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찬 심리상담사ㅣSBS 드라마 <악귀>(기획:이옥규/극본:김은희/출연:김태리, 오정세, 홍경, 김해숙, 박지영, 김원해 등)는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라고 소개한다. 귀신들이 나온다. 무더운 여름에 온몸의 털이 서는 듯한 시원한 오싹함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다.
<악귀>의 기획의도를 보면 구산영(김태리 분)을 통해서 청춘예찬을 한다. 구산영을 통해 청춘들의 삶은 힘들지만 그럼에도 청춘은 여전히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청춘이 우울과 불안 등 심리적인 악귀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는 있지만 아름다운 시기는 분명하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청춘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청춘인 MZ세대들이 아름다운 시기를 마음이 덜 고통스럽게 보내기를 응원한다.
드라마 <악귀>처럼 귀신이 나오는 드라마는 감각적으로 오락적인 재미를 준다. 언제 귀신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긴장감과 무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재밌다. 그래서 귀신 장르는 다시 또 보고 싶어 진다. 귀신을 보는 경험이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마치 무서우면서도 짜릿한 기분을 느끼려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감각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스트레스가 많아서 살아있는 듯한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귀신이 실제 영상으로 눈앞에 그려지고 어둠 속에서 VR처럼 잔상이 나타나는 재미가 있다. 사람들이 귀신이 나오는 영상을 찾아서 보는 이유 아닐까 싶다.
드라마 <악귀>는 청년인 구산영(김태리 분)의 고단하고 궁핍한 현실의 삶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산영은 돈을 벌기 위해 늦은 밤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쉴 틈 없이 산다. 산영은 불안정하고 궁핍한 삶을 극복하기 위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다. 그런데 산영은 해가 져 밤이어도 ‘주경’이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 준비로 잠을 줄여서 '야독'을 한다. 그러한 산영의 삶이 너무 고달프고 힘들게만 보인다.
게다가 산영의 엄마 윤경문(박지영 분)은 오히려 딸에게 의존하고 산다. 산영이 여러 가지 알바를 하면서 가정 경제와 심지어 엄마의 돈 문제 뒤치다꺼리까지 한다. 산영의 삶을 보면 딱 죽고 싶은 심정을 파고들어 자살귀가 달라붙을 것 같다. 그런데 산영은 어떻게든 살려고 힘을 낸다. 비록 자살이 많은 한강 다리 위를 걷기도 하지만.
MZ세대들 중에도 구산영(김태리 분)처럼 삶을 살아내기가 힘든 경우가 있을 것이다. 실제 경제적 차이는 다르더라도 마음의 고통은 비슷할 수 있다. 드라마 <악귀>에서 보이는 산영이네는 경제적으로 취약 계층이다. 이혼 후 엄마 혼자 아이를 키웠는데 엄마가 경제적인 능력도 없다면 취약 계층일 가능성이 크다. 산영이 엄마 경문(박지영 분)처럼 엄마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면 자녀의 심리가 더 불안정할 확률도 높다.
오히려 산영이처럼 삶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드물다. 한국에서 그것도 서울에서 산다면 경제적인 결핍은 정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부자가 다 행복하지는 않다고 해도 가난하면 더 쉽게 불행해질 수 있다. 실제적인 경제적 취약함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욕구를 끊임없이 위협하기 때문이다.
민속학 교수인 염해상(오정세 분)은 자살 사건이 많은 한강 다리를 바라보며 ‘위법인치사’를 이야기한다. "자살 사건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위핍인치사란 규정이 있어... 자살 사건에 보이지 않는 손 진짜 범인이 있다고 생각한 거야." 마치, 뒤르켐의 <자살론>을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다. 자살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사회에 속해 사는 개인은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MZ세대가 지금 당장 바꿀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내야 한다면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덜 받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산영이처럼 생존하려면 오늘을 버텨야 하니까 말이다. 우선 살아남아야 미래가 밝은지 어두운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염해상(오정세 분)이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의 자살 사건 현장에서 형사에게 이야기한다.
"목을 매서 죽은 자살귀가 그들을 죽게 만든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기운을 느끼지 못해요. 하지만 우울감에 빠져 있거나 어떤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들은 그 유혹을 이기기가 힘듭니다.”
심리적으로도 맞는 말이다.
자살귀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환경마저 취약할 때 심각한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우울감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자살의 유혹이 더 거세진다. 매 순간 내 자신, 내 삶, 내 미래가 꽉 막힌 터널 안에 있는 것처럼 지독히 깜깜하다고 느낀다면 자살 외에 더 나은 선택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염해상이 산영에게 악귀에게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악귀 같은 우울감이 심리적 임계치를 넘어 들어오지 않게 마음의 문을 잘 닫고 있어야 한다.
MZ세대들이 현실의 삶을 사는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내면의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쉽지 않다. 현재 경험하는 심리적인 고통은 자기 인식의 부족 때문인 경우도 많다. 염해상은 귀신을 두려워하는 산영에게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 그 사람이 꼭 누군지 확인을 하고 열어 주셔야 합니다. 이름이 뭔지 왜 여기에 남은 건지 얘기를 들어줘야 돼요"라고 한다. 산영이 "보이지도 않은데 얘기를 어떻게 들어요?"라고 반문한다.
귀신처럼 우리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마음은 어느 순간 자살귀가 되고 악귀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귀신처럼 보이지 않는 마음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니 말이다. 청춘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구산영(김태리 분)처럼 말이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