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전건욱 기자ㅣ생명보험회사들이 만기까지 쥐고 갈 의도로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중간에 팔 수 있게 용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지급여력(RBC)비율을 높이기 위해서인데, 매각을 통해 차익을 얻는 것 보다 채권을 재분류하는 것 자체만으로 RBC비율이 올라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분간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NH농협생명은 지난 24일 이사회를 열고 만기보유자산으로 분류해 온 31조원 가량의 채권을 매도가능자산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변경 작업이 끝나게 되면 매도가능자산 규모가 약 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앞서 지난 5월에는 DGB생명이 4조원 어치의 채권을 만기보유자산에서 매도가능자산으로 바꿨습니다. 한화생명도 지난해 34조원 규모의 채권을 매도가능자산으로 재분류했습니다.
생보사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급여력(RBC)비율 높이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보험사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채권 등 유가증권에 투자하는데 이를 만기까지 가져갈 자산과 운용 도중 되팔 수 있는 자산으로 구분합니다.
만기보유자산으로 구분하면 취득가격으로 가치를 평가해 금리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반면 매도가능자산은 시장가치로 가격을 매겨 금리 방향에 따라 평가손익이 발생합니다.
노건엽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수준이 낮아지면 채권값 상승으로 평가익이 발생해 RBC비율이 오르게 된다”며 “저금리 시기에 보험사들이 매도가능자산을 선호하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NH농협생명 관계자도 “이번 채권 용도 변경 결정은 자본을 늘려 RBC비율을 높이려는 목적”이라고 밝혔습니다.
금리가 한동안 낮은 상태로 유지될 것이란 기대가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김경무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은 “한 번 채권을 재분류하면 3년 정도는 변경할 수 없어 단기적으로 금리 상승 모멘텀이 약할 거라는 심리가 반영됐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채권 재분류를 양질의 자본 확충 수단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김 전문위원은 “매도가능증권은 중간에 팔아 이익을 남길 수도 있지만, 이를 다시 투자할 때가 문제”라며 “현재와 같이 금리가 매우 낮은 상황에선 재투자 시 이차 역마진이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한편 올 6월말 기준 생명보험업계의 매도가능자산 규모는 전년 대비 16.7% 증가한 411조 9089억원에 이릅니다. 반면 만기보유자산은 136조 7456억원으로 21% 감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