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타(Theta)2 엔진의 결함을 알고도 숨겼던 현대자동차그룹의 전·현직 임원들이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형사 재판을 받습니다. 현대차 김 모부장의 내부고발로 시작된 이 사건은 3년이 흐른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인더뉴스는 국내 자동차관리법의 허점을 진단하고, 현대·기아차의 늑장리콜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이번 시리즈 기사가 국내 소비자들의 권익 향상과 제도 개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인더뉴스 박경보 기자ㅣ엔진의 중대 결함을 은폐해 형사 재판을 앞두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임원들이 승진 등 특별 예우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을 경우 해고·해임·강등 등의 중징계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와는 정반대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엔진 결함을 전사적인 차원에서 숨기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10일 형사사법포털에 따르면 신종운 전 품질담당 부회장, 방창섭 전 품질본부장, 이승원 전 품질전략실장, 오병수 전 부사장 등 총 4명의 현대차그룹 전·현직 임원들이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돼 있다. 이와 함께 현대 · 기아차 법인도 피고인 명단에 함께 올라와 있다.
검찰은 당초 기소했던 정몽구 회장을 건강상 이유로 제외하는 대신, 방 전 품질본부장의 전임자인 오 전 부사장(2013년 말 퇴직)을 추가로 기소했다. 4명의 피고인 가운데 2명은 퇴직, 나머지 2명은 승진 및 영전(榮轉)한 상태다.
백혜련 의원실이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방 전 품질본부장은 계열사인 현대케피코의 대표이사가 됐고, 현대위아로 이동한 이 전 품질전략실장은 전무로 승진했다. 기소 대상에 오르지 않은 제해동 품질전략팀장 역시 이사로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9부는 오는 31일 열리는 첫 공판 기일을 시작으로 이들에 대한 형사 재판(사건번호 2019고단4644)을 진행할 예정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피고인들은 지난 2015년 세타2 엔진의 중대 결함을 알고도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한 일부 차종(쏘나타)에 대해서만 리콜을 결정했다. 특히 이들은 서로 공모해 국내에서 세타2 엔진에 대한 결함을 숨긴 혐의를 받고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품질전략실장은 품질사업부로부터 전달받은 품질 관련 정보, 언론 보도를 통해 수집한 정보 등을 바탕으로 리콜 관련 업무를 전담한다. 품질 담당 부회장은 리콜 승인에 대한 권한이 있고, 주요 품질문제를 정몽구 회장에게 보고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문제가 된 세타2 엔진은 주행 중 시동꺼짐, 엔진파손, 화재 등을 일으켜 사고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 미국과 국내서 제기돼 왔다. 해당 차종은 쏘나타, 싼타페, 쏘렌토, 스포티지, K5 등 5종이며, 이 모델들은 충돌사고 60건, 화재사고 315건을 냈다. 이 사고로 발생한 부상자는 53명에 달한다.
하지만 2015년 당시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생산된 YF쏘나타 47만대에 대해서만 리콜을 진행했고, 2017년 4월에는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의 공익제보에 따라 120만대에 대한 2차 리콜을 벌였다. 하지만 국내에선 그로부터 18개월이 지나서야 17만여 대를 뒤늦게 리콜한 바 있다.
현대차는 이에 앞선 2014년에도 미국에서 제네시스의 제동장치 결함을 제때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1735만달러(약 179억원)의 벌금을 물었다. 당시 현대차는 ABS제어장치의 결함을 인지하고도 딜러들에게 브레이크오일을 교체하라고만 지시했고, 미국 정부가 관련 조사에 들어가고 난 뒤에야 리콜에 들어갔다.
국내 자동차관리법은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거나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있는 경우 지체 없이 그 사실을 공개하고 시정 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함을 은폐·축소, 거짓으로 공개하거나 결함을 시정하지 않으면 징역 10년 이하 또는 벌금 1억원 이하에 처할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결함 은폐를 주도해 형사기소된 품질부문 임직원들이 징계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승진했다는 점이다. 예정된 수순에 따라 회사를 떠난 신 전 부회장과 내부고발 여파로 명예퇴직한 김 전 부장을 빼면 모두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4년에 발생한 제네시스 늑장리콜 건도 이 전 품질전략실장이 담당했으나 아무런 문책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결함 은폐 사건 이후 전무로 승진한 이 전 품질전략실장은 현대위아로 이동해서도 품질본부장을 맡았다. 회사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품질전략실장은 형사 재판을 앞둔 지난 9월 말 중국 산동위아 생산담당으로 보직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면 감봉은 물론 구상권 청구, 해고 등 중징계를 각오해야 하지만 결함을 숨긴 현대차 임직원들은 오히려 승진했다”며 “결함 은폐가 직원 개인의 판단이 아닌 전사적인 대응이었다는 방증아니겠나”라고 꼬집었다.
이정주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 회장도 인더뉴스와의 통화에서 “현대차가 조금이라도 소비자나 정부를 무서워했다면 관련자들을 승진시킬 수 없었을 것”이라며 “늑장리콜에 대해 형사 처벌한다고 해도 현행법 상 벌금 1억원으로 끝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맹 차원에서 현대·기아차의 각종 결함을 검찰에 고발하고 있지만 대부분 빠져나가는 것이 현실”이라며 “현대차 등 대기업들은 국내법을 무서워 하지 않기 때문에, 결함 은폐에 대해 미국처럼 천문학적인 과징금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이번 형사 재판에 대응하기 위해 김앤장, 율촌 등 20여 명의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당초 6개 로펌 소속 41명의 변호인이 등록됐으나, 현재는 약 절반 가까이 사임한 상태다.
국내 최대 규모 로펌인 김앤장은 형사소송에서 높은 무죄 선고율을 자랑한다. 법조계에 따르면 일반적인 형사 재판의 무죄 선고율은 1%를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김앤장이 사건을 맡으면 20% 이상이 무죄를 선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