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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의 음식추억] 눅진 핫도그에 녹아있던 어린 오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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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30, 2021, 23:10:15

 

정은정 농촌사회학자ㅣ90년대 중반 대학에 가서 남자 선배들에게 별 거리낌 없이 ‘오빠’라고 부르니 다른 여자 선배들이 화들짝 놀라곤 했다. 남자 선배들에게 ‘형’이라고까지 부르던 때는 아니었으나 ‘선배’정도라는 호칭이 좀 더 익숙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한국사회에서 ‘오빠’라는 호칭이 단순히 손윗 남자 형제를 호명하는 의미를 넘어선 복잡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찌 됐든 나는 오빠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오빠들 속에서 둘러싸여 자랐다. 친오빠는 한 명이지만 우리 집에서 함께 살던 이종사촌 오빠들이 둘이나 있었고 어린 막냇삼촌도 함께 자랐다.

 

수다도 많고 성격도 활달한 누이들과 달리 말수도 없고 점잖은 편인 친오빠는 딸 많은 집 외아들이라는 부담을 어깨에 얹고 사는 사람이었다. 아들 노릇 하라는 말을 입밖으로 낸 사람은 없어도 시대의 마지막 장남 노릇을 하며 살고 있고 여동생인 나는 어쩌다 그 수혜자가 되었다. 독거노인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오빠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나는 가끔 밑반찬이나 해서 들러보는 정도다. 장남에게 지워지는 권리와 의무, 그 중 의무만 많이 짊어진 오빠를 보고 살면서 한국의 가부장제도를 소리높여 비판도 하지 못한다. 그 안온한 가부장제를 전적으로 누리고 사는 사람이 나여서다.

 

다섯 살 위의 오빠는 어릴 때부터 어린 누이들의 먹을거리를 잘 챙겨주곤 했다. 일이 바쁜 엄마가 끼니를 챙길 시간이 없으면 오빠나 언니들이 번갈아 가며 밥을 챙기곤 했는데, 방학 때는 특히 오빠가 그 몫을 감당했다. 오빠는 라면도 다양하게 끓여주었다. 짜장라면에는 꼭 계란을 삶아 얹어주기도 하고 떡라면이나 어묵 라면, 그리고 어린 여동생인 나는 매운 것을 잘 못 먹으니 라면 스프 양을 조절해서 따로 끓여주기도 하고 가끔은 물에 헹궈서 주기도 했다. 너무 뜨거운 밥을 라면 국물에 말아 먹으면 너무 퍼진다며 전기밥솥에서 미리 떠서 식혀둘 정도로 자상하고 꼼꼼한 사람이었다.

 

요즘 한창 인기가 높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뽑기’를 우리 동네는 ‘똥과자’라고 불렀다. 이것도 오빠가 해주었다. 우산 활대를 뽑아 시멘트 바닥에 갈아 하트 모양도 만들고 별 모양도 만들어서 ‘콕’하고 뽑기에 찍어주었다.

 

“엄마, 백 원만” 하며 아무리 매달려도 좀처럼 엄마의 호주머니는 열리는 법이 없으니 오빠가 집에서 뽑기 집을 차려준 것이다. 특히 나는 소다를 넣지 않고 설탕만 녹인 똥과자를 좋아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설탕 뽑기를 종종 했지만 잉어는커녕 피라미도 한 번 뽑아보지 못해서 늘 아쉬웠기 때문이다. 오빠는 능숙하게 설탕을 녹여 솥뚜껑에 녹은 설탕반죽을 ‘탁!’하고 쏟은 뒤 ‘스뎅 대접’ 바닥으로 꾹 눌러 모양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오빠가 해주는 설탕 뽑기를 우물우물 빨면서 어린 날의 시간도 함께 녹였다.

 

어느 날 긴 겨울방학에 여동생들이 주리를 틀고 있자 오빠는 집에서 캠핑을 열어주었다. 일명 ‘배달의 기수’ 놀이였다. 얇은 홑이불을 꺼내 빨랫줄에 이어서 텐트를 만들고 우리에게 비상식량을 마련해야 한다며 전기밥통과 주걱을 들고 대장인 오빠 뒤를 따르라 했다. 학교 체육복을 입고, 운동회때나 쓰는 청군백군 모자를 쓰고 “헛둘헛둘” 하면서 그 좁은 집을 뱅뱅 돌다가, 이제 밥을 먹을 식사 시간이라며 김밥을 싸주었다.

 

지금이야 흔하디흔한 김밥이지만 당시엔 김밥도 귀물이어서 소풍날이나 운동회 아니면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그런 김밥을 언니도 아니고 오빠가 말아주었다. 돼지고기가 아니라 어육이 주원료인 일명 ‘나이롱 소세지’인 분홍 소시지와 단무지, 채소 몇 가지를 넣고 정말 김밥을 말던 오빠의 능숙함이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날의 김밥은 싸구려 김이어선지 보관을 잘못해서인지 김 비린내가 나기는 했지만 지금도 김밥만 보면 그날 우리들의 대장님 오빠가 생각난다. 고작 열세 살 소년이 소시지와 단무지를 사들고 부지런히 집으로 뛰어오는 풍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오빠가 중학교에 가자 이런 잔재미는 사라지고 서울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끝난 여동생들도 친구들과 노느라 바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토요일이었다. 집에서 십리 정도 떨어진 중학교에 다니던 오빠가 어느 날 다 식어빠진 핫도그 세 개를 사들고 왔다. 그때의 길거리 핫도그는 분홍 소시지에 얇게 밀가루 반죽에 묻혀 애벌로 튀겨낸 뒤, 다시 두껍게 습식 밀가루 반죽에 굴려 빵가루를 묻힌 뒤 2차로 튀겨내 마치 붐마이크만한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그날 오빠가 사온 핫도그는 애벌 튀김까지만 한 상태로 어설프게 빵가루가 묻어있는 핫도그였다.

 

오빠가 사들고 온 핫도그는 세 개에 90원 짜리 회수권 한 장, 개 당 30원짜리의 핫도그였다. 밥 세끼 외에는 이렇다 할 간식을 사주지 않았던 엄마 대신에 오빠가 집에 있는 누이들을 생각하면서 사온 싸구려 핫도그 세 개. 회수권으로 핫도그 값을 치르고 십리를 걸어오느라 핫도그는 다 식어버렸고 설탕과 케첩이 볼품없이 엉겨 붙어 있었다.

 

지금도 길을 가다 핫도그를 파는 노점을 보면 그날의 회수권 핫도그가 떠올라 지금도 빗장뼈에 손이 저절로 올라간다. 그때의 오빠 나이의 중학생 아들을 키워보니 유난히 철이 든 소년이 기특하기보단 안쓰럽다. 물려줄 것도 없는 집안에서 어깨만 무거운 장남의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인 그 소년에게 너무 그러지 말고 살라 말해주고 싶지만, 정작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사니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제 쉰 줄에 접어든 오빠도 마흔 후반인 나도 치아 건강과 콜레스테롤을 걱정하는 나이여서 핫도그도 먹지 않고, 설탕뽑기는 면구스러워 더더욱 하지 못한다. 그런데 왜 요즘 ‘철모르는 오누인 듯’(김사인의 시 화양연화에서 차용) 오빠에게 핫도그 한 개만 사 달라 하고 싶은 것일까. 아마도 속은 덜 여문 주제에 어른인척하며 살기가 유독 힘든 날들이어선가 보다.

 

■ 정은정 필자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등을 썼다. 농업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 중이며 국방일보에서 20대 청년에게 음식과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KBS1라디오와 CBS라디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나가 농촌이야기를 전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그림책 <그렇게 치킨이 된다>와 공저로 <질적연구자 좌충우돌기>, <팬데믹시대, 한국의 길>이 있고 <한국농업기술사전>에 ‘양돈’과 ‘양계’편의 편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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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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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SBI저축은행 인수한다…금융지주 전환 본격화

교보생명, SBI저축은행 인수한다…금융지주 전환 본격화

2025.04.28 16:30:12

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교보생명이 저축은행업에 진출합니다. 교보생명은 28일 이사회를 열어 SBI저축은행 지분 '50%+1주'를 2026년 10월까지 단계적으로 인수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습니다. SBI저축은행 최대주주 SBI홀딩스로부터 SBI저축은행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며 인수금액은 9000억원입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풋옵션 분쟁이 사실상 일단락되면서 금융지주 전환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며 "저축은행업 진출은 지주사 전환 추진과 사업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이며 향후 손해보험사 인수 등 비보험 금융사업으로 영역확대에도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SBI저축은행은 2024년말 기준 총자산 14조289억원, 자본총계 1조8995억원, 거래고객 172만명을 보유한 업계 1위 저축은행입니다. 2021년 3495억원, 2022년 3284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23·2024년에는 경기침체 속에서 각각 891억원, 80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습니다. SBI저축은행 최대주주는 일본 종합투자금융그룹 SBI홀딩스로 현재 자사주 14.77%를 제외한 85.2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교보생명은 저축은행 운영경험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지분을 취득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금융당국으로부터 대주주 승인을 받은 다음 하반기중 30%(의결권 없는 자사주를 감안한 실제 의결권 지분 35.2%)의 지분을 취득할 예정입니다. 이후 금융지주사 전환에 맞춰 2026년 10월말까지 50%+1주(의결권 58.7%)를 인수합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2027년부터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상당기간 공동경영을 할 계획"이라며 "1등 저축은행으로 키운 현 경영진을 교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교보생명은 기존 보험사업과 저축은행간 시너지 극대화를 노립니다. 특히 보험계약자에게 저축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저축은행 고객에게는 보험상품을 연계하는 맞춤형 금융솔루션을 확대함으로써 고객층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디지털 금융시장에서도 고객접점이 크게 확대될 전망입니다. 현재 교보생명앱(230만명)과 SBI저축은행 사이다뱅크앱(140만명)을 합하면 총 370만명의 금융고객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보험에 익숙하지 않은 MZ세대 등 젊은 고객층의 적극적 유입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교보생명은 양사의 강점을 결합해 서비스 경쟁력을 한층 강화한다는 목표입니다. SBI저축은행 계좌를 보험금 지급계좌로 활용해 금융서비스 편의성을 높이고, 보험사에서 대출거절된 고객을 저축은행으로 유입해 가계여신 규모를 1조6000억원 이상 확대할 계획입니다. 또 SBI저축은행 예금을 교보생명 퇴직연금 운용상품으로 활용하는 등 시너지를 극대화합니다. 교보생명과 SBI그룹은 2007년부터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다양한 금융분야에서 협업하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금융 인수 추진, 제3인터넷은행 설립 논의, 디지털 금융협력 등 주요사업에서 파트너십을 구축했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토큰증권 발행 등 디지털 금융분야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SBI홀딩스는 사모펀드 어피니티가 갖고 있던 교보생명 지분 9.05%를 인수한데 이어 최근 교보생명의 재무적투자자(FI)들이 보유한 지분을 추가인수해 보유지분율을 20%까지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양사는 이번 거래를 통해 단순한 금융투자 관계를 넘어 미래 금융시장 변화에 공동대응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계획입니다. SBI그룹 관계자는 "교보생명과 오랜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향후 다양한 금융분야에서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디지털금융 시대에서 고객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며 "SBI저축은행과 협력해 저축은행과 보험의 경계를 허물고 고객에 더욱 차별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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