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정재혁 기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내유외강’ 캐릭터로 인기가 높다. 조직 내에서는 모든 직원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등 온화한 이미지인데 반해, 외부적으로는 ‘소비자’와 ‘혁신’을 강조하며 소신 발언에 주저함이 없어서다.
이러한 윤 원장의 주요 타깃은 바로 ‘보험’이었다. 소비자 민원이 끊이지 않는 보험업계는 윤 원장이 중시하는 ‘소비자 중심의 혁신’을 펼치기에 딱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생명보험사 ‘즉시연금 미지급급’ 사태와 관련, 업계의 반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피해자들에 대한 ‘일괄구제’를 밀어붙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최근에는 외부전문가 8명으로 구성된 ‘보험산업 감독혁신 T/F’를 통해 보험산업 전반을 뜯어 고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선보였다.
업계와 척을 지는 걸 불사하면서까지 소비자들의 편에 섰는데,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암 입원보험금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관련 T/F를 구성하고 약관 개선안을 내놨지만, 일부 소비자단체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불리하고 분쟁예방 효과도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암보험 약관개선 T/F’의 구성을 문제로 삼았다. T/F에 참여한 11개 단체 중 10개가 보험사 편향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T/F에는 6개 보험사와 더불어 생명‧손해보험협회,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원 등 보험사 유관 기관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T/F 구성원의 문제는 암보험 사안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보험산업 감독혁신 T/F’의 외부전문가 8명 중 4명이 전현직 보험사 사외이사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보험사로부터 수 천만원의 보수를 받는(받았던)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만 바라보기는 사실상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윤석헌표 보험혁신’이 방향성을 잃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의 행보가 보험업계와 소비자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 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일견 타당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금감원의 ‘갈지(之)자 행보’를 두고 윤 원장의 혁신 의지를 의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원장 아래 실무진들이 윤 원장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한 금융권 관계자는 “보통 금감원장이 큰 틀에서 방향성을 제시하면, 나머지 실무적인 부분은 결국 아랫사람들이 컨트롤하는 것”이라며 “윤 원장 본인의 개혁의지가 강해도 밑에서 따르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금감원장 임기는 길어야 3년인데, 직원들은 길게는 20년 가까이 근무하기 때문에 원장의 ‘말빨’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는 금감원 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공공기관에 해당되는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윤 원장의 소위 ‘말빨’이 직원들에게 통하고 있는지 여부는 실제 내부 직원이 아니고서야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보험 혁신을 완수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보다 ‘무서운 원장님’이 돼 보는 건 어떨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