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 열기 인더뉴스 부·울·경

Culture 문화

[정은정의 음식추억] 아이들은 송편을 먹지 않는다

URL복사

Monday, September 20, 2021, 20:09:39

추석이면 떠오르는 송편 빚던 기억
점점 멀어지는 차례상 음식들
돌아가신 엄마, 명절 상차리며 어떤 생각 했을까

 

정은정 농촌사회학자ㅣ명절이 부담스러워지면서 어른이 된다. 의무는 많아지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명절이 좋았다. 이름 붙은 날인만큼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동전이 아닌 지폐로 돈을 찔러 주어 기다릴만한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달리 호주머니가 열리는 일이 없는 엄마도 명절 때는 그래도 양말이라도 한 켤레 새로 사주거나 가끔 새 옷도 얻어 입을 수 있었다. 나처럼 형제자매 많은 집 막내들은 옷을 물려 입기만 했기 때문이다.

 

추석이면 떠오르는 송편 빚던 기억

 

우리 집은 추석 전에 상당히 부산스러웠다.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은 유과였다. 삭힌 찹쌀 반죽에 ‘꽈리’를 일게 해야 하는데 그때 아버지의 힘이 필요했다. 차진 찹쌀 반죽을 다듬이 방망이로 힘차게 돌리면 꽈리가 퐁퐁 터졌다. 그렇게 해야만 공기층을 만들어져 튀겼을 때 바삭해진다. 꽈리를 튼 반죽덩어리를 잘라 그늘에서 며칠 단단하게 말린 뒤 기름에 튀겨내고, 조청을 발라 깨나 쌀튀밥을 붙이는 손 많이 가는 과자를 만들면 추석 입구였다.

 

송편도 많이 만들었다. 송편 소로는 깨와 밤, 동부콩과 검정콩이었다. 깨와 흑설탕을 함께 섞은 깨송편은 언제나 인기가 높았고 늘 모자랐다. 떡을 쪄놓으면 말간 떡살 속에 까만 깨가 보이기 때문에 골라 먹고 있으면 ‘너만 입이냐’며 야단도 맞았다. 생밤을 쪼개 송편 소로 넣는 밤송편은 어린 우리가 만들었다. 가루로 만든 소는 떡을 빚다가 터져버리기 일쑤여서다. 출신지가 제각각인 숙모들이 빚는 송편 모양도 제각각인 데다 어린 우리가 대충 뭉쳐만 놓은 송편까지 합쳐져 오합지졸 모양새였다.

 

추석 음식 중에 유과를 먼저 만들고 추석 전날 송편을 빚은 다음에는 오후 늦게 전을 부치기 시작한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크지 않아 미리 부쳐놓으면 쉬어버리기 때문에 가급적 늦게 부쳤다. 해산물이 부족한 충북 내륙지역에서 귀한 전거리는 ‘간납’이다. 동네 발음으로는 ‘갈랍’이라고도 했는데 쇠 간이나 허파도 지졌고, ‘육갈랍’이라고 부르는 동그랑땡이 최고 인기였다. 이름에 ‘육’이 붙었으니 고기가 주인공이어야 하지만 정육점에서 갈아온 고기는 두부와 채소를 엉기도록 하는 접착제 역할 정도였다. 그래도 좋았다.

 

어린애 입맛에 쇠간이나 염통전은 엽기음식이었고, 동그랑땡은 잔손이 많이 가서 명절이나 제사 때 말고는 먹을 기회가 없어서다. 그렇게 부쳐놓은 육간납을 집어먹으면 금세 사라져 버리니 엄마는 차례 지내기 전에 먼저 먹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세웠다.

 

명분상 조상님 먼저 드셔야 한다는 논리였지만, 그렇다면 맛없는 콩송편만큼은 맘껏 먹어도 된다 했을까. 봉제사와 명절, 여기에 한식과 시제 묘제사까지 챙기는 집에서 나고 자라 내가 겪은 명절 풍경은 흡사 드라마 ‘전원일기’ 풍이었고 철모를 때는 은근한 자부심이기도 했다. 어쩐지 뼈대 있는 가문 같은 느낌이었달까?

 

전숙희의 ‘설’은 교과서에서도 실렸던 수필이다. 이 수필에 나오는 명절 준비 풍경이 우리 집 비슷해 흐뭇하게 읽기도 했다.

 

“식료품상에는 다 만든 강정이 쌓여있고, 다 갈아 놓은 녹두도 있다. 아니, 빈대떡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흰 떡도 뽑을 필요가 없이, 쌀만 일어 가지고 가면 금방 떡가래를 찾아올 수도 있다. 세상이 모두 기계화되었으니, 필요한 것은 돈과 시간뿐이요, 솜씨나 노력이나 정성이나 사랑이 아니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편리'속에 짙은 향수가 겹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리는 정작 귀한 것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당시 30대의 존경하던 국어 선생님이 이 수필을 비판했다. 먹는 사람에게나 정성이지 만드는 사람 입장이 없는 글이라는 것이다. 이화여전까지 나온 1919년생 엘리트 여성의 시대정신이 이렇게 고루했다는 점, 시대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가두는 글을 교과서에 실은 이들은 직접 명절 음식을 만들지 않는 소위 ‘아재’들이었을 것이라는 신랄한 비판이었다.

 

갈수록 멀어지는 명절 차례상

 

그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명절이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돈도 벌어야 하고 자식은 넷이나 되는 우리 엄마가 명절이 좋았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까탈스러운 시어머니와 조상봉양을 귀하게 여기는 아버지 때문에 의무수행을 했을 뿐이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엄마는 더 이상 유과와 같은 손 많이 가는 음식들은 만들지 않았다. 구색 갖추느라 사 온 강정에 아무도 손도 대지 않았다. 자식들도 머리 굵어져 명절 음식에 열광하지 않았다.

 

점점 더 차례상에서 빼는 음식들이 많아졌다.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삶은 계란이다. 내륙의 차례상에는 삶은 계란을 창칼로 모양을 내서 올려놓았는데 명절에 누가 삶은 계란을 먹겠는가. 두부를 얇게 지진 계란지단에 돌돌 마는 두부알쌈도 더 이상 올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김을 없앴다. 물산 귀하고 유통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김은 매우 귀한 식료여서 올려놓았겠지만 가장 싸고 흔한 반찬을 굳이 올릴 이유가 없다.

 

아무도 먹지 않으니 약과와 옥춘사탕도 빼고 대신 선물로 들어온 제과점 화과자가 올라가기도 했다. 어차피 산 사람 먹자고 만드는 것이니 양념도 먹는 사람 입이 즐거워야 한다는 기조로 바뀌었다. ‘귀신처럼’ 알고 올 테니 고기 산적에 마늘도 넣었다. 빨간 사과는 올리면서 고춧가루는 왜 안 쓰냐며 차례상에 올라가는 물김치도 빨갛게 만들었다.

 

차례상 차리던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봉제사와 명절 차례를 30년 넘게 감당했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도 명절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술냄새도 맡지 못하던 양반이 돌아가시니 비로소 술잔을 받고 쉴 수 있었다. 커피도 못 드시고, 그나마 드실 줄 알던 오렌지 맛 청량음료를 술 대신 올리기도 한다. 게다가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이 뭔지 나는 잘 모른다. 물어본 적이 없어서다.

 

엄마의 밥상은 생존을 위한 밥상이었고 명절 음식에 엄마의 기호가 들어갔을 리도 없다. 냉장고에 굴러다니다 말라비틀어진 전을 넣고 끓인 찌개가 명절 한참 지나 밥상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 눅진함에 질겁을 하면서 숟가락 한 번 담그지 않았다. 그 전찌개를 끝까지 먹는 사람도 엄마였다. 각색전을 예쁘게 배열해 끓여 먹는 궁중요리 ‘신선로’와는 차원이 다른 잡탕전찌개가 명절 음식의 종착지였고, 아름다운 추억도 아니다.

 

이제 나도 명절 음식을 따로 만들지 않는다. 차례나 제사도 종교 행사로 대신한다. 아이들은 깨송편이든 콩송편이든 먹지 않는다. 팔순의 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쥐여주는 곶감도 아이들은 접시에 다시 올려놓는다.

 

이제 명절에는 외식을 하거나 생선회를 떠 와서 먹곤 한다. 그래도 아쉬워서 송편 한 개를 집어 들었더니, 엇! 깨송편을 밀치고 콩송편을 집어 들고 있다. 콩송편을 집어 드는 순간 내가 그 시절의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들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어른이 되었으니 명절은 조금 부담스럽고 곁에 없는 사람들만 더 생각나는 추석이다.

 

■ 정은정 필자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을 썼다. 농업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 중이며 국방일보에서 20대 청년에게 음식과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KBS1라디오와 CBS라디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나가 농촌이야기를 전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그림책 <그렇게 치킨이 된다>와 공저로 <질적연구자 좌충우돌기>, <팬데믹시대, 한국의 길>이 있고 <한국농업기술사전>에 ‘양돈’과 ‘양계’편의 편자로 참여했다.

English(中文·日本語) news is the result of applying Google Translate. <iN THE NEWS> is not responsible for the content of English(中文·日本語) news.

배너

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배너

미 기준금리 0.25p 추가인하…“내년엔 2차례 인하 예상”

미 기준금리 0.25%p 추가인하…“내년엔 2차례 인하 예상”

2024.12.19 09:51:24

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8일(현지시간)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종전보다 0.25%p 낮은 4.25~4.50%로 조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9월 빅컷(기준금리 0.50%p 인하) 단행을 통한 통화정책 기조전환 이른바 피벗(pivot)에 나선 연준은 11월에도 베이비스텝(0.25%p 인하)을 밟은 바 있습니다. 이로써 미 기준금리는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2022년 3월부터 공격적으로 올린 이후 최고치(5.50%·2023년 7월~2024년 9월)와 비교하면 1%p 낮아졌습니다. 한국(3.00%)과 기준금리 차이는 상단 기준 1.75%p에서 1.50%p로 줄었습니다. 연준은 성명에서 "올해초부터 노동시장 상황은 전반적으로 완화됐고 실업률은 상승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낮다"며 "인플레이션은 위원회 목표치 2%를 향한 진전을 이뤘으나 여전히 다소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와 함께 연준은 경제전망예측(SEP)을 통해 내년말 예상 기준금리를 기존 9월 전망치(3.4%)보다 0.5%p 높은 3.9%로 제시했습니다. 내년 금리인하 횟수를 스몰컷(0.25%p 인하) 기준 4차례에서 2차례로 줄인 것입니다. 연준은 이날 성명에서 "금리 목표범위에 대한 추가적인 조정의 폭과 시기(the extent and timing)를 고려할 때 위원회는 지표와 전망, 위험균형을 신중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오늘 결정문에 금리조정 폭과 시기라는 표현을 통해 금리 추가조정 속도를 늦추는 게 적절한 시점에 도달했거나 부근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며 "정책금리의 추가적인 조정을 고려할 때 우리는 더 신중을 기할(cautious) 수 있다. 이제부터는 새 국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연준은 이날 수정전망에서 2025년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 전망치를 종전 2.1%에서 2.5%로 상향조정했습니다.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은 2.1%로 예상했습니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