖추었지만 ‘밤 깎아드립니다’라는 팻말을 보니 저장 알밤은 넉넉한 듯하여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이 시장의 독특한 풍속이라면 건어물과 과일, 떡 가게에서 명절 즈음 차례상에 올릴 과자들을 잔뜩 진열해 두는 것이다. 북어를 기본으로 약과, 산자, 옥춘당, 팔보당, 종합젤리, 스낫드, 킹구하스 같은 어원도 모호한 과자들이 여전히 팔린다. 제수용 과자들은 색감이 화려해서 눈에 바로 뜨이기 마련이다.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이들도 줄어들고 제수용 과자를 올려두는 일은 더욱 드물 터이지만 찾는 이들이 있으니 상인들이 마련했을 터이다.  

 

고향 같은 이 동네는 산업화의 물결을 따라 농촌을 떠나 떠밀려온 이들을 품어준 곳이다. 서울에서 집값이 가장 낮은 축이어서 다들 한 번 살러 들어왔다 떠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동네로 꼽힌다. 추측건대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풍진 세상 건너 나온 노인들이 해오던 대로 차례상에 과자를 올리는 풍속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인듯 하다. 여기에 더해 동네 골목마다 희고 빨간 서낭기를 걸어두고 점을 치고 복을 가늠하는 점복사들이 많아 연말연초와 명절에 제물로도 여전히 용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동네 떡집 역시 여전히 제수용 백설기를 많이 쪄낸다는 귀띔이다.

 

돌이켜보니 명절 차례에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의 세계가 없었다. 집성촌이었던 친가 외가 모두 나이보단 항렬이다. 증조부모에서 뻗어 나온 일가친척들이 동네에서 앞뒷집에 살았으므로 차례도 순서대로 지냈다. 아침 댓바람부터 시작한 차례로 대여섯 집을 돌다 보면 마지막 집의 명절 차례는 점심 즈음에 걸리기도 한다. 아이들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설날에 세배나 추석에 인사를 하면 어린 우리들 손에는 둥근 동전이 아닌 둥근 다식을 쥐어졌다. 심지어 깨다식도 아니고 콩가루를 뭉친 콩다식은 콩송편만큼이나 인기가 없었다.

 

큰집에 가면 할머니는 벽장에서 '옥춘당'이나 '팔보당'을 내주곤 하셨다. 고향 사투리로 '옥출'이라 옥춘당은 들러붙어 있어 가끔은 망치로 깨서 주기도 하였다. 그래도 손주들을 귀애하는 할머니의 방식에 따랐고 내키지는 않았지만 입에서 우물우물 빨곤 하였다. 이미 그 옥춘당에는 벽장 특유의 곰팡이 냄새까지 덧대어져 단물이라면 환장했을 어린 나이였어도 참 싫었다.

 

옥춘당보다 더 난감한 사탕이 팔보당이다. 설탕을 굳혀 오방색 색소를 넣은 팔보당을 회갑이나 칠순 잔치 때 장식용으로 높게 쌓는 고임상 용도로 쓰인다. 옥춘당은 그나마 박하 맛이라도 나지만 팔보당은 맛이랄 것도 없다. 당이 떨어져 급하게 먹는 포도당 사탕 맛이 딱 팔보당 맛이다. 옥춘당과 팔보당에는 진한 색용 색소가 들어가 있어 이 사탕들을 입에 빨고 나면 입 주위가 불그죽죽해져서 전설의 고향에서 보던 딱 저승사자 분장 같았다. 마침 제사상에 올라가는 사탕이라 하여 '저승사탕'이라고도 불렀으니 용도가 묘하게 맞아떨어지긴 하였다.

 

기실 제사나 차례를 갖추어 지내는 것도 여력이 있는 양반 중에서도 고관대작들이나 가능한 일이었을 뿐, 조율이시니 주과포혜니 주절댈 형편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과자는 귀물 중에서도 귀물이었다. 생존을 건 음식도 아니고 눈과 혀가 즐겁자고 먹는 과자는 부와 사치의 상징이었다. 하여 조선시대에 태어난 할머니에게 옥춘당과 팔보당은 단연 귀한 것들이었고 벽장에서 서생원(쥐)가 슬쩍 건드렸어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옥춘당과 팔보당 말고도 수박모양과 무지개모양을 낸 '쩨리'나 꽃분홍색 웨하스과자 모양인 '킹구하스', 쿠키 모양이지만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스낫드'가 있다. 상표명 자체가 그 과자 자체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요즘은 아예 옛날과자로 통칭되는 이런 제수용 과자들은 생산하는 공장들도 몇 남지 않아 본의 아니게 독과점 업체가 되었다. 외에도 산자와 강정, 약과, 다식 등 죽은 이들을 위한 밥상에는 이런 화려한 과자들을 올려놓았다. 제사상만이 아닌 잔칫상에도 맨 앞줄에는 색이 화려한 과자와 과일이 차지했다. 지금 말로 바꾸자면 사진발 잘 받으라고 맨 앞줄을 차지했나 싶을 정도로 인공적인 색감으로 눈길을 훔치는 역할을 하는 것들이 이 당속(糖屬)들의 주요 임무였다.

 

 

우리나라의 과자는 크게 한과(韓菓)와 양과(洋菓)로 나눈다. 제사상에 흔히 올라가는 강정이나 산자, 약과, 다식이 한과다. 그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제사와 명절이 없다면 한과의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최근 약과가 큰 유행을 타면서 한과에 대한 관심도 다소 높아지는 듯 싶다. 옛날과자로 통칭하며 경험삼아 제수용 과자를 먹어보고 후기를 남기는 콘텐츠들도 올라온다. 젤리나 옥춘당, 스낫드와 킹구하스는 엄밀히 따지자면 양과자지만 용처는 한과에 가깝다.

 

이걸 재미 삼아 맛 삼아 먹는 이들이 신기할 뿐이다. 특히 약과를 주요메뉴로 내는 디저트카페가 생기기도 하고 고급과자류로 취급되어 꽤 값이 나가는 약과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하지만 약과 외에는 점점 제상에 올리는 한과는 물론 한과처럼 인식된 양과자들은 그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십대와 이십대 초반인 우리 집 아이들에게 ‘산자(馓子, 糤子)’를 물어보니 처음 들어보았다 할 정도로 낯선 과자가 되었다.

 

우리집 제상에도 한참 전부터 제수용 과자는 빠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 상 물리면서 바로 음식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것도 죄스러워서 하나둘씩 빼다 보니 그나마 남은 것은 약과와 산자다. 과자 귀퉁이 조금 떼서 먹어보고는 냉동실에 굴러다니다 버려지기 일쑤지만 그래도 과자 하나 올리지 않는 제상은 어딘지 쓸쓸해서다. 

 

단 번도 맛있지 않았던 옥춘당과 팔보당마저 아련한 것을 보니 명절이 다가왔고 떠난 이들이 그리운 모양이다. 대목을 앞두고 분주한 그 시장 복판, 어린 마음에 관심도 없던 제수용 과자들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으니 말이다. 추억은 참 질기다.

 

■정은정 필자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등을 썼다. 농촌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와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그림책 <그렇게 치킨이 된다>와 공저로 <질적연구자 좌충우돌기>, <팬데믹시대, 한국의 길>이 있고 <한국농업기술사전>에 '양돈'과 '양계'편의 편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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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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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글로벌 생산량 확대에 8300억원 투자…매출 5조 가속화

오리온, 글로벌 생산량 확대에 8300억원 투자…매출 5조 가속화

2025.04.15 12:34:53

인더뉴스 김용운 기자ㅣ오리온[271560]이 총 8300억원을 투자해 매출 5조원, 영업이익 1조원 달성을 위한 글로벌 중장기 성장기반 구축에 나선다고 15일 밝혔습니다. 오리온은 15일 이사회를 열고 충청북도 진천군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내 생산∙포장∙물류 통합센터 구축에 4600억원을 투자하는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최근 5년 내 식품기업의 국내 투자로는 최대 규모입니다. 진천 통합센터는 축구장 26개 크기인 18만8000㎡(약 5만7000평) 부지에 연면적 14만9000㎡(약 4만5000평) 규모로 건설되며 생산, 포장, 물류까지 연결된 원스톱 생산기지입니다.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올해 중순에 착공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 물량에 대한 제품 공급을 담당할 예정입니다. 진천 생산공장이 완공되면 국내 생산능력은 최대 2조3000억원 수준까지 확대됩니다. 진천 통합센터 조성에는 중국과 베트남 법인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을 사용할 방침입니다. 오리온은 2023년부터 해외 법인의 국내 배당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2900여억원을 수령할 예정이며, 3년간 누적 배당금액은 약 6400억원입니다. 오리온은 해외 배당금을 식품사업 투자 및 주주환원 확대를 위한 배당 재원으로 사용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오리온은 러시아와 베트남 등 고성장하고 있는 해외 법인에 대한 투자도 늘릴 계획입니다. 러시아 법인은 현지 판매물량이 최근 6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공장가동률이 120%를 넘어서는 상황에서도 초코파이 공급량이 부족함에 따라 트베리 공장 내 새로운 공장동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 트베리 신공장을 가동한 이래 3년 만입니다. 총 투자 금액은 2400억원 규모이며 파이, 비스킷, 스낵, 젤리 등 16개 생산라인을 증설합니다. 투자가 마무리되면 연간 총 생산량은 현재의 2배인 7500억원 수준까지 확대되어 러시아 법인의 성장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성장잠재력이 큰 시장인 만큼 총 1300억원을 투자해 베트남 1등 식품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한다는 계획입니다. 먼저 올 하반기에는 하노이 옌퐁공장 내 신공장동을 완공하고, 쌀스낵 라인 증설로 공격적인 시장 확대에 나섭니다. 기존 제품의 추가 생산라인도 순차적으로 확대해 향후 9000억원 수준까지 생산능력을 키울 계획입니다. 물류센터와 포장공장이 들어서는 하노이 3공장은 올해 착공해 2026년 완공이 목표입니다. 오리온 관계자는 "1993년 첫 해외 진출 이래 지난 30년간 '성장-투자-성장'의 선순환 체계를 완성하며 해외 매출 비중이 65%를 넘어서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국내를 비롯해 해외 전 법인이 매년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어 생산능력 확대를 통해 중장기 성장기반을 더욱 공고히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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