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박경보 기자ㅣ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얼마 전 본가에서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니 3~4살쯤 된 것 같은데, 집 벽엔 온통 자동차 사진이 붙어있었죠. 지금은 볼 수 없는 엑셀, 프린스, 에스페로, 엘란트라, 스쿠프 등 추억의 자동차들이 제 사진첩에 가득합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머니 말씀으론 아주 어릴 때부터 꽤나 자동차를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함께 사진을 보던 어머니는 고층 빌딩에서 차 지붕만 보고 이름을 맞혔던 게 신기했다며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차덕후’였던 셈이죠.
사진을 찍을 때 무조건 자동차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어린아이는 어느덧 자동차업계를 출입하는 기자가 됐습니다. 사실 중학교 입학 이후부턴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시들했었는데요.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합니다.
자동차업계 특성상 시승행사가 참 많습니다. 고배기량의 자연흡기 엔진이 주는 묵직한 배기음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설렙니다. 차로유지 보조 기능과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적용된 자동차에 몸을 맡기는 것도 또 다른 재미죠. 심지어 오프로드 코스를 시승한 뒤엔 기존 보유했던 세단을 픽업트럭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자동차가 주는 재미를 실컷 느끼고 있는 지금, 문득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떠올려 봤습니다. 수많은 후방산업과 수십만 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는 자동차 산업은 전통적으로 ‘육성산업’에 속하는데요. 하지만 최근엔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 그리고 수요 감소까지 맞물리면서 ‘생존’을 걱정하게 됐습니다.
자동차업계가 잘 나가던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자동차 공장이 있는 지역은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자동차 공장 어느 곳이든 ‘구조조정’이라는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양적 성장보다는 미래차에 대한 기술 개발이 휠씬 중요해진 탓입니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본격화된다면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운전을 좋아하는 마니아층에 그칠 겁니다. 언제 어디서든 무인 차량을 호출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니, 굳이 큰 돈 들여 차량을 구입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최근에는 ‘공유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자동차 수요는 벌써부터 뚝뚝 떨어지는 중입니다.
잇따르는 자동차업계의 노사갈등도 사실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미래차 시장에 대응하려면 생산엔 유연성을 주고 연구개발 인력을 늘려야 되는데, 생산직 입장에선 밥줄을 끊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업계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현대차는 ‘수소전기차’를 미래 먹거리로 삼고 그룹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데요. 나머지 외국계 회사들은 아직도 본사의 ‘물량 배정’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어느 업계나 비슷하겠지만, 자동차 역시 종사자들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 탓에 미래 준비가 더딘 것 같습니다. 수요 감소가 두드러지는 데도 생산공장을 더 지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광주형 일자리’가 대표적이죠. 각자 눈앞의 밥그릇만 생각하고 사공도 많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가는 셈입니다.
최근 국내 교수들은 ‘상대방을 죽이면 결국 함께 죽는다’는 뜻을 지닌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습니다. 분열되는 한국 사회를 떠올리며 이 사자성어를 골랐다고 하는데요. 우리 자동차 산업도 이제 미래를 위해 한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정부와 업계, 학계와 언론, 그리고 노동계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미래차 시대를 착실히 준비했으면 합니다. 산업부 기자인 저 역시 우리 자동차 산업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방향성을 찾는 데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