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찬 심리상담사ㅣJTBC 드라마 <닥터슬럼프>(연출: 오현종/극본: 백선우/출연: 박형식, 박신혜, 윤박, 공성하, 오동민, 장혜진, 윤상현, 현봉식 등)는 대학입시 공부도 1등만 하고 잘 나가던 남녀 의사들이 한순간에 인생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함께 견디는 이야기다. 여정우(박형식 분)와 남하늘은 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을 놓고 경쟁하던 라이벌이었다. 그러다 각자 다른 삶을 열심히 살다가 하루아침에 망한 인생 가운데 다시 만나는 로맨틱 코미디다.
대학병원 의사로 열심히 일하던 남하늘(박신혜 분)은 가슴 답답함 등의 증상으로 정신과 의사(이승준 분)를 찾아간다. 그리고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하늘은 "실컷 일하고 얻은 게 우울증이라니"라며 자신의 삶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한다. 하늘은 오늘의 행복도 내일로 미루면서 열심히 공부와 일만 하면서 의대 교수가 되려고 살아왔다. 경쟁에서 지기 싫어하고 1등만 했던 하늘은 "내가 우울하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너무 자존심 상한다고"라고 말한다. 하늘이 심리적 질병마저 경쟁에서 뒤처진 것으로 느끼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장면이다.
정신과 의사(이승준 분)는 하늘의 '번아웃' 상태를 "어떤 일에 과도하게 몰두하다가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돼서 무기력증이나 우울감 등의 증상이 생기는 걸 뜻하는데요"라고 설명한다. 우울증의 증상과 번아웃의 증상은 비슷하다. 그래서 우울증으로 다루어 왔다. 그러다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우울증을 '번아웃 증후군'으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번아웃은 일을 잘하던 사람들에게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정서적·심리적 소진 상태이다.
남하늘(박신혜 분)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면 당황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의욕 없는 삶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하늘이 "내 마음이 병들었대"라고 말한 것처럼 우울증은 질병이다. 마음에 병이 든 것이다. 감기 걸리듯이 우울증에 걸렸을 뿐이다. 심리적 질병에 걸렸으니 필요한 경우에는 약을 먹고 심리치료를 하면서 회복하면 된다.
MZ세대들이 열심히 잘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남하늘(박신혜 분)처럼 우울증이 있을 수 있다. 청년들이 취업 등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이른바 '갓생살기'를 하기도 한다.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책임감 있게 열심히 사는 것을 응원하고 삶의 목표를 이루기를 바란다. 그런데 지나치게 열심히만 살다 보면 자신에게 번아웃이 오고 우울증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있다. 특히, 일에 몰두한다는 것은 정서를 차단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울증을 느낄 겨를이 없을 수가 있는 것이다. 마치, 남하늘이 우울증 진단을 받고 부정하고 억울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하늘(박신혜 분)이 '무망감 우울증 척도' 문항을 체크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늘이 '항상 그렇다'에 체크한 문항으로 자신의 우울증 상태를 간단히 살펴볼 수 있다. 하늘은 ▲나는 외롭고 허탈하다 ▲나는 눈물을 쏟거나 울고 싶어 진다 ▲나는 비참한 느낌이 든다 ▲나에게는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 것 같다 등의 문항들에 '항상 그렇다'라고 체크하면서 한숨을 쉬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러한 문항들을 통해서 이제야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울증의 신체적·생리적 증상들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보통 수면의 질이 나빠지고, 섭식 문제가 나타나고, 항상 무기력감이 있고, 남하늘이 경험하는 가슴 답답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자살 사고와 자살 행동이 나타나기 때문에 우울증을 절대 가벼이 다루면 안 된다.
남하늘(박신혜 분)이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오다가 약을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강하게 부정하는 태도이다. 상담장면에서도 약물치료가 필요해 보여서 정신과 진료를 권유하면 언짢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MZ세대의 부모세대에게 있는 심리적 질병과 정신과 약물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MZ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하늘의 엄마(장혜진 분)도 하늘이 우울증이라고 처음 이야기했을 때 강하게 부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 후에 "엄마는 훌륭한 딸보다 안 아픈 딸이 더 좋다. 니가 무엇이든 엄마는 널 사랑하고 아낀다."라고 하늘의 우울증을 수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MZ세대가 완벽하게 열심히 살더라도 번아웃 상태가 되어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우리 마음이 강철처럼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우리 마음처럼 연약하고 상처 잘 받고 잘 부서지는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하늘과 정우가 술에 취해 서로 안고 울면서 위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정우는 이야기한다. "그날 그녀에게 빌려 온 온기는 너무 따뜻해서 그 순간만큼은 온갖 아픔을 다 잊을 수 있었다."라고 말이다. 정우가 말한 대로 한순간만큼이라도 온갖 아픔을 다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살아낼 수 있다. 인생의 슬럼프(slump)를 극복할 수 있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