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지난 16일 오전 서울시내 모처 로비.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이 취재진 앞에 섰습니다. 차기 은행연합회장 최종후보자를 발표하고 질의에 답하기 위해서입니다.
김 회장의 3년 임기만료 소회에 관한 질문이 나왔고 은행연합회 소속 간부들은 회장후보 추천 관련 질의만 하는 게 좋겠다며 제지했습니다.
김 회장은 간부들을 물리치며 "그 얘기는 꼭…(하고 싶다)" 이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김 회장은 예상치 못한 책 관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국내에 <이번엔 다르다>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 된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와 카르맨 라인하트 메릴랜드대 교수의 공저 <This Time Is Different> 입니다.
<이번엔 다르다>는 두 저자가 지난 800년 동안 66개국에서 반복된 호황과 불황의 역사를 통해 금융 흐름의 일정한 패턴을 발견, 이를 종합하며 사람들은 호황기 때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착각을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책입니다. 특히 당대의 정치가나 금융전문가들은 과거의 실수에서 이미 많은 교훈을 얻었으며 가치평가에 대한 과거의 규칙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 즉 '이번에는 다르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김 회장은 "은행은 굉장히 중요한 기관"이라며 "그 책을 보면 200~300년동안 은행의 부침에 대해서, 은행이 어려워졌을 때 사회가, 경제시스템이 어떻게 어려워지는지 나와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여러 비판이 있지만 중립적 입장에서 은행의 기능이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고 부연했습니다.
자신의 후임 회장 추천결과를 설명하면서 밝힌 소회라고 하기엔 분명히 숨은 메시지가 있는 발언입니다.
<이번엔 다르다>는 책에서 세계적인 경제학자 두 명은 방대한 실증적 데이터를 통해 '이번엔 다르다'는 생각이 결국 여러 금융위기의 단초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김 회장이 퇴임을 앞둔 개인의 감상적인 소회보다는 은행의 사회경제적 효용가치와 금융시스템의 기능이 '이번엔 다르다'는 착각 아래 흔들려선 안 된다는 우려를 담아 작심발언을 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달말 임기만료를 앞두고 은행권을 대표해 정부당국에 공개적으로 고언을 한 셈입니다.
현정부 들어 '관치금융' 부활이라는 논란에도 '이자장사' '은행 종노릇' 등 연일 쏟아지는 고강도 비판발언에 직면해 있는 게 은행권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은행권은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민간기업으로서 이윤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금융부문 여러 위기 국면에서 충실히 역할을 했고 상생을 위한 사회공헌에도 노력하고 있는데 파렴치한 고리대금업자로 매도하고 있다며 억울하다는 반응도 감지됩니다.
무엇보다 정부당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상생금융이 어떤 것인지 속내를 모르겠다며 난감해하기도 합니다. 최근 일부 은행이 각각 발표한 1000억원대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두고 금융당국은 시원찮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나머지 은행들이 상생금융 지원방안에 대해 "내부 검토중"이라며 쉽사리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건 이런 배경이 작용한 탓입니다.
김 회장은 차기 회장에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난 임기 3년동안 금융소비자 관계나 금융부문 규제, 소비자보호, 상생 등 많이 신경썼지만 사회적으로 잘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며 "(상생금융 관련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마당에 다른 시각에서 보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과제 아니겠느냐"고 답했습니다.
김 회장은 "큰 짐을 후임자에 남겨서 상당히 마음이 무겁고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새로 오는 분은 경륜이 많고 리더십이 있으니 이런 상황을 잘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도 했습니다.
임기 3년을 자평해 달라는 요청에는 "열심히 했지만 상당히 낮은 점수를 받는 것 같다"며 "10점 만점으로 한다면 4.5점 정도"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