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가까운 지인 부부는 일 년에 두 번 해외여행을 가는 게 취미 중 하나다. 최근 교통이 편리한 위치에 있는 도쿄의 한 호텔에 숙박했을 때의 사연이다. 여행 마지막 날 저녁 객실에서 와인을 마시다 침구에 쏟았다고 한다. 와인 양이 많지 않아 심각한 정도의 얼룩이 아닌 데다 글라스를 깨뜨린 것도 아니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음 날 귀국한 지인은 얼마 후 호텔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당신이 호텔 침구에 와인을 쏟아 치명적인 얼룩이 남아 세탁비를 청구하겠다는, 그러니까 손상된 침구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라는 내용이었는데, 청구된 금액은 1만9000엔(한화 약 17만2000원)이었다.
매트리스에 손상이 갈 정도의 오염도 아니고 이불이 찢어지거나 복구 불가한 훼손이 아닐 뿐 아니라 전용 세제로 충분히 제거가 가능한 수준의 얼룩이었음에도 새 이불을 사는 가격보다 비싼 금액을 청구한 데 대해 호텔 측에 항의했지만 호텔 규정이라는 회신을 받은 지인은 결국 호텔 측이 청구한 금액을 송금했다.
고대하던 여행을 불쾌한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던 까닭도 있지만 여행 가기 전 미리 가입해 두었던 여행자 보험으로 그 금액을 충당할 수 있어서였다. 관련 서류를 여행자 보험사에 제출해 자기 부담금 1만원 정도를 제외한 전액을 보험으로 처리했다. 지인이 가입한 여행자 보험의 보험료는 1만원 남짓이었다.
사실 여행자 보험을 이렇게까지 활용할 수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지 모른다. 2000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해외여행을 하려면 의무적으로 여행자 보험에 가입해 가입 서류를 공항이나 항구에 티켓과 함께 보여줘야 출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1년 해외여행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여행자 보험 의무 가입제도를 폐지했다.
나 역시 종종 질문을 받는다. 곧 해외여행을 갈 건데 여행자 보험에 꼭 가입해야 하냐고, 많은 이들이 안전한 국가로 가는 짧은 여행인데 뭔 일 있겠어? 라며 가볍게 여기지만 여행지에서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예측이 어렵다. 보험사마다 약관이 조금씩 다르기는 해도 낯선 나라에서 발생한 여러 위급 상황 앞에서 언급한 지인의 사례와 같이 여행자 보험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체코와 같이 유럽 연합 회원국이 아닌 곳으로 여행을 갈 때 입국자 국가의 여행자 보험 가입 서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입국 허가가 나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행자 보험은 어떻게 가입하고 어떤 항목을 중요하게 보아야 할까?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여행할 때 여행자 보험은 반드시 국내에서 가입해야 한다. 해외에서의 가입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 최근 여행자 보험 가입은 설계사를 통한 오프라인이 아닌 대부분 온라인으로 당사자가 직접 가입하고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상품의 경우 여행사가 일괄적으로 대행을 한다.
포털 검색창에 '여행자 보험'을 입력하면 빠르고 쉽게 가입할 수 있는 링크가 보이고 금액도 대동소이 해서 클릭만 하면 된다. 여행 일정이 확정되어 있으면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 빠르게 승인이 난다. 가입할 때는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에서 집에 도착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가입 기간을 넉넉하게 설정하는 것이 좋고, 기본 항목 외에 내가 더 부과할 수 있는 특약 내용과 보장 범위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여행지 상황과 내 실정에 맞게 필요한 특약을 선택해야 한다.
담보는 해외여행 중 상해로 인한 사망 및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기본으로 후유장해, 해외 상해 의료비 및 해외 질병 의료비, 휴대품 손해(분실 제외), 여행 중 배상책임, 중대사고 구조송환 비용, 항공기 납치, 여권 분실 후 재발급 비용, 항공기와 수화물의 지연 비용, 여행 중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여행을 중단하고 귀국하는 상황에서의 추가 비용에 대한 보상, 식중독 및 특별전염병 보상금 등을 선택할 수 있다. 가입 일자와 보상하는 금액의 범위에 따라 보험료 차이가 있지만 장기체류가 아닌 이상 큰 차이가 아니므로 되도록 가입 한도 최대 범위로 설정하는 것이 낫다.
여행자 보험은 일회성 선불제 보험이라 보험료가 비싸지 않다. 그래서인지 여행자 보험을 여러 개 가입하면 유리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여행자 보험은 중복 보상이 아닌 비례 보상이기 때문에 몇 개에 가입했다 해서 각각 보상해 주지 않고 중복으로 가입한 보험의 비율대로 나누어 지급한다.
그러므로 내게 딱 맞는 보험 한 개만 가입하면 된다. 예정했던 여행 기간보다 일찍 귀국하면 잔여 가입 기간을 계산해 환급받을 수 있으니 여행 일정이 길다면 이 부분도 확인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여행자 보험에 여러 편의 서비스가 포함되어 질병이나 상해로 긴급히 병원에 가야 할 때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화 등을 통해 일정한 의료 지식이 있는 통역사를 파견해 주기도 하고 긴급 구조 헬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얼마 전 친구들과 2박3일의 일정으로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인천공항은 발권에서부터 출입국심사, 면세품 검사까지 전산화가 되어있어 말 그대로 '빠르고 편리하게' 출국 수속을 마쳤다. 하지만 모든 나라의 공항 사정이 우리나라 같지는 않다. 하물며 작은 도시의 상황이나 의료시설 역시 가보지 않은 이상 상세히 확인하기 어렵다. 규정이 까다로운 호텔의 기물에 손해를 끼쳐 예상보다 큰 금액을 배상해야 할 때도 있고 중요한 여행 물품이 파손되는 상황도 드문 일은 아니다.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내국인 출국자 수는 약 2271만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이제 여행자 보험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낯선 나라의 설렘과 돌발 상황에서 나를 지켜줄 안전장치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