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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의 안주잡설] 숟가락으로 퍼먹던 뻔데기, 탕으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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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rch 20, 2022, 08:03:51

 

 

정진영 소설가ㅣ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의 운동회를 추억하면, 아이들의 발끝에서 피어오른 먼지 때문에 뿌옇게 흐려진 운동장이 오래된 필름 영화처럼 떠오른다. 먼지구름을 뚫고 운동장 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노리는 온갖 잡상인을 볼 수 있었다. 그 시절에 운동회가 열리는 날은 잡상인에게 대목이어서, 운동장 구석의 목 좋은 곳은 으레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잡은 그들의 차지였다.

 

잡상인은 아이들을 상대로 온갖 주전부리를 말도 안 되는 비싼 가격에 팔았는데, 나는 그에 혹해서 기껏 모은 용돈을 한 방에 날려버리곤 했다. 그때 내가 가장 혹했던 주전부리는 번데기였다.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감칠맛. 정말 맛있었다. 잡상인은 번데기를 깔때기 모양으로 만 종이에 담아줬는데, 그 양이 너무 적어서 다 먹고 나면 아쉬운 마음에 손가락을 빨았다. 가성비가 엉망이니까 맛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배부르게 먹었던 기억보다 모자라게 먹었던 기억이 머리에 오래 남는 법이니 말이다.

 

이 불온한 식품에 환장하며 용돈을 탕진하는 아들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가끔 잡상인으로 변신했다. 그 시절에 살았던 집 근처에 농수산물도매시장이 있었고, 시장 정문 건너편에 건어물시장도 함께 섰다. 어머니는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장을 보는 김에 건어물시장에도 들러 번데기 한 되를 사 오시곤 했다. 번데기 한 되는 작은 검은 비닐봉지를 꽉 채울 정도로 양이 많았는데, 가격은 고작 2500원 수준에 불과했다. 잡상인은 아이들을 상대로 도대체 얼마나 남겨 먹었다는 말인가!

 

어머니께서 번데기를 사 온 날에는 온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넘쳤고, 나는 번데기를 숟가락으로 퍼먹는 호사를 누렸다. 어깨너머로 본 어머니의 조리법은 간단했다. 깨끗하게 번데기를 씻은 뒤 마법의 백색 가루(MSG)와 각종 조미료를 듬뿍 넣고 끓이는 게 전부였다. 별다른 양념도 없었다. 그런데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맛의 비결이 조미료인지 어머니의 손맛인지 묻고 싶지만,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다. 먼 훗날에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번데기 조리법을 꼭 여쭤보고 싶다.

 

각설하고, 내가 술을 마셔도 아무리 말리지 않을 만큼 나이를 먹은 뒤에 놀란 사실이 하나 있다. 번데기를 숟가락으로 퍼먹는 호사를 누려본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술집에 기본안주로 나오는 종지에 담긴 번데기는 그런 내겐 간에 기별도 안 되는 양이다. 나는 종종 번데기를 젓가락으로 하나씩 집어 먹는 지인들에게 숟가락으로 번데기를 퍼먹었던 과거를 들려주며 허세를 부렸다. 이런 허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지인이 있었다. 내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던 시절에 후임으로 만난 다섯 살 많은 형이었다.

 

그는 몇몇 기획사에서 작곡가로 음악 활동을 하다가 뒤늦게 공익근무요원으로 들어왔다. 한창 작곡에 빠져 있던 나와 그는 음악적으로 통하는 면이 많았다. 나는 그에게서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데 필요한 미디를 다루는 요령을 많이 배웠다. 그 덕분에 나는 구상만 했던 많은 곡을 컴퓨터로 만들어 구현할 수 있었다. 내가 지난 2014년에 발표한 앨범 [오래된 소품]에 수록된 5곡 중 3곡이 그 시절에 습작으로 만든 곡에서 비롯됐으니, 그와 맺었던 인연은 참 알찼다고 할 수 있다.

 

술자리에서 내 허세를 귀 기울여 듣던 그가 조용히 내게 고백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꿈 중 하나가 번데기를 숟가락으로 퍼먹는 일이었다고. 꿈은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와 날을 잡은 나는 가까운 전통시장에 들러 번데기 한 되를 샀다.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번데기를 세척했다. 번데기는 생각보다 기름져서 손에 닿으면 프라이팬의 기름때처럼 끈적였다. 어머니께서 왜 번데기를 자주 끓여주지 않으셨는지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적당히 세척을 마친 번데기를 커다란 냄비에 담아 휴대용 버너 위에 올렸다. 여기에 고향의 맛을 낸다는 조미료를 듬뿍 붓고 20여 분 끓이자 그럴싸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둘은 침을 삼키며 4홉들이 소주 한 병을 따서 글라스 잔에 반씩 나눠 따랐다. 그는 소주를 한 모금 마신 후 내가 끓인 번데기를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입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서 행복한 표정이 피어났다.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진심으로 맛있게 먹는 모습을 이날 처음 봤다. 정말 뿌듯했다. 냄비에 코를 박고 번데기를 퍼먹는 아들을 보던 어머니의 마음도 나와 비슷했을까?

 

요즘에는 전통시장에서 됫박으로 파는 번데기를 보기가 쉽지 않다.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동네 편의점에서도 번데기 통조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브랜드와 종류도 다양해져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기분 탓일까? 아무리 번데기 통조림이 간편하고 먹을 만하다지만, 길거리에서 사 먹던 맛이나 직접 끓여 먹던 맛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번데기 통조림을 활용한 탕이다. 내 조리법은 온라인상에 떠도는 조리법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차이가 있어 따로 소개해 보려고 한다. 먼저 번데기 통조림 두 개를 준비한다. 내 경험상 한 개는 적고, 세 개는 많다. 두 개가 적당하다. 통조림을 따서 내용물을 냄비로 옮겨 담을 때 육수 조절을 잘해야 한다. 육수는 그 자체로 조미료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꼭 필요하지만, 단맛이 강한 편이어서 양을 잘 조절해야 한다.

 

통조림 한 개 분량의 육수만 냄비에 넣어 살리고, 나머지는 과감히 포기하자. 그다음에 포기한 육수만큼 냄비에 물을 붓는다. 여기에 청양고추 적당량을 송송 썰어 투하한다. 다진 마늘이나 고춧가루, 쌈장을 같이 넣어 끓여도 괜찮지만 국물이 탁해진다. 취향에 따라 의견이 갈리겠지만, 청양고추에 파 정도만 첨가해주는 게 깔끔한 국물을 내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냄비보다 1인용 뚝배기에 끓여보자. 괜히 더 맛있게 느껴질 것이다. 불에서 내려온 뒤에도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 속 번데기탕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정물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지 않은가. 야심한 밤에 이보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맛있는 술안주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젠장. 썰을 풀다보니 번데기가 당긴다. 가까운 편의점에 다녀와야겠다.

 

■정진영 필자

 

소설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썼다. '침묵주의보'는 JTBC 드라마 '허쉬'로 만들어졌으며, '젠가'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앨범 '오래된 소품'을 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이 있다.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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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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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의 ESG금융 33.2조…지속가능경영이 곧 밸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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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30 16:48:02

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KB금융그룹(회장 양종희)은 2024년말 기준 ESG 상품·투자·대출이 누적 33조2000억원(환경분야 19조200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고 30일 밝혔습니다. 이날 발간된 '2024 KB금융그룹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KB금융의 '지속가능금융 체계'는 금융상품·서비스 전반에 ESG를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자금조달부터 상품·투자·대출까지 모든 과정에서 기후변화 대응, 지역사회 발전, 투명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KB금융은 친환경·녹색금융을 확대하고 탄소중립 전환을 가속화하고자 'KB Green Wave 2030' 전략을 추진중이며 2030년까지 ESG 상품·투자·대출 규모를 총 50조원(환경분야 25조원)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KB금융은 지속가능경영과 밸류업의 선순환 네트워크 구축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투명한 지배구조, 윤리경영, 리스크관리, 지속가능한 금융, 기후위기 대응, 친환경 경영이 곧 주주환원 강화, 지배구조 개선, 주주·이해관계자와 소통강화, 사회적 가치 제고, 자본비율 관리, 본원적 펀더멘털 강화로 이어져 종국에는 기업가치 제고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특히 재무건전성을 판단하는 핵심지표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2024년 설정한 목표(13% 이상)를 상회하는 13.53%를 달성했습니다. 업계 최고 수준입니다. 보통주자본은 자본금,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 등 회사의 핵심자본으로 구성되며 CET1비율이 높을수록 향후 주주환원, 신규투자, 사업확장 등 여력이 높다고 평가됩니다. KB금융은 지난해 10월 '지속가능한 밸류업(Value-up) 방안'을 발표하며 국내 최초로 CET1비율과 주주환원을 연계한 '밸류업 프레임워크'를 도입한 바 있습니다. 주주환원의 지속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고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 호평받았습니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금융은 단순한 자금중개를 넘어 개인의 삶과 기업의 미래, 나아가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연결하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면서 "KB금융그룹은 국민과 함께 성장하고 공존하는 금융을 실천하며 다음 세대에 더 나은 환경과 기회를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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